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콜로세움으로 알고 있는 콜로세우는 BC72년에 시작해 8년 후 티투스가 마무리했다. 거대한 것이란 뜻의 콜로세우는 80개의 아치마다 숫자가 새겨져 있지만, 귀족이 입장하는 동서남북의 아치에는 번호가 없다. 0~3층 구조로, 0층은 귀족, 1,2층은 시민, 3층은 여성과 노예의 관람석이었다. 무대는 여러 기둥 위에 나무판자를 깔고 모래를 깔았다. 목숨을 건 검투사와 모의해전 경기, 동물과 사람의 싸움이 무대에서 펼쳐졌다. 나무로 된 무대는 소리를 내는 효과가 있었고, 모래는 피를 청소하기 좋았다. 3층에 나무기둥을 세우고 소가죽을 펼쳐 묶어 지붕 역할과 무대에서의 소리가 3층까지 올라와 유지되도록 했다. 반쯤 무너진 이유는 콜로세우의 대리석을 빼서 조각품과 판테온 등 건물을 만드는데 썼기 때문이다. 이러던 중 콜로세우에서 천주교인들이 박해로 많이 순교했다는 문서가 발견되면서 교황의 지시로 콜로세우가 성지로 정해지고, 반이나마 남아 오늘의 모습에 이르렀다.
콜로세우에서 죽어간 영혼의 안식을 기원한다.
판테온은 모든 신들을 위한 신전이다. 판테온의 특징은 돔이다. 돔의 아래쪽은 두꺼운 돌판이, 중심으로 올라갈수록 얇은 돌판을 사용했다. 돔의 중심은 지름 9m 크기로 구멍이 뚫려 있다. 이 모습이 외눈박이 같다 하여 오클루스라 한다. 구멍이 뚫렸어도 비는 내부에서 밖으로 빠져나가는 공기 때문에 들어오지 못했다. 옛날 사람이 이런 원리를 알고 있었다니 놀랍다. 판테온을 중심으로 여러 갈래의 골목이 나 있고 기념품 상점이 많다. 가게를 지나치거나 직접 들어가 구경하기도 했는데, 직원이 적극적이다. 이탈리아 말로 설명하니 알 수는 없고 간간이 들리는 여어 단어 비슷한 발음과 눈치를 더해 짐작한다. 유럽 사람들이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같은 유럽인데 굳이 영국말을 배워서 해야 하나?'라는 생각 때문이란 소리를 듣고 '그렇겠구나'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 말을 듣기 전에는 프랑스 사람처럼 이탈리아 사람들도 쓸데없는 자존심 이겠거니 했다. 우리가 굳이 중국어와 일어를 일상에서 말하지 않는 것처럼 유럽도 그런 것이다.
로마는 분수의 도시다. 삼거리분수라는 뜻의 트레비분수는 공사 중이어서 직접 만져 볼 수 없었다. '동전을 하나 던지면 로마에 다시 올 수 있고, 둘을 던지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으며, 동전 셋은 현재의 사람과 헤어진다'고 한다. 가까이 다가갈 수 없어도 동전을 멀리서 던지는 사람이 있었다. 다시 오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엿보였다.
대법원 앞 테베레 강에 걸쳐진 다리에서 내려 나모나광장으로 갔다. 나모나광장은 길쭉한 직사각형이다. 나모나광장의 성당 철문에 이탈리아어로 오후 3시 미사가 있어 들어갈 수 있다고 쓰여 있는 것 같았다. 성당내부를 구경하며 살펴보니 미사를 드리는 분위기가 아닌 것 같다. 짧은 영어로 직원에게 물었다. "What time do we have missa?" 여직원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답 대신 되물어 온다. "What is misa?" '미사를 모른다고?', '내가 미사를 설명할 수 있는 영어 실력은 아닌데?', 그래도 대답은 해야 했다. 저쪽 의자에서 기도하며 기다리는 아내에게 진실을 알려야 하니까. 신부님이 영어로 뭐지? Father? Papa? 망설이다가 "Father give me on sunday or saturday, "라고 말한 후 손가락으로 동그란 밀떡을 그려서 내민 혀에 손가락을 올렸더니, 여직원이 눈을 반짝이며 웃으며 대답한다. "Sorry, not today missa". 오늘 미사가 없는 날이라고 말하는군, 내가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이탈리아어로 "그라찌에"라고 인사하고 돌아섰다. 철문에 붙은 안내문의 시간 앞에 요일이 쓰여 있었던 모양인데, 이탈리아어를 모르니 숫자만 읽고 일어난 해프닝이다.
공군에서 장교로 복무할 때 미군과 우리나라 군무원 사이에서 문서를 영한, 한영 번역하고, 통역을 하며 익혔던 영어 실력이 흘러간 세월 따라 함께 사라져 간다. 맥락 없이 문득 떠오른 단어 뜻이 뭐지? 하고 찾아볼 때가 가끔 있다. 군 시절엔 외국인을 보면 도와주겠다고 쫓아가고, 꿈도 영어로 꾼 적이 있는데, 기억력이여, 세월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