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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석 마샹스Machance May 05. 2016

휘파람

나무 사이 풀이 발목만큼 자란 숲길이 있었지.

그 길가엔 잎마다 흰 목도리를 두른 클로버도 있고,

해 질 녘 하늘 닮은 연보랏빛 제비꽃도 피었고,

노란 머리 꽃다지와 민들레도 피어있지.

하얀 나비, 노란 나비,

빠알간 톱풀 꽃봉오리 위를 느린 날갯짓으로 날며

이른 여름을 불러들이고 있었지.

나뭇가지를 떠나 파아란 하늘 날던 노란 꾀꼬리는

피곤한 날개를 접어 다시 나무 꼭대기에 앉았지.


나무 사이 풀이 발목만큼 자란 숲길을

땅만 보고 정신없이 걷는 나그네가 있었지.

꾀꼬리는 휘파람을 불었지.

그 휘파람 소리는 아가씨를 유혹하는

부질없는 총각의 휘파람 소리와는 달랐지.

노래하는 휘파람 소리였지.


나무 사이 풀이 발목만큼 자란 숲길을

바람이 내달렸지.

바람에 기대어 나그네는 땀을 식혔지.

꾀꼬리가 다시 나그네에게 휘파람을 불었지.

나처럼 쉬엄쉬엄 쉬었다 가라고,

가끔은 휘파람도 불며 쉬면서 가라고….

나그네는 나무 등걸에 걸터앉았지.


나무 사이 풀이 발목만큼 자란 숲길에서

나그네도 꾀꼬리 따라 휘파람 불었지.

나그네 휘파람 소리를 꾀꼬리는 귀 기울여 들었지.

나그네가 휘파람을 멈추면

다시 꾀꼬리가 휘파람을 불었지.

해 기우는 으스름 숲길에서

휘파람 소리 어스름 바람 타고 흘러 다녔지.


* 제목의 배경 그림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의 '아르장퇴유 부근의 개양귀비꽃'이며,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서 촬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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