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정년퇴직했다. 1년간 쉬면서 퇴직 이후의 삶을 준비하는 공로연수를 끝으로 40년이 넘게 일한 직장에서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수고한 것 이상으로 아내가 더 여유롭고 자유로우며 평안하고 건강했으면 좋겠다. 아내의 삶이 프리지어 꽃처럼 향기로운 날로만 이어지기를 바란다.
퇴직 후의 삶은 간장이 숙성되는 시간, 밥을 뜸 들이는 시간, 꽃이 씨앗을 키워가는 시간이다. 더 맛있어지고 더 멋있어지는 시간이다. ‘후회 없는 삶이었다’라고 말할 수 있게 삶을 완성하는 시간이다.
아내의 삶을 축복하면서 6년 전 정년퇴직한 나를 되돌아본다.
나는 더 멋있어지고, 충분히 맛있어지고 있는가?
아내가 받은 정년퇴직금의 일부를 떼어 나에게 선물을 했다. ‘정규석 씨께 드리는 나의 마음입니다. 그동안 열심히 살아오면서 우리 우진이 선물 다음으로 통 큰 선물이오니 잘 쓰시고 나랑 즐거운 여행 다니면서 인생의 후반 또 신나게 달려보시게요’라는 글과 함께 눈부시게 하얀 차의 사진을 보내왔다.
지금 타는 오피러스를 마지막으로 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아내의 선물 덕분에 우리 부부의 마지막 차가 바뀌었다. 프라이드-크레도스-산타페-오피러스에 이어지는 우리의 마지막 차는 ‘기원, 발생’이란 뜻을 가진 제네시스다. 아내의 말처럼 함께 여행 다니면서 신나게 그러나 조심스럽게 타고 다녀야겠다. 그나저나 요즘 차는 기능이 여러 가지다. 설명서를 읽었으나, 아직 더듬거린다.
아내와 함께 익어가는 시간, 돌다리도 두들겨 보며 건너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살아가겠다. 마치 처음 타는새차의 운전석에 앉은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