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록 私思錄 7 복지를 못 하는 나라가 아닌 다르게 하는 나라
미국은 세계 최강의 경제대국이면서도 왜 보편적 복지국가의 길로 가지 못했을까.
미국에는 복지를 만들 기회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기회가 있었음에도 스스로 포기한게 아닐까?
미국은 대공황, 뉴딜, 제2차 세계대전, 냉전. 큰 역사적 사건 때 복지국가로 어느정도 전환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때마다 복지는 모두를 위한 것이 아니라 특정 집단을 위한 보상 정도로 설계되지 않았나 싶다. 이러한 선택이 장기적으로 미국 사회에 깊고 깊은 상처를 낸게 아닌가..
여기서도 빠지지 않는게 인종 문제.
미국의 복지는 언제나 인종과 분리될 수 없었다. 뉴딜 정책은 분명 진보적이었지만, 남부 백인 엘리트의 이해관계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흑인 노동자와 농민을 제도 밖으로 밀어냈다.
사회보장제도에서 농업노동자, 가사노동자가 제외된 것은 정치적 타협이었다. 미국에서 복지는 시작부터 모두의 것이 아니었던 것.
지금보면 참.. 어이없다고나 할까. 아니 지금이 더 심각하다고 해야하나.
복지는 공산주의와 구별되는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의 증거로 활용되었는데, 또 동시에 지나친 복지는 ‘사회주의적 위험’으로 낙인찍혔다. 미국 정부는 복지를 확대하면서도, 그것이 시민의 권리가 아니라 국가에 대한 충성과 가족 규범을 강화하는 수단이 되도록 관리했다. 복지는 조건부였고, 감시 대상이었으며, 도덕적 판단의 대상이었다.
·사회보장법(Social Security Act, 1935)은 노령연금과 실업보험을 도입했지만, 이를 “국가가 시민에게 보장해야 할 권리”라고 명시하지 않았다. 대신 “기여(contribution)에 따른 혜택” 구조를 만들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GI 법안은 교육, 주택, 대출을 대규모로 지원했다. 겉보기엔 복지 확장이지만, 핵심 조건은 명확했다. 첫째는 군 복무라는 국가에 대한 충성이었고, 두번째 규율된 남성 시민이라는 정체성이 그것이다. 이 혜택은 ‘시민 전체’가 아니라 ‘국가에 헌신한 남성’에게 주어졌다. 그마저 흑인에겐 주어지지 않았다.
·미국의 대표적 공공부조인 AFDC(빈곤가정 아동부조)는 미혼모, 특히 흑인 여성에게 강한 도덕적 감시를 가했다. 남성이 집에 있으면 수급 박탈했다. 그리고 성생활, 결혼 여부 조사를 했고, ‘적절한 어머니상’ 강요했다.
이는 복지가 빈곤 해소가 아니라 정상가족 모델 즉 남성 가장에 전업주부 또는 보조적 여성을 유지하기 위한 규율 장치였다는 명백한 증거다.
미국은 복지를 못 하는 나라가 아니라 다르게 하는 나라다.
미국에는 복지가 없다고 흔히 말하지만, 실제로는 군인, 중산층 백인 가족, 주택 소유자에게 집중된 강력한 복지 시스템이 존재했다. 그리고 지금도 존재한다.
문제는 그 복지가 보편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지금은 많이 완화되었지만 아직은 매우 선별적이다.)
군인, 경찰, 소방관에대한 처우는 강력하다. 그것은 정말 배워야하고 너무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외의 복지를 보자면 존재하지만 정말 형편없다.
인구가 많아서? 마약중독자들 케어하는 비용때문에? 전쟁을 많이해서 군인복지때문에??
내 생각이지만, 사회주의의 공포(레드포비아)와 야수자본주의, 또 정치적 혹은 인종적 선별 복지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보이지 않는 복지와 낙인찍힌 복지가 동시에 작동하면서, 복지는 혜택이라기보다 갈라치기의 수단이라고 느껴진다.
한국은 어떨까?
한국 역시 복지를 둘러싸고 ‘자격’, ‘도덕성’, ‘부정수급’이라는 말이 쉽게 등장한다.
누가 받을 자격이 있는지, 누가 게으른지 따지는 논리는 미국과 닮지 않은듯 하지만 닮았다.
복지가 권리가 아니라 국가에서 내리는 은혜처럼 느껴지는 순간, 그 사회는 복지는 서로를 감시하게 된다.
부유국의 대명사 미국이, 슈퍼파워 미국이 복지에 실패한 이유는 가난해서도, 보수적이어서도 아니다. 복지를 통해 공동체를 만들려고 하지 않아서가 아닐까?
내가 미국에 있어서 미국이야기를 했지만, 동시에 현재를 사는 우리모두의 문제이기도 하다.
복지를 비용으로 볼 것인가, 사회를 유지하는 기반으로 볼 것인가.
전세계가 우경화로 쏠리고 있는 지금.
우리는 답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