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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석 마샹스Machance Oct 23. 2016

하루, 마지막

어떤 하루는 너무 길었고, 어떤 하루는 무척 짧았다.

하루를 지낸 마음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음질치다가 시간을 놓아버렸다.

해가 진 거리로 스멀스멀 어둠이 기어 나왔다. 호주머니에 든 종잇조각처럼 여기저기 구겨져 있던 사람들이 몸을 곧추세우고 어두워진 거리로 나왔다. 가로등 누런 불빛은 사람들의 귀퉁이가 떨어져 나간 마음을 말없이 읽어내었다.

호주머니에 손을 푹 넣고 고개도 들지 못한 체 길을 걸었다.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이 먼지와 함께 바짝 마른 나뭇잎을 무심히 훑고 지나갔다. 심난한 듯 나뭇잎이 바스락거렸다.

갈증이 났다. 갈증은 물로 달랠 수 있으나 헛헛한 마음의 허기는 무엇으로도 달랠 길이 없다. 마음도 바짝 말라 타들어 갔다. 오늘 하루도 높고 푸르렀다. 그런 하늘을 머리에 이고 지낸 하루가 어둠을 따라 나뭇잎처럼 바짝 말라버렸다.        


유난히도 길고 더웠던 2016년의 여름, 8월에 모든 가족이 제주도로 여행 가자던 약속은 아버지의 병원 입퇴원으로 비행기 티켓을 취소해야만 했었다. 여행 계획이 사라지면서 2002년 8월에 부모님과 온 가족이 함께 제주도에 가 본 것이 제주도로의 마지막 여행이 되어버렸다. 또 7월에 우연인 듯 아버지와 함께 떠났던 목포에서의 2박 3일이 아버지의 마지막 여행이 되었다. 아프신 아버지의 건강이 갈수록 악화되어 여행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또 어떤 것들이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 이렇듯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많은 것들이 하루로 다가왔다가 희미한 자국도 남기지 않은 체 기억의 뒤편으로 사라진다. 그러다 어느 날 다시 마지막이라는 수식어를 앞에 단 추억이 되어 되돌아온다. 마지막 위에 다른 마지막이 켜켜이 쌓여서 또 다른 마지막으로 이어져가는 것이다. 사소하지만 그 날 그 식당에 간 것이, 그 날 계단에서 잡아드렸던 손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 뒤늦게 의미를 부여할 때 그 하루의 순간은 마지막이 된다. 하루를 산다는 것은 또 하나의 마지막을 짓는 일이다. 마지막은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늘 하루와 과거의 하루에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순간에는 몰랐었지만, 그때가 바로 그 순간의 마지막이었다.

나만 몰랐을 뿐 시간은 삶의 잔인함을 알고 있었다. 삶이 잔인한 것은 단 한번뿐이라는 것 말고도, 결코 이전으로 되돌아 갈 수 없는 불가역성 때문이라는 이유가 더 크다. 단 1분만이라도 그때 그 순간으로 되돌아 갈 수 있다면 생의 마지막이 될 순간을 그리 허망하게 매듭짓지는 않았을 것이다.       

병상에 누우신 아버지를 뵐 때마다 드는 생각은, 비극적이게도 지금 이 순간순간의 모습이 아버지의 남은 생애 중 가장 좋으신 상태라는 것이다. 날마다 좋지 않으신 상태로 말씀 없이 한 걸음씩 걸어 들어가시는 바짝 여위신 아버지의 모습이 안타깝고 애잔하다. '어쩌면 지금 슬픈 듯이 눈 감으신 모습이 살아생전 마지막의 모습일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면 소스라치게 놀란다. 이게 무슨 방정맞은 생각인가? 병상에 계신 아버지께 '내일 또 올게요,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날마다 인사하는 나는 또 누구란 말인가?     


오늘은 혀 가득 빨갛게 피가 맺히셨다. 이젠 말씀을 잃어 가신다. 힘들게 겨우 내시는 목소리는 벌겋게 녹슨 쇠가 부딪치는 소리처럼 쉬어서 알아듣기 힘들다. 귀를 가까이 대고 들으며 말씀의 의미를 추측하여 몇 번을 되묻고 나서야 아버지께서는 가로젓던 고개를 끄덕여 주신다.

'잘 주무셨어요?' 인사에 끄덕임으로 인사를 받으신다. '아버지, 제가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낳고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머니 살아 계실 때 어머니 잘 보살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라는 말에도 고개만 끄덕이신다. 아버지께서 하시고 싶은 말씀은 심연의 침묵 속으로 가라앉고 눈짓과 고갯짓만 남았다. 아버지의 침묵 속에서 어쩔 줄 모르는 나는 혼잣말을 한다. 말없이 아버지의 다리만 주물러 드린다. 6인 병실의 부산스러움 속에서도 진한 고독감을 느낀다.

이따금 하얀 천정을 물끄러미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눈길을 따라 나도 천정을 본다. 아버지께서는 하얀 천정에 과거의 추억들을 영화처럼 찍어 내시면서 보시는 건 아닐까? 아버지께서 보시는 걸 나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내 눈에는 그저 하얀 천정일 뿐이다.

병상에 누우셔서도 무거운 아버지의 역할을 내려놓지 않으신다. '얼른 가보라고'  손짓을 하시며 자식 걱정만 하시는 아버지이시다. 그런 아버지의 곁에서 아버지와의 추억을 되새기며 이야기해드린다. 아버지께서 살아내신 삶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 가득한 소중한 삶이었음을 알려 드리려고 발버둥 쳐본다.          


내가 대학생이던 때 몹시 아팠던 적이 있었다. 아버지께서는 밤새워 말없이 내 머리 맡을 지키셨다. 그때 아버지께서는 식사도 안 하셨다. 더 어린 시절, 앨범 속 흑백사진을 보면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 때다. 아버지께서는 어린 자식 다섯을 데리고 유달 해수욕장으로 가족 피서 여행을 하셨다. 이 여행에 대한 기억은 파도소리는 들리나 짙은 안개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바다처럼 흑백사진 속에 남아 있는 것이 전부다. 다만 몇 년 전 아버지께서 웃으시며 말해 주신 이야기는 귓가에 쟁쟁하다. "너희들은 배고프다고 하는데 그때 해수욕장에 갖고 간 돈이 딱 떨어져 버렸지. 호주머니를 탈탈 털어서 라면을 사 주었더니 국물까지 맛있게 먹던 모습이 예뻤었단다." 정작 아버지께서는 불어 터진 라면 가닥 하나, 국물 한 방울도 드시지 못했을 터이다. 굶으시면 서도 어린 자식들 입에 음식이 넘어가는 것이 행복하셨다는 의미의 말씀이시다. 그런 아버지께서 주사에만 의지해 3주가 넘게 금식을 하시고 계시는데, 밥을 먹고 있는 내가 미련하다 못해 밉다.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밥 알갱이 하나하나가 가시처럼 목 여기저기에 걸려서 피가 날법도 하건만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잘도 넘어간다. 젖을 뗀 이후로 들여진 습관이란 게 참 무섭다. 사람은 밥을 먹어야 살 수 있다는 현실이 혐오스럽다.          


갈 곳을 잃은 내 마음을 어디 둘 곳도 없다.

계절은 가을이건만 내 속은 이미 엄동설한이다.

어둠 속 저 바짝 마른 나뭇잎 아래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을 숨겨둘까? 누런 가로등 불빛이 내 마음을 읽을 수 없도록….

아버지를 위한 기도로 하루가 또 그렇게 흘러간다.

하루는 해석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삶이 다 그렇듯이….

쓸데없이 글이 괜히 길었다. 쓸데없이 하루가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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