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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석 마샹스Machance Mar 15. 2016

독일 뮌헨, 적우침주積羽沈舟

스위스 취리히를 떠나 리히텐슈타인을 지나자 드넓은 초원과 목가적인 집들이 드문드문 보이더니 독일의 땅이 시작되었다.

20년 전 알프스의 몽블랑으로 가면서 여행가이드가 버스를 어느 고개에 세우더니 "이 고개에 비가 내리면 어느 방향으로 흐르느냐에 따라서 프랑스나 스위스나 또는 이탈리아로 간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오늘 스위스 취리히에서 리히텐슈타인을 지나 독일 뮌헨으로 왔다. 우리가 소유한 표가 유레일패스이므로 어느 곳이든 내려서 보고 다시 기차를 타면 되기 때문에 우리가 멈추어 구경하는 곳이 관광지가 된다. 언덕 위에 떨어진 빗물 방울인 우리가 그렇게 선택한 곳이 독일 뮌헨이다.     


나는 지금까지 억센 억양의 독일어만큼이나 독일은 경제적으로도 군사적으로도 강한 나라라고 생각해 왔다. 1,2차 세계대전의 폐허와 동서로 나뉜 분단국가의 불리함을 극복해내고 다시 세계 강국이 된 나라가 독일이기 때문이다.     


기차역에서 걸어서 찾아간 호텔에 도착하자 아들이 나섰다. 호텔에 체크인을 하기 위해 호텔직원과 대화하는 아들의 곁에 서서 독일어를 듣는데 억센 억양의 독일어는 아들에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어를 말하는 아들이 더 멋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마침내 키를 받아 들고 방에 짐을 풀었다. 여행하는 사람에게 시간은 머뭇거리면 놓치는 기회이기에 쉴 틈도 없이 호텔을 나섰다.

거리를 걷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들이 씩씩거렸다. 어떤 청년이 우리를 향해 인종차별적인 말을 하고 시비를 걸어온다며 아들이 분해하는 것이다. 우리가 잘못한 것도 없다. 어깨를 부딪친 것도 아니고 그저 관광을 하기 위해 길을 걸었을 뿐이다. 우리까지 기분 상할까 봐 그 청년이 했던 말을 끝내 해석해 주지 않아서 독일어를 모르는 우리야 뭐라 해도 모르고 지나쳤지만, 독일어를 전공한 아들의 경우는 달랐다.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젊은 피가 끓는 아들은 못내 분해했다. 계속해서 마음을 끓였는지 스트레스로 코피가 날 정도로……. 

아들이 목계(木鷄)가 되기에는 아직 세월이 부족한 탓이고, 나 역시 기성자가 되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하기에 아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내 탓이다. 최고의 싸움닭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유명한 기성자마저 목계(木鷄)를 훈련시켜내는데 40일이 걸렸다. 하물며 기성자의 그림자에도 미치지 못하는 나야 더 말할 것이 없다. 그런 내가 아들을 이끄니 이는 봉사가 봉사를 이끄는 격이다.

기성자의 목계지덕(木鷄之德)으로 따지면 나는 어느 수준에 있는가? 쓸데없이 거만하지는 않으니 훈련한지 열흘은 지난 닭임에는 틀림없다. 때때로는 태산처럼 움직이지 않는 진중함도 있기는 하나 아직도 상대방의 소리와 그림자에 반응하는 때가 있으니, 훈련 20일을 마친 닭은 아니다. 그 이름 모를 독일청년은 강하긴 하나 교만하여 아직 자신이 최고인 줄 알고 있으니 훈련10일에도 못 미치는 닭이다. 아들은? 아들은 비록 씩씩거리기는 했으나 그래도 참아 내었으니 10일은 지난 닭이다.     


이 일로 독일에 대한 내 생각이 달라졌다. 가족 사이에서 감정전이는 빠르다. 독일에서 선물을 사려던 계획을 취소하고, 입장료를 내는 곳에는 일절 들어가지 않았다. 식사는 아이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 먹었지만, 나 혼자 만이었다면 1센트도 아까워 차라리 굶었을 것이다. 지갑을 닫고 싶은 생각에 지출을 최소화했다. 보이는 것들도 그리 매력적이지 않게 보였다.

한 사람의 잘못된 행동이 쌓여서 개인의 일탈이 아닌 집단의 오류로 나타난 경우가 바로 독일의 나치다. 히틀러와 그의 참모들만의 탓이 아니다. 그 때 그 국가의 사회를 구성하는 시민들의 대다수 인식이 나치를 더 키운 면이 있다. 잘못을 모르는 일본보다야 백배 낫지만, 전후 독일이 아무리 진중한 사과를 거듭하고 행동에 나서도 애초에 잘못을 저지르지 않음만 못하다. 우리 사회가 좌우 극단으로 치닫는 사람들을 경계해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관광을 하는 우리 몇 사람의 영향력이 미미해서 흔적도 남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적우침주(積羽沈舟)라 하지 않았던가? 가벼운 깃털도 배 위에 쌓이고 또 쌓이면 배가 가라앉는다는 말이다. 함께 여행하는 아이들이 장래 외교관이 될 수도 있고, 정부의 주요직책을 맡을 수도 있다. 그 때 성장한 아이들이 오늘의 일로 독일에 대해 부정적인 선입견을 갖고 일을 하게 될 것이다. 독일에 결코 이로운 상황은 되지 않을 것이다.

독일만 그런가? 한편으로 우리를 돌아보면, 우리나라에서도 독일 청년의 행동과 유사한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뉴스를 보면 우리의 경우 청년뿐 아니라 어른들까지 나선다. 자신이 고용해서 일을 시키면서도 동남아 사람이라는 이유 하나로 욕하고 무시하며, 지급해야 할 월급을 주지 않기도 한다. 월급대신 폭력을 주기도 한다.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던 외국인에 대한 차별적인 말이나 행동이 결국은 우리나라 이미지를 떨어트리고 손해를 가져온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외국인 또한 그들 나라에 돌아가면 그들이 경험한 일들을 나와 같이 글로 쓰거나 말로 전파하지 않겠는가? 우리나라를 떠난 외국인들이 그들의 나라에 돌아가서 우리 상품을 구매해서 쓰려 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월급을 주지 않고 상품만 생산해서 수출하려던 기업주에게는 결국 손해로 돌아오는 것이다.

외교는 외교관만 하는 것이 아니다. 외교에서 가장 크게 고려되는 것 중의 하나가 국민감정이다. 개인이든 국가든 '못 먹어도 고'라는 말처럼 손해가 되는지 뻔히 알면서도 감정 때문에 행동하는 경우가 있다. 국민감정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기도 하고, 국민감정을 무시하고 정책 결정을 한 지도자는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돈에 자존심까지 팔아야 할 만큼 절대 빈곤 상태가 아닌 경우, 사람은 돈, 즉 경제가 전부가 아니란 말이다.

우리가 우리나라에 와 있는 외국인에게 잘 대해주는 행동이 그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우리 스스로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꼭 외국인에게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빈부의 격차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는 우리나라다. 우리 시민들끼리도 나보다 조금 못산다고, 나보다 못 배웠다고, 무시하고 갑질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이런 것 또한 배위에 쌓이는 깃털이 된다. 남이 아닌 우리 스스로도 깃털을 쌓아 우리의 배를 가라앉게 하는 것이다.     


사회심리학에서 사람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것 같지만 실제론 감정에 의해 판단하고 행동한다고 배웠다. 나 또한 그렇다고 생각한다. 어떤 결정을 할 때 이리재고 저리재서 가장 이익이 되는 쪽으로, 또는 가장 손해가 적은 쪽으로 선택하고 행동한다고 사람들은 스스로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마케팅을 위한 직원 교육내용에 보면 실제로는 말 한마디에 고객의 선택을 바꿀 수 있다고 가르치고 또 이를 마케팅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세상은 나 아닌 모든 사람이 고객이다. 국가 또한 고객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사람을 대하는 내 말과 행동부터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그것이 바로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고 국가를 사랑하는 방법이다.

독일에서 목계(木鷄)와 적우침주(積羽沈舟)를 생각해 보면서 스스로를 반성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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