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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석 마샹스Machance Mar 18. 2016

운터스버그, W.A. 모차르트와 영웅

아침 식사를 하고 여행에 나서기 전, 호텔 방에서 아들과 팔씨름을 했다. 있는 힘을 다 했지만, 내가 졌다. 지고도 기분이 좋은 것은 아들이 이만큼이나 컸구나 하는 뿌듯함이다.
아들이 어렸을 때 씨름하면서 일부러 져주면 펄쩍펄쩍 뛰면서 좋아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그 어린 아들이 이제는 외국에 나와 우리를 챙기며 다니니, 키운  보람에 져도 좋은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아들을 응원하고 지지하고 노력하고 싶다.

호엔 잘츠부르크 성에서 보면 건너편 멀리 우뚝 솟은 산이 있는데, 구 동독과 오스트리아의 국경에 있는 운터스버그 국립공원이다.

오늘은 운터스버그 국립공원에 가 보기로 했다.

호텔에서 버스를 타고 국립공원 케이블카를 타는 곳 앞 정류장에서 내렸다. 케이블카를 탈 때 가장 먼저 앞자리를 잡았다. 앞자리가 가까이 다가오는 산의 정상을 보기에 전망이 좋기 때문이다. 케이블카에서 내리는 곳이 바로 전망대였다. 전망대에서 보니 잘츠부르크 시내가 오밀조밀하게 정겨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전망대를 벗어나 산길로 눈을 돌리니 아래에서 보기와는 달리 눈이 가득했다. 길을 조금만 벗어나도 눈을 밟으면 무릎을 넘는 깊이로 발이 빠져서 걷기가 힘들 정도였다.
산 능선을 따라 철책이 있던 흔적이 동독과 오스트리아의 국경이었다. 한 봉우리에는 곡괭이 위에 모자가 얹힌 형상의 조형물과 그 아래에 '더 이상 이러한 죽음이 없기를'이라는 비석이 있었다. 처연한 모습으로 눈 속에 파묻힌 비석은 국경을 넘던 많은 죽음을 생각하게 했다. 우리도 남과 북으로 나뉘어 있는 상태이다. 북한 사람들의 의식이 깨어나 국경을 넘어 탈출을 시도하면 나중에라도 이런 기념물이 생기지 말라는 법이 없다. 안타까운 죽음이 없기를, 적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또 운터스버그 국립공원은 영화 Sound of music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트랩 대령과 그의 7명의 아이들과 마리아 수녀가 오스트리아를 넘어 스위스로 탈출하는 장면의 배경이 되는 곳이 운터스버그 국립공원의 산이다.
1,776m에 있는 산장 겸 전망대는 융프라우요후 스핑크스 전망대에 비하면 규모가 많이 작았다. 그러나 융프라우요후는 고산병 증세로 인해 머리가 아팠으나 운터스버그 국립공원의 산은 그렇지 않아서 더 좋았다. 우리 일행이 즐길 수 있는 산의 높이는 2,000m급인가 보다. 전망대 밖으로 나가 이어지는 산길을 따라 인근 산봉우리로 올라가는 눈길에 미끄러지고 비틀거리며 걸었다. 엉금엉금 가는 모습이 서로 걱정되면서도 재미있어서 웃었다. 우리들의 웃음소리가 눈이 시리도록 하얀 고산 봉우리에 쌓인 눈 위를 미끄러져 다녔다. 산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잘츠부르크 시내 전경의 아름다움을 보는 즐거움보다 계획에 없던 눈 놀이가 더 즐거웠다. 산봉우리를 오르면서 산 아래 왼쪽은 독일마을, 오른쪽 마을은 오스트리아인 국경을 수시로 넘나들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눈에 덮여 있어서 영화와는 다른 계절이지만 그래도 우리나라로 돌아가 영화 Sound of music을 다시 보게 되면 더 사실적으로 느끼겠지?


즐거운 산행을 마치고 점심 식사를 하고 잘츠부르크 역사 지구로 이동을 했다. 잘츠부르크 시내 어디에서도 눈에 띄게 보이는 호엔성은 잘츠부르크를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찾는 곳이다.

호엔 잘츠부르크 성에 오르니 잘츠부르크 시내 전체가 더 가까이 보였다. 성안 이곳저곳을 둘러보니 호화롭다. 2차 대전 말기에는 독일 포로들이 수용되어 있기도 했던 곳이라 한다. 성벽에 서서 멀리 우뚝 솟은, 오전에 올라갔던  운터스버그 국립공원을 바라보았다. 운터스버그 산 너머로 석양이 지면서 황금색으로 단장한 하늘이 잘츠부르크 시내조차 노랗게 만든다.


잘츠부르크 역사 지구 내에서 핵심인 곳이 모차르트 생가와 대성당이다. W.A. 모차르트의 생가는 노란색 4층짜리 건물이다. 주변에는 게트라이데 쇼핑거리와 호엔 잘츠부르크 성, 성당들이 있어서 관광객들로 붐볐다. 모차르트의 생가는 피아노, 바이올린, 악보, 모차르트와 가족사진들, 모차르트가 살던 당시의 환경들이 음악과 함께 볼 수 있도록 박물관으로 꾸며져 있었다.
모차르트는 어릴 때 음악의 천재성을 발견하고, 아버지, 누나와 함께 연주여행을 다녔다고 한다.  여행을 통해 다른 나라의 음악 대가들과 만나고 배움으로써 음악적 재능을 더 키웠다고 한다. 여행의 유익함을 모차르트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여행을 자주 다니면 가족 간의 정이 두터워짐은 물론 아이의 공부에 도움이 된다.
모차르트를 주제로 한 초콜릿, 기념품들이 상점마다 가득했다. 1756년에 태어나 36년간 살다 간 한 사람의 천재로 인해 몇 백 년이 흐른 지금도 먹고사는 사람들. 어쩌면 어린 모차르트가 걷거나, 장난치며 뛰어다녔을 골목길들을 나도 걷는다는 생각에 모차르트 생가에서 흘러나오던 음악이 길을 걷는 내내 귓전에 들려오는 듯했다.
'한 사람의 천재가 1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말이 떠 올랐다. 또 어느 책에선가 본 '위기에서 나라를 구할 영웅이 없어서 슬픈 것이 아니라, 영웅이 필요한 시대가 된 것이 슬프다.'는 구절도 생각났다.
우리나라, 영웅이 필요한가? 영웅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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