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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석 마샹스Machance Nov 06. 2016

고장 난 우산의 후회

청소 요령에 관한 TV방송을 보고 청소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에는 춥다는 이유로, 봄에는 황사때문에 잠시 창문을 열고 겨우 방만 청소하며 지내다 보니 눈에 거슬리는 것들이 많았다. 정리하고, 쓸고, 닦으니 여유 공간이 생기고 환해졌다. 여유롭고 마음까지 개운한 것이 집을 청소한 것이 아니라 마음을 청소한 기분이다. 방충망을 걷어내고 이불을 털었다. 방충망 없이 보는 하늘은 언제나 더 가깝고 푸르다.

예전에 '빨래를 하고 나면 마음을 빨아낸 것 처럼 마음까지 깨끗해진다. 그래서 마음이 심란하고 울적해지면 빨래를 한다.'던 자취를 하던 친구의 말이 생각났다. 그때는 짐작만 했던 친구의 기분을 오늘은 제대로 알 것 같다.

‘더 청소할 곳은 없나?’ 찾다가 신발장을 열었다. 퀴퀴한 신발들의 냄새가 기다렸다는 듯 득달같이 내게 달려든다. 그러나 내 코는 금세 적응해서 이내 냄새를 잊는다. 신께서 코 하나는 참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스친다. 계절에 맞는 신발끼리 정리를 했다. 군함같이 크기만 할 뿐 검은색 일색이라서 멋이라곤 없는 내 신에 비해, 희고, 붉고, 파랗고, 노란 색에 디자인까지 예쁘고 아담한 아내의 신발이 주인처럼 아름답다. 신발장의 다른 쪽 문을 여니 우산들이 삐뚤빼뚤 세워져 있다. 우산을 정리하다가 한쪽 구석에 처박힌 체 널브러진 우산이 눈에 들어왔다. '아~ 이 우산!'     


지난겨울 생각이 났다. 겨울답지 않게 따듯하다고 방송에선 호들갑을 떨었다. 12월에 눈 대신 비가 자주 내렸다. 크리스마스를 일주일여 앞두고 또 겨울비 내리던 날, 동창들의 송년회에 참석했다. 내일모레 육십을 바라보는 친구들이다. 다들 앞만 보고 바쁘게 사느라 젊었을 때는 일에 치여 얼굴 보기 힘든 친구들이었다. 준비된 음식에 더하여 몇 차례 추가 주문한 음식마저 떨어질 때쯤 세상 사는 이야깃거리도 떨어졌다. 잠시 조용해진 틈을 타서 '이제 아플 나이이니 병들지 않도록 건강에 신경을 쓰자'는 말로 모임이 끝났다. 매번 모임의 결론이기도 하다.


친구들과 헤어져 비바람 속에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며 육교를 건널 때였다. 갑자기 바람이 거세지더니 쓰고 있던 우산이 훌러덩 뒤집어지고 말았다.

"어?, 이런!"

뒤집어진 우산을 바로 잡고 몇 걸음 걸었는데 부는 바람에 우산이 또 뒤집어져버렸다. 우산을 다시 바로 잡으려다 우산 살이 부러졌다. 손에 든 책도 놓쳤다. 우산은 고장 나고 책과 몸도 비에 젖었다. 비에 젖은 책을 보니 마음까지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아 참 나! 겨울에, 내리라는 눈은 안 내리고 끄느름하게 궂은비는 왜 내리는 거야?" 짜증이 솟았다.

빗방울 맺힌 안경을 닦을 새도 없이 우산살이 부러져 찌그러진 우산을 펼쳐 들었다. 마음까지 찌그러진 느낌으로 터덜터덜 걸었다. 기왕에 비에 젖은 몸이니 비를 피하기 위해 서두를 것도 없었다. 집에 들어서기 전 우산을 버릴까 하다가 이마저도 귀찮아서 대충 빗물을 털어서 신발장 우산 두는 곳에 쑤셔 박았다. 그 뒤로도 몇 차례 겨울비가 내렸지만 밖으로 나가는 내 손엔 매번 다른 우산이 들려 있었다. 청소하면서 발견한 고장 난 우산은 겨울비 속에 우산살이 부러진 바로 그 우산이었다.     

청소하면서 모아 둔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길에 고장 난 우산도 함께 집어 들고나갔다. 우산을 재활용함에 버려도 되나? 고민을 하는데…. 문득 우산이 하는 말이 들렸다.

'나를 그런 눈으로 보지 마라. 내가 처음부터 고장 난 우산은 아니었다. 나도 한 때는 잘 나가는 우산이었다.'


나는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항상 긴장상태로 언제나 예민한 우산이었다. 잠도 자지 않고 기다리던 나는 허리춤의 스위치를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나를 활짝 펼쳤다. 내가 뻗은 팔을 따라 넓게 펼쳐진 하늘색 천에는 하얀 구름무늬가 드문드문 그려져 있었다. 활짝 펼쳐진 내 모습은 그 자체로 하늘이었다. 비가 오는 날, 내 위로는 비가 내려도 내 밑으로는 빗방울 없는 맑게 갠 하늘이었다. 이렇게 완벽한 내 모습이 스스로도 늘 만족스러웠다.

하늘이 구멍 난 듯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도 나는 온 세상에 내리는 비를 다 막아 낼 수 있는 양 어깨를 활짝 폈다. 여덟 개나 되는 팔을 쭉 뻗어서 내리는 빗방울들을 거부했다. 웬만한 비바람 앞에서도 나는 강한 팔로 덮개 천을 더 팽팽하게 펼치며 견디어 내었다.

어떤 날엔 장난 삼아 빙빙 돌면서 내 팔 끝에서 튕겨져 나간 빗방울이 남에게 튀어도 나는 결코 반성할 줄 몰랐다. 오히려 우산살이 부러져 한쪽이 찌그러진 우산 사이를 지날 땐 그 우산을 비웃으며 보란 듯이 빗방울을 튕겨내며 지나쳤다. 가뜩이나 좁은 골목길에 펼쳐진 우산으로 더 좁아진 길에서도 나는 의기양양 우쭐대며 더 높은 곳에 내 팔을 펼쳤다.

비가 내리지 않아서 쉬는 날은 '언제 비가 내리나?' 마음 조이며 빗소리만 기다렸다. 쉬는 것은 내 체질이 아니었다. 경쟁 속에서 느껴지는 팽팽한 긴장을 즐겼다. 다른 날은 몰라도 비가 내리는 날만은 내 세상이었다. 주인으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는 비 내리는 날이 최고였다.


몇 번의 여름이 지나고 나의 하늘색 천은 흐린 날의 하늘처럼 푸르뎅뎅하게 빛이 바랬다. 내 얼굴을 수놓았던 흰 구름은 흔적도 희미하게 빛을 잃었다. 그렇게 변한 내 모습을 나만 몰랐다. 세월이 더 지나 굽어진 팔이 부러지고, 벗겨진 페인트처럼 탈색되어버린 덮개 천에 구멍마저 나 버렸다. 허리춤의 스위치를 눌러도 팔이 펴지지 않았다. 당혹스러웠다. '이건 내 모습이 아니야, 내가 이럴 수는 없어. 나는 아직도 하늘의 비를 얼마든지 막아낼 수 있어!' 그러나 형체 없이 흐르는 세월까지 막아낼 순 없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단다. 그건 마음으로 봐야 잘 보인단다.' 사막의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했던 말을 내게 전해준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마음으로 본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중요한 것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빗방울들이었다. '보는 것은 당연히 눈으로 보는 것이지 마음으로 뭘 보겠어? 그냥 폼 잡아보려고 해보는 말이겠지.'생각했다. 이제는 마음으로 본다는 것을 알 것도 같다.


내게 중요한 것은 내리는 빗줄기를 뚫고 앞만 보며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속절없이 흐르는 세월이라는 것을…,

때론 멈추고 천천히 걸어야 한다는 것을…,

세상에는 앞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옆과 뒤도 있다는 것을…,

비가 내리는 날보다 비가 내리지 않는 날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내리는 빗방울이 섧디 서러운 하늘의 눈물이라는 것을…,

알았어야 했다. 그것도 진즉에….


나는 하늘 닮아 푸른데, 너는 왜 땅 닮아 검으냐고,

너는 왜 쓸데없이 너무 크냐고, 너는 왜 너무 작으냐고 나무랄 것이 아니었다.

내가 존재해야 하는 의미가 있듯이, 그것들은 그것 나름대로 존재의 의미가 있고 다 쓸모가 있었다. 장자가 '인개지 유용지용 이막지 무용지용야(人皆知 有用之用 而莫知 無用之用也)'라고 했던 말이 옳다. 이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없다. 비록 쓸모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 쓸모없음 때문에 쓸모가 있다는 것을 고장 난 우산이 되어서야 알았다.


수업시간에 잘못해 교실 구석에서 벌을 받는 아이처럼 쓰레기봉투를 든 체 멍하니 서서 우산의 이야기를 들었다. 우산이 들려준 이야기가 우산만의 이야기일까? 여기저기 고장 나기 시작하는 나는 어떤가?     

쓰레기를 버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 손에는 우산이 그대로 들려 있었다. 고장 난 우산이 나처럼 느껴졌다.

내일 출근길에는 고장 난 우산을 들고나가야겠다. 낡았을망정 고치면 아직 몇 해는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정든 우산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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