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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석 마샹스Machance Nov 25. 2016

비 내리는 날, 고향

비가 내린다.
우산 없는 이들은 비를 맞으며 종종걸음을 친다.
퇴근길, 비가 오니 우산을 썼다.
두 개뿐인 손 중에 하나가 우산에 묶였다.
나머지 손에 책과 가방을 동시에 들어야 하니 부담스럽다.
비가 귀찮다는 생각도 잠시

흰 눈을 불러 올 비를 반가워한다.
오랜 만에 내리는 비라고 호들갑떨던 뉴스는

낙엽처럼 거리를 굴러다니다 하늘보고 누웠다.

집으로 가는 길,

주택가 좁고 어두운 골목 길을 지나
은행나무 나란히 줄 선 가로수 길을 걸었다.
아 ~ ! 비가 내리는 것이 아니었구나,
노란 은행잎들이 내리고 있었구나.
은행나무 가로수 길에는...

지금 비가 내리는 것인가?

은행잎이 내리는 것인가?
빗방울이 은행잎이고 은행잎이 빗방울이다.
당장 우산을 접었다.

은행잎이 작은 내 어깨 위에도 싫다않고 내려앉는다.
가을이 내 어깨 위에 앉았다.
촉촉하게 젖은 가을이...
오래 기억하리라.
내 가슴속까지 촉촉하게 젖게 한 가을을...

작은 시장을 지난다.
노란 은행잎이 하얀 불빛에 주춤주춤 뒤로 물러선다.
어물전 하얀 불빛에 커다란 대야가 누워있다.
낙지와 소라, 작은 게가 이따금 꿈틀거린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바다! 고향!

그 고향 바다에선 비가 내리는 날에도

먹이를 찾아 모래와 바위 위를 마음껏 기어다녔지.

대야 속은 어쩌다 한 번씩 잔잔해지던 바다처럼 고요하기만 하다.
낙지는, 소라는, 게는

대야 속에서 저마다의 고향바다를 꿈꾼다.
잠시도 가만히 두지 않고 나를 흔들던 파도,
끊임없이 몸속을 파고들며 괴롭히던 모래알갱이,
그래도 고향 바다가 그립다.


죽어 널부러진 큰 조개껍질 같은 대야 속에서

산소를 공급해주는 기포기따라 부글거릴뿐,

더 이상 기어다닐 기력조차 없다.

지나는 사람들이 흰눈으로 흘깃 살펴보는 것,

바다 집엔 없는 네모진 문패가 서 있다.

산 낙지 한 마리 3,000원.
소라와 게는 얼마인지 가격도 없다.

문득 나는 얼마짜리인가? 생각한다.
신께서 내려다보면
지구는 하나의 대야이고,
그 속에서 살겠다고 꼼지락거리는 한 마리 낙지가 나 아닌가?
낙지와 소라와 게는 대야 속에서
비내리고 파도치던 고향을 그리워한다.
노란 은행잎과 잿빛 낙지에게서 내 고향을 본다.

나는 지구라는 대야 속에서 어떤 고향을 그리워하는가?
끝없는 암흑 속에서 한 점 먼지로라도
항성들을 가로등 삼아 고향 우주를 방황하던
그때를 그리워한다.
지금 여기 비록 푸른 바다와 노란 은행잎과

피빛으로 물든 붉은 해당화가 있어도,
기꺼이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고프다.
다만 현실에 묶여 안달복달했을 뿐,
마음은 진즉부터 끝없는 우주를 그리워했다.

손에 든 우산도, 가방도, 책도 없이,
상상의 나래를 펄럭거리며

어느 별이든 날아다니던 고향 우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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