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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석 마샹스Machance Mar 16. 2016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도로문화

유레일 기차가 오스트리아에 들어서자 하얀 눈이 들판을 덮었다. 눈의 나라일 것 같았던 스위스에서는 융프라우요후 말고는 눈을 보기가 힘들으나, 오스트리아는 눈밭으로 우리를 맞는다. 독일 동쪽의 왕국이라는 뜻의 오스트리아, 소금광산에서 유래한 이름인 잘츠부르크.

독일과 프랑 관광지와 기차역 도로에는 할 일 없이 배회하며 흘깃흘깃 우리의 짐을 노려보는 사람들이 많아서 소매치기, 날치기당하지 않으려고 언제나 긴장해야 했다.
그러나 스위스와 오스트리아는 오가는 사람이 적기도 하려니와 할 일 없이 배회하는 사람을 찾기가 힘들다.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스위스, 독일, 오스트리 도로에는 자전거 도로가 발달되어 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편하도록 횡단보도에도 자전거 횡단용 보도가 별도로 구분되어 있었고, 보도에도 사람과 자전거의 구분 표시가 있었다. 길을 걷는 사람들은 자전거 도로를 침범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처럼 자전거도로에 차가 들어오거나 주정차가 되어 있지도 않았다. 우리나라는 자전거가 다니기에 너무 불편하고 위험해서 종종 뉴스에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아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유럽은 자전거 타기가 편하고 안전하다고 했다. 교환학생으로 핀란드에 도착해서야 자전거를 배운 자전거 초보인 아들이 자전거를 사서 학교를 통학하고, 시내를 다닐 때도 불편함이 없었다고 했다. 여행기간 동안 자전거 도로의 개념이 약한 우리가 자전거 도로를 걷거나 막아설 때마다 아들은 우리에게 자전거 도로를 비워두도록 했다.
또 하나, 신호가 없는 도로에서 도로를 건널 경우 언제나 우선권은 사람에게 있었다. 우리나라처럼 사람이 자동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리지 않고 자동차가 멈춰 서서 사람이 건너기를 기다렸다. 우리나라의 도로 문화에 익숙한 우리 일행이 도로를 건너려 할 때마다 차가 오는 것을 보고 멈춰 서 있으면 차들이 우리 앞에 와서 멈춰 서서 기다리는 경우가 100%였다. 자동차가 지나길 기다리는 우리에게 운전자는 먼저 건너가라고 손짓을 했다. 당연히 사람을 향해 위협적으로 클랙션을 누르는 경우도 없었다. 우리나라와는, 내 운전 습관과도 너무 달랐다.
서양은 개인주의라 다른 사람보다 나를 먼저 챙길 거라는 생각이 도로에서는 확실히 잘못된 것이었다. 도로에선 사람이 먼저였고, 사람이 적게 승차한 승용차보다 사람이 많이 승차한 대중교통이 우선이었다. 이런 것들을 보면서 내 운전습관을 반성하면서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보운전, 안전운전이 구호에 그치지 않고 내 습관이 되도록 해야겠다.
여성과 아이를 배려하는 것도 느껴졌다. 파리에 도착하는 날, 공항에 우리를 픽업 나온 운전사는 여자인 아내와 아내의 직장 동료의 캐리어를 옮기고, 아이들의 배낭도 옮겨 주었다. 당연히 팁을 줄 수밖에 없을 정도로...

관광지나 도로, 상점 내부와 기차 통로에서 다른 사람과 부딪치면 내가 분명히 잘못했음에도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들의 입에선 여지없이 "파르동(pardon), 인슐디궁(Entschuldigung)"이 튀어나왔다. 나도 그들처럼 해 보려 했으나 언제나 한 발 늦거나, 몇 걸음 옮기고 나서야 '아 나도 미안하다고 했어야 했는데…'  후회를 하곤 했다.
무뚝뚝함이 몸에 밴 우리가 아무 말 없이 박물관이나 식당에 입장할 때면 우리말로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건네 오는 경우도 있었다. 20년 전에는 '곤니찌와'였는데…. 우리도 서둘러 인사를 하면서 우리가 한국인걸 어떻게 알았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우리 생각엔 일본인, 중국인과 우리를 구분하지 못할 것 같은데 우리만 모르는 우리나라 사람의 특징이 있나 보다.


아들의 말에 의하면 북한 때문에 Korea를 아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북한이 국제 뉴스에 등장하는 나쁜 이미지의 소식 때문이라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그들이 보기엔 같은 Korea인데 우리는 북한을 갈 수 없다고 하면 "왜 그러느냐?"고 질문을 해서, 처음엔 구구절절 설명을 해 주었으나, 나중엔 '구 동독과 서독도 그랬다.'고 말을 하면 쉽게 이해를 했다고 한다.

잘츠부르크.

모차르트의 생가가 있고 영화 Sound of Music의 배경이 되는 도시답게 거리나 공원의 조각상에도 악기를 든 모습이 많았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겨울이라 공원 내에 출입을 제한한 공간이 있어서 제대로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영화 Sound of Music을 주제로 한 여행상품에서는 촬영지를 찾아다닌다고 하는데 우리는 미리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서 여러 곳을 찾아다녔다. 어린 모차르트가 걸어 다녔을 거리를 걷는다는 생각을 하니 모든 게 달리 보이고 감흥도 달랐다. 역시 사람은 보고 싶은데로 보고 느끼고 싶은데로 느낀다.


피자와 과일, 식수의 가격이 스위스나 프랑스, 독일에 비해 저렴해서 아내와 아이들이 좋아했다. 여행경비를 덜 걱정해도 되니 아이들에게 더 많은 것을 사 줄 수 있었다. 물 가격도 1.5리터짜리가 우리 돈 700원이라 목마름을 참는 경우가 더 줄어들었다. 그러나 물값이 싸도 여전히 사서 먹어야 하니 이곳에선 물 쓰듯 돈을 쓴다는 말은 맞지 않을 것 같다.

밤 8시쯤 Eye shopping 나간다던 아내가 일찍 들어와서는 "가게들이 문을 벌써 닫쳐서 그냥 들어왔다."고 한다. 사회복지가 잘 되어 있으니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우리처럼 밤늦게까지 상점을 열어 놓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맞아, 군에서 연락장교로 미군들과 함께 근무할 때, 미군들은 칼 퇴근해서 자신의 삶을 즐기러 갔었지. 우리처럼 상관 눈치 보면서 퇴근 못하고 미적거리진 않았던 생각이 난다.
일만 하는 우리, 삶의 여유를 찾고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느 정치인의 저녁이 있는 삶이란 말이 마음에 와 닿는다.


그나저나 나는 언제쯤 시차 적응이 될까? 일주일이 넘었으니 이젠 적응할 만도 한데, 이곳 시각으로 밤 9시면 졸리기 시작하고 11시에나 잠자리에 들어서 새벽 4시면 작은 눈이 동그랗게 떠지니, 곤란하다. 옆에서 잠자는 아내는 잠귀마저 밝아서 나의 작은 움직임에도 깨어나니 미안하기도 하고, 나는 나대로 피곤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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