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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석 마샹스Machance Dec 11. 2016

바람에게 묻는다

사부곡(思父曲)

풀잎이 누우면서 알려준다.

바람이 여기 있다고...


먹고 일하고 자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의무처럼 살아내야 한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아버지와의 기억들이 아프다.

아버지께서 마지막 입원하셨던 병원 앞을 지날 때마다 아버지 생각이 더 난다.

주사 맞는 것을 싫어하셨던 아버지의 팔이나 발에 주사 바늘이 들어가는 모습을 마주하는 순간마다 내가 주사를 맞을 때보다 더 아팠다. 내 팔과 다리를 대신 내어 주고 싶었다.

한 달이 넘게 금식을 당하시다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떠 오르면 울컥 목구멍 끝까지 슬픔이 치솟아 목이 멘다.

오늘의 우리가 있도록 밥 한 끼도 굶기지 않으셨던 아버지셨는데, 나는 아버지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불효자식일 뿐이었다는  자괴감에 괴다.

우리 자식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 해주시던 아버지셨는데, '물 한 방울만 주라'시던 아버지의 말씀이 아프게 나를 파고든다. 가만히 서 있기도 힘들어 주저앉는다. 나는 무너져 내린다.

수액이 흡수되지 못하여 아버지의 팔과 다리가 붓기 전에는 자식들이 주물러 드리면 좋아하셨다. 그러나 그도 잠시뿐 자식들을 성가시게 하지 않으려 애쓰셨던 아버지께서는 얼마 되지 않아 그만 두라 하셨다.

아버지의 거칠고 마디가 굵어진 손에 내 손을 대어 보았던 때를 생각한다. 종이배를 접어주시고 종이학을 접어주시던 손이다. 우리를 키우시고 먹여 살리신 손이 잡아보고 싶어 그립다. 감사함과 죄송한 마음이 울컥 솟아오른다.

 

아버지께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시며 머무르셨던 병원 8동 8층의 8822, 8824, 8863, 8867호 병실을 돌아본다. 더러는 병실 문이 열려있기도 하고, 더러는 닫혀있기도 하다.

아버지께서 마지막 숨을 거두신 8824호, 격리 병실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병실 문 앞에 서서 멀거니 안을 본다. 아무도 없는 병실은 휑하니 바람조차 없다.

아버지께서 누우셨던 그 침대는 지금 비었다. 거칠지만 규칙적으로 들려오던 아버지의 숨소리도 없다.

아버지의 숨소리는 귓전 대신 머리 속에서 들려온다. 아무도 없는 침대에서 누우신 아버지 모습을 뵌다.

격리병실이라 다른 병실에 계실 때와는 다르게 아버지 곁에 오래 머물며 지켜드릴 수 없었다.

병원에서 나가라고 쫒아 내도 아버지의 곁에 더 머물러야 했다. 자신이 낳고 키우신 자식이 곁에 있으면 힘이 되고 의지가 되셨을 텐데, 속없는 아들은 자주 자리를 비웠다. 후회의 눈물이 솟는다.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타고 아버지의 마지막 아침이 흘러내린다.

제한된 만남 일주일여, 간호사실이라며 새벽에 전화가 왔다. '와봐야 할 것 같다.'고...

두려움과 긴장하는 마음을 애써 다독이고 병원에 도착하니, 아버지께서는 어제 오후보다 더 가빠진 숨을 몰아 쉬시고 계셨다. 100이 정상인 산소 수치는 70을 오르내렸다. 서둘러 다른 가족에게 연락을 했다.

간호사가 말을 했다,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라고...

아직 아버지께 드리지 못한 말이 많은데, 아버지께서는 산소 수치가 자꾸만 떨어지며 서서히 떠날 길을 채비하셨다. 하나 둘 모여든 자식들이 마음속에 담아 둔 이별의 말을 하였다. 나는 뭐라 말씀을 드렸는지 기억이 아득하다. 은혜에 감사하고, 평안하시라고 했던 것 같다. 아버지를 모시던 큰며느리의 작별 인사를 들으신 아버지께서는 고개를 끄덕이시고 숨을 멈추시더니 이내 편안해지셨다. 방안 가득하던 바람이 갑자기 사라졌다. 창문 밖으로는 해가 뜨고 있었으나 그날 아침 7시 7분, 우리 가족을 따사롭게 비추던 해는 영원히 지고 있었다. 아버지의 마지막 숨결따라 우리 곁을 떠나버린 바람처럼...

아버지께서는 침대를 둘러싸고 눈물을 삼키며 슬픈 이별의 말을 하는 자식들에게 어떤 말씀을 하고 싶으셨을까?

울고 있는 자식들을 덩그러니 남겨두고 가셔야 하셨던 아버지의 마음은 또 얼마나 외롭고 슬프셨을까?

코가 찡해지고, 다시 또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다.


바람아! 넌 알고 있지? 우리 아버지께서 지금은 어디에 누워계시는지...

아버지께서 누우셨던 병상 침대는 비었구나. 아버지 계신 곳을 알려주면, 숨이 턱에 차도록 뛰어가 아버지 손을 잡아 볼 수 있을 텐데...,

내 마음은 갈 곳을 모르고 잡아야 할 아버지의 손을 찾아 허우적거리며 오늘도 아버지 없는 병원 복도만 맴돈다.

단 한 숨도 잘 수 없었던 응급실, 몇 날 며칠 밤을 지새워도 좋으니 그 때로라도 돌아갈 수만 있으면...

응급실엔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 사이로 바람이 일었었는데, 8층 병원 복도엔 소독약 냄새만 흐를 뿐 바람은 찾아볼 수 없구나. 바람, 너는 어디에 있을까?


거리로 나서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니 하얀 구름이 바람에 누웠다.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계신 하늘에서 바람이 불어 내린다.

바람을 타고 내려온 햇볕이 내 등을 따듯하게 어루만진다.

아버지께서 내 등을 어루만져 주실 때처럼 따숩다.

아버지께서 지금 이 거리고 계신다면  좋겠다.

엄마 아빠 품으로 뛰어들면 언제나 반갑고 따뜻하게 안아서 하늘높이 들어 올려주시던 어린아이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다.

바람 잔잔하게 불고 햇 따듯하던 날, 커다란 아버지 등을 바라보며 따라 걸을 수 있었던 시절로 가고 싶다.

풀잎을 눕히고 꽃잎을 흩날리던 바람과 햇볕이 하늘에 가득하던 5월의 그 봄 날로...

아버지의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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