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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석 마샹스Machance Nov 17. 2016

아버지의 장례미사에서

불꽃같은 삶

아버지!


밝을 명(明) 자에 불꽃 섭(燮) 자로 이루어진 아버지의 이름 명섭. '밝은 불꽃'이라는 의미입니다.

영원히 푸르기만 할 것 같던 나뭇잎이 붉고 노란 불꽃으로 피어납니다.

영원히 우리 곁에 머무르실 것 같던 아버지께서도 한 송이 밝은 불꽃으로 피었다가 불꽃 되어 떠나갑니다.

곱게 물든 단풍으로 아름답게만 보이던 가을이 아버지께서 떠나시는 날에 소슬한 찬 바람으로 다가옵니다.


불꽃!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불꽃이 일어섭니다. 불꽃이 불꽃으로 이어지고 주춤주춤 어둠이 물러납니다.

아버지께서는 우리 가정과 사회를 밝히신 불꽃이셨습니다.

추운 이의 곁에서는 따뜻한 불꽃 되셨고, 외로운 이들 곁에서는 위로의 불꽃으로 머무르셨으며, 불의를 불사르는 맹렬한 불꽃이기도 하셨습니다.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견뎌내신 아버지의 세월.

기억을 거슬러 오르니 아버지는 한 그루 커다란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습니다.

이름 없이 죽어간 동네의 주검들을 거두시고,

자손 없는 친척 어르신을 모시고 마지막 길까지 배웅하셨습니다.

동네의 대소사에 항상 주축이 되셨던 아버지의 모습에서 배려하는 삶을 배웠습니다.

우리 어린 자식들에겐 언제라도 뛰어가 매달려 놀며, 힘들 땐 기대어 쉬고, 삶의 지혜를 일러 주시고, 먹을 것을 내어주시던 한없이 다정다감한 친구 같은 나무였습니다.

자전거 뒷자리에서 아버지의 허리춤을 붙잡고 초등학교로 가던 길에서 바라 본 아버지의 등은 거대한 산과 같은 든든함이었습니다.

종이 위에 아버지께서 그려 주시던 새 그림이 생각납니다. 눈을 감고서도 따라 그릴 수 있는 아버지의 파랑새는 여전히 우리 가슴속을 노래하며 날아다니는데 아버지께서는 떠나가십니다.

어린 제게 가장 소중했던 썰매와 나무배가 지금은 어디로 갔을까요? 지금 그 장난감들이 곁에 있다면 아버지께서 직접 만들어 주시던 사랑만지는 듯 느낄 수 있을 텐데요.

우리를 낳고 길러주신 아버지 감사합니다.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돌아가시기 전 아버지께서 잡아 주셨던 손의 온기는 아직 식지 않았는데, 오늘 아버지께서는 우리 곁을 떠나갑니다.

타나토스가 드리우는 긴 그림자 속에 살면서도 죽음을 잊고 살던 저는 떠나가시는 아버지를 배웅하면서 생각합니다.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또 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아버지께서는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 열심히 살고, 어제 죽은 것처럼 오늘을 불꽃처럼 태우며  살라고 가르치십니다. 아버지라는 커다란 나무 그늘에 살면서도 아버지의 크신 그늘을 미처 다 깨닫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불꽃처럼 환하게 언제나 우리를 비추셨던 아버지는 우리 가슴속에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타오릅니다.

아버지께서 몸소 실천해 보이신 가족사랑을 잊지 않고 실천하며 살겠습니다.


오늘 정명섭 요셉 아버지께서는 하늘로 떠나서  기다리시는 어머니 곁으로 가십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기쁘게 만나 재회하실 모습에 어리석은 자식들, 슬픔의 눈물을 거둡니다.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하느님 안에서 행복하게 지내시며 기쁘게 부활하세요.

아버지께서  남기고 간 우리 자식들이 뭉쳐 사는 모습을 굽어 살펴주세요.


용서하시는 하느님!

불쌍한 우리 아버지에게 천국의 문을 열어 주소서.

사랑의 주님!

우리 아버지의 상처를 어루만져 치유해 주소서.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 님!

우리 아버지를 품 안에 받아 안아 보살피소서.


아버지께서 떠나시는 마지막 길, 외롭지 않도록 함께 해주신 신부님, 수녀님, 형제와 자매님, 그리고 친척과 친구분들께 아버지의 감사 인사를 대신 전합니다.

[善生福終日, 2016년 음력 10.14, 양력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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