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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석 마샹스Machance Oct 13. 2024

중국 황산 등정기

중국 황산을 오르고 왔다.(여행기간 전체를 편집해 만든  유튜브영상 링크는 댓글에 있습니다.)

아내가 정년퇴직한 전남대병원 산악회에 끼어 한 여행이다.

종아리는 터질 듯 아프고, 무릎은 시큰거리고, 발바닥은 욱신거리지만 그래도 보람을 느낀다.

'지금 아니면 언제 또 와보겠느냐? 지금이 남은 생애 중 가장 젊은 날이다'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고 올랐다.

등정 첫날은 황산의 뒤쪽 코스다.

서해대협곡, 배운정, 비래석, 광명정, 몽필생화, 시신봉, 흑호성을 케이블카, 모노레일을 타기도 했지만 걸어서 오른 거리가 훨씬 더 길었다.

가이드는 첫날 하루에만 3만 개가 넘는 계단을 걸어야 한다고 했다. 평소 걸어 다니고, 주말에 산을 오른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등정 둘째 날은 황산의 앞쪽으로 등정했는데 오어봉, 백보운제, 영객송, 천도봉이 목표였다.

첫째 날 저녁 가이드가 "내일 앞쪽으로 오르는 코스는 오늘보다 더 험하다. 천도봉은 희망자만 오르고 가이드는 동행하지 않으니, 자신의 몸상태에 따라 결정하라"고 했다.

아픈 다리를 끌어안은 체 고민했다.

'첫날 내려오면서 젊었을 때 다쳤던 무릎이 시큰거려 곤란을 겪었는데 괜찮을까?, 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지는 않을까?' 염려되었다.

오르는 건 그나마 괜찮은데, 내려올 때 시큰거릴 무릎이 걱정이었다.

불안한 마음을 안고 시작한 둘째 날, 오르다가 안 되겠으면 되짚어 내려 오리라는 각오로 등정을 시작했다.

중간 지점까지 동행한 가이드가 "이곳에서 기다릴 테니 다녀오라"며 걸음을 멈췄다.

가이드와 헤어져 산악회원들과 함께 출발했다.

어느 정도 오르니 건너편에 천도봉이 보였다. 문제는 케이블 카를 타고 내려서 걸어 오른 만큼의 높이에서 천도봉을 오르기 시작하는 게 아니었다.

천도봉이 바라보이는 지점에서 V자로 꺾인 산을 걸어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야 한다.

'빌어먹을 자식들, 다리라도 좀 설치하지'  원망의 말이 저절로 나왔다. 오를 때 늦어질 것을 대비해 대열의 맨 앞장에 섰다. 등산에 자신이 없을수록 뒤에 서면 안 된다. 뒤처져 오르다가 앞서간 일행이 쉬는 모습이 보이면 '아, 저기 가면 쉴 수 있겠구나' 하는데 막상 도착하면, 쉬던 일행은 출발을 해서 더 힘이 빠진 경험 때문이다.

인해전술의 나라 중국 답게 바위산길엔 사람이 자갈보다 더 많았다.

중간에 쉬면 정상에 오르지 못할 것 같아 쉬지 않고 걸어 올랐다. 쉬고 싶을 만큼 지쳐도 속도를 낮출 뿐 쉬지 않았다. 경사가 80도에 가까울 만큼 위험한 바위산길엔 정말 코가 닿을 정도였다. 바위능선에 가느다랗게 난 외길에선 반걸음만 잘못 내딛어도 낭떠러지로 떨어질 위험이 도사렸다. 앞사람 발목만 보고 계단을 밟고 걸었다. 올려다보면 까마득한 높이의 계단에 포기하고 싶을까 봐였기도 했고, 경사가 심해 실제 앞서가는 사람 신발이 코앞에서 끊임없이 움직였다. 코로 숨을 들이마시고 입으로 내뱉으며 오르고 또 오르다 보니 더 갈 곳이 없게 추락 방지철망으로 막혔다. 드디어  마침내 정상이다! 괜한 염려로 잠마저 설쳐 피곤했던 몸의 피로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쾌감을 불러일으키는 호르몬이 넘쳐흘렀다. 해냈다는 자신감과 뿌듯함이 몸을 감싸고도는 바람보다 더 상쾌했다.

문제는 다시 돌아가야 하는 내리막길이다. '무릎관절이 아프면 어쩌나?'싶어 다리를 아끼기 위해 지팡이를 짚은 손과 줄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나중엔 팔에 힘이 빠져 어깨도 아팠다. 산에서 살 수 없으니 돌아가야만 한다. 그것도 가이드가 기다리는 곳에 4시 30분까지 도착해야 한다. "마지막 케이블카를 놓치면 걸어내려가야 한다"면서 가이드는 "절대로 시간 내에 오라" 했기 때문이다.

정상에서 기념사진 촬영을 마치고 바로 하산을 시작했다. 10분여 내려오다 산에 올라오고 있는 아내를 만났다. 뒤처진 사람을 독려해 오느라 늦었다고 한다. V자로 된 산길 맨 아래에 도착해 다시 오르기 전 잠시 쉬었다. 쉬면서 처음으로 물을 마시고 초코파이를 먹었다. 체력이 방전됐지만 오래 쉴 수는 없었다. 까마득하게 올라야 할 계단 앞에서 다시 시작했다. 오르다 지치니, 다시 쉴까 하던 참에 엄마 생각이 났다. 무등산 천왕봉 계단을 두 발과 두 손으로 기어오르셨던 엄마다. 엄마처럼 나도 계단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개처럼 소처럼 기어오르다 모퉁이를 돌아 고개를 넘으니 멀리 가이드가 보였다. "정상에 갔다 왔냐?"는 손짓과 입모양에 "그렇다"고 대답해 보였다. 계단 위에서 나를 기다리던 가이드는 손을 뻗어 잡아당겨 주었다. "시간이 부족해서 늦으면 어쩌나 했는데 이제는 안심할 수 있겠다"면서 "등산에 나선 사람 중 가장 나이 많은 내가 1등으로 돌아왔고 약속시간까지 앞으로도 40분이 남았으니 걱정을 덜었다"고 했다. 기다리는 지점 근처 나무그림자가 드리운 바위에 길게 누웠다. '중국의 가을 하늘도 참 높고 푸르구나.' 구름이 흘러가는 모습을 보며 하늘멍을 하다 보니 회원들이 하나둘 돌아왔다. 4시 30분 전에 모두 다시 모였다. 지치고 힘들어하면서도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어려운 과제를 해냈다는 기쁨이 술렁였다. 출발하기 전 긴장감 대신 "다리가 아프다"는 말에서 여유가 묻어났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가이드는 등반도중 추락해서 죽는 사람이 매년 발생한다는 말을 했다. 미리 들었다면 포기자가 많을 뻔했을 말이다. 이제 세상 어느 산을 가도 '황산 천도봉도 올라갔다 왔는데'라며 도전을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마치 어려운 일을 앞에 둘 때마다 '군에서 훈련도 받았는데 이것쯤이야' 하며 살아온 것처럼...

언제나 눈은 게으르고 손은 부지런하다.

언제나 마음은 두렵고 몸은 용감하다.

이틀간의 황산 등정에서 얻은 도전정신과 자신감으로 남은 생을 힘차게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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