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록 私思錄 4 야수자본주의
늘 그래왔듯 경제지들은 앞다퉈 미국의 증시, 금리 기사를 뿌린다.
트럼프는 미국은 지금 최고 호황이라며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다.
내가 미국에 있어서 그런지 아무래도 미국 경제에 눈이 많이 간다. 또 한국에서 그나마 몇 푼이라도 들어오기 때문에 환율도 계속 주시한다. 참 만만치 않다.
다른 이유도 많겠지만 특히 팬데믹 이후 급격히 미국만의 세계관이 붕괴한 느낌이 크다.
그림쟁이와 초등교사 부부인 우리는 최저임금수준으로 가사를 굴리고 있다. 미국도 선생님에 대한 혜택이 많다. 연금도 나쁘지 않고 보험도 좋은 편이다.(단, 전 가족이 아니다. 기본 보험은 전부 포함이지만, 과마다 보험이 달라서 거기에 따른 보험은 자녀 포함이며, 배우자는 어차피 따로 해야 한다.)
하지만 당장 현실에서 바로바로 써야 할 월급이 참 딱한 수준이다.
우리 집 아랫길로 두 집이 벌써 공실이 되었고, 다른 집도 대형쓰레기가 계속 나오는 걸 봐선 이 사 준비를 하는 모양새다.
우리 집도 원래 이 사 준비를 했다.
집주인은 월세를 올린다고 했다. 하지만 집주인은 지금 경기가 너무 나쁜걸 알고 있다. 우리가 나가길 바라지 않았고 결국 언제든지 떠나도 되는 조건과 1년 이상 거주 조건으로 기존 월세 그대로 머물기로 했다. (뭐 복잡해서 잘 모르지만 와이프가 설명해 줌) 참고로 미국의 월세는 한국과는 비교불가다.
최근 들어 나의 인식이 깨지는 게 아니라 미국이 깨지는 걸 목도하고 있다.
지금 내가 보는 미국이 미국이 맞나 싶을 정도다.
https://blog.naver.com/dongneep/222936310507
예전에 블로그에 야수자본주의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다.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가장 적확한 예시가 미국이다.
그나마 한국은 공과금, 공공기관의 사유화 이런 걸 필사적으로 막고 있고, 공공서비스가 빠르고 좋다. 평균적으로 사회서비스는 세계 어디와 비교해도 좋은 편이다.
반면에 미국은 전부 돈이다.
놀라운 건 돈으로 하는 차별을 차별로 느끼지 않는 것이다. 100% 돈의 논리이며 돈이 지배한다. 의사도 돈의 논리로 움직이며, 공공기관도 돈의 논리로 움직인다.
내가 받은 만큼. 네가 낸 만큼. 나의 시간을 사용한 만큼. 에누리는 없다. 에누리는 교회에 존재하고 사람 사람의 마음에 있지 그것이 사회로 넘어오면 딱 돈의 논리로 바꿔버린다.
지금 미국 여기저기에서 몰락한 중산층과 빈곤층이 거리로 나선다고 한다. 뭐 전부까지는 아니겠지만 몇몇 주, 아님 몇몇 도시에서 물가로 인해 시위를 벌인다고 한다. 여러기사를 봐도 미국은 적신호임에 틀림없다.
그렇다고 미국이 망하겠나. 그렇지 않다.
아직 달러가 세계의 지표다. 미국 연준은행이 전 세계의 지표다.
하지만 영원한 건 없다. 아무도 모르게 서서히 침몰하고 있는 걸 지도 모른다.- 난 그렇다고 생각한다.
야수자본주의는 소외층을 만든다. 그리고 그들을 돌보지 않는다. 오히려 집어 삼킨다.
약자는 약자로 자연 소멸 되도록 힘의 논리 아래에 둔다. 파시즘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야수자본주의가 만든 균열은 이제 미국사회 전체의 바닥을 스치고 있다. 팬데믹 이후의 세계는 더 이상 ‘함께 살자’는 약속을 유지할 체력도, 마음의 여유도 잃어가고 있다. 약자들은 점점 더 작은 울타리 안으로 갇힌다.
누군가는 부를 더 쌓고, 누군가는 점점 더 벼랑 끝으로 밀려난다. 그 사이에서 서로가 서로를 향해 날을 세우기 시작한다. 약자가 약자를 공격하고, 소외된 이들이 또 다른 소외된 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장면이 낯설지 않아진다.
우리를 진짜로 위협하는 건 거대한 이념도, 국경도, 뉴스 속 격렬한 말싸움도 아니다. 서로를 돌아볼 힘이 사라진 사회 자체다.
이 흐름은 어느 나라만의 일이 아니다. 미국도 그렇고, 한국도 그렇고, 일본도, 유럽도 똑같다. 팬데믹 이후의 세계는 모두 같은 방향으로 미끄러지고 있다. 다만 속도가 다를 뿐이다.
야수자본주의는 숫자로만 기록되지 않는다. 사람들의 표정, 월세의 변화, 학교 앞 횡단보도를 건너는 아이들의 얼굴에서 더 먼저 나타난다. 이 흐름은 더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것만은 분명하다.
지금의 세계는, 함께 사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할 시점에 와 있다.
그리고 그 질문은 결국 우리 모두에게 돌아온다. AI 시대와 맞물려 돌아온다.
이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그 답을 찾는 과정이 앞으로의 인류가 어떻게 될지 판가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