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계고 시상식이 주는 의미. 시상식은 핑계고처럼

사사록 私思錄 8 변하지 않는 공중파 시스템

by 동닙


image.png 뜬뜬 핑계고



요즘의 유재석을 보면 비난일색이다.


유재석은 이제 지겹다.
언제적 유재석이냐.
변한 게 없다.



그런데 이 비난 자체는 유재석을 향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방송의 현실을 향해야 하는것 아닐까?


유재석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인물이 아니다.

오랜 무명 시절을 견디며 버텼고, 예능의 중심이 바뀔 때마다 한 발씩 따라가며 자리를 만들어왔다.

그렇게 올라선 사람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오래 빛나는 이유는 단순하다.

유재석이라는 사람자체로 증명해왔기 때문이다.


핑계고 시상식은 작았다. 무대도 소박했고, 연출도 느슨했다. 하지만 참석자는 대스타들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시상식에 불려 나온’ 스타가 아니라 ‘놀러 온’ 사람들이었다.

여느 방송사 시상식처럼 긴장과 계산으로 가득 찬 얼굴이 아니었다.

웃고, 떠들고, 서로를 놀렸다. 잔치에 가까웠다.


이 점에서 기존 방송사 시상식과의 차이가 극명해진다. 방송사 시상식은 늘 거창하다.

세트는 화려하고, 수상자는 미리 정해진 듯 움직이며, 소감은 길고 조심스럽다. 웃음이 나와도 편집될까 계산하고, 박수에도 정치가 섞인다. 시청자는 그 계산을 다 느낀다. 그래서 재미가 없다.


핑계고 시상식에는 그 계산이 거의 없었다. 아무래도 유튜브라는 매체가 자유도가 훨씬 높긴하지만.

상의 무게보다 사람의 관계가 앞섰다. 상을 주는 쪽도, 받는 쪽도 부담이 없었다. 그래서 보는 사람도 편했다. 요즘 사람들이 유튜브로 예능을 소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완성도가 아니라 진짜 감정 때문이다.

(유재석의 브랜드파워와 자본력의 영향이 크다는것도 있다.)


유재석이 변하지 않았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그는 포맷을 바꾸기보다 태도를 지켜왔다. 상대를 깎아내리지 않고, 자기 위치를 과시하지 않으며, 웃음을 독점하려 하지 않는다. 요즘엔 종종 지인들을 놀리기도하고 격한말도 조금 하지만 그 기본은 배려와 우정이 있다는게 보인다.


방송사 시상식이 위기를 말하기 전에 돌아봐야 할 것은 시청자의 눈높이다.

물론 세대별로 보는 것도 다르지만 공통된 점을 찾아내는 것이 방송국 PD들의 일 아닌가.


언제부터인가 지상파 3사는 상의 공정성이 사라졌다.

점점 식구 나눠먹기 식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더 이상 ‘권위 있는 잔치’를 원하지 않는다. 진짜 즐기는 자리, 진짜 웃음이 오가는 현장을 보고 싶어 한다. 핑계고 시상식은 그걸 정확히 보여줬다.


작았지만 진짜였고, 느슨했지만 살아있는 느낌이었다.


유재석이 지겹다는 게 문제가 아니다.

지겨운 건 변하지 않는 기존의 방송국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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