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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석 마샹스Machance Jun 05. 2024

서울로 가는 기차, 틀라아

기차를 타고 간다

처음 좌석은 통로 쪽이었으나,

중간 정차역에서 어린 딸 둘을 데리고

기차를 탄 아이 엄마가

창문 쪽 자리와 바꿔달라 했다


창가에 앉으니

창밖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통로 쪽 좌석은 중간에 화장실 가기 편하고,

창문 쪽 좌석은 풍경을 볼 수 있어 좋다

기차표 예매를 할 때

통로 좌석으로 할까

창문 좌석으로 할까

늘 망설인다

마치 짜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 고민하는 것처럼

오늘은 둘 다 경험하며 가니

짬짜면을 먹는 셈이다

아이 엄마 덕분이다

자리를 바꿔줘서 고맙다며 준 사탕이

입안에서 녹는다

달콤한 사탕이

칡처럼 마음을 달큰하게 한다


오후 4시에 네가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할 거라는 어린왕자처럼

아들 보러 서울 가는 길

그렇지 않아도 행복한 날

더 행복하다


광주에서 올라온 아내와

순천에서 올라가는 내가

용산역에서 만나

우리 세 식구 하나가 되는 날


일요일 다시 서울과 광주, 순천으로 나뉘는 길

나는 초롱꽃 같은 아내와 아들 손을 만지며

'틀라아'라고 인사할 거다.


'우리에게는 작별의 말이 없다'라는 시처럼...

ㅡㅡㅡㅡㅡ

우리에게는 작별의 말이 없다ㅡ메리 톨마운틴


소코야, 하고 나는 불렀다

주름살투성이 속

검은 연못 같은

그녀의 지혜로운 눈을 들여다보며


아타바스카어에서는

서로 헤어질 때 뭐라고 해요?

작별에 해당하는 말이 뭐예요?


바람에 그을린 그녀의 얼굴 위로

언뜻 마음의 잔물결이 지나갔다

'아, 없어.' 하고 말하며

그녀는 반짝이는 강물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나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우리는 그냥 '틀라아' 하고 말하지

그것은 또 만나자는 뜻이야

우리는 결코 헤어지지 않아

너의 입이 너의 가슴에

작별의 말을 하는 적이 있니?


그녀는 초롱꽃이나 되는 것처럼

가만히 나를 만졌다

헤어지면 서로 잊게 된단다

그러면 보잘것없는 존재가 돼

그래서 우리는 그 말을 쓰지 않아


우리는 늘 네가 돌아올 거라고 생각한단다

돌아오지 않으면

어딘가 다른 곳에서 만나게 될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지?


우리에게는 작별의 말이 없단다.

ㅡㅡㅡㅡ

* 소코야 : 아타바스카어로 이모

아타바스카어 : 알래스카를 비롯 북미원주민 사용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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