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에서 덕德이 사라지고 있다.

사사록 私思錄 6 덕이 사라진 세상

by 동닙

요즘 뉴스에나오는 사건을 보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사람을 미워하는 일은 점점 쉬워지고, 이해하려는 마음은 점점 사라져가는 것이 피부로 느껴진다.

뉴스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폭력과 혐오의 소식이 이어진다. 누가 잘못했는지 따지기 전에 “세상이 원래 그런 건가” 라는 체념이 먼저 돌아온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어쩌면 세상이 변한 게 아니라, 우리 안의 ‘덕’이 사라지고 있는 건 아닐까.


덕은 어려운 철학 용어가 아니다.

사람 사이의 예의, 존중, 그리고 마음의 온도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이자 자신을 다스리는 힘이다.

그런데 요즘은 사람들이 참는 법을 잊은 듯하다. 말 한마디에 상처를 주고, 작은 불편에도 화를 내며, 남을 이해하기보다 자신이 절대 우선이다. 덕이 사라진 세상이라면 아마 지금의 이런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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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혼란한 시대에도 예를 지키라 말했다.

“예가 무너지면 나라가 서지 못한다.” 예는 단순한 절차가 아니라 사람 사이의 질서를 세우는 마음의 틀이었다.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행동하지 말라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순간에 스스로를 다스리는 것, 그것이 바로 덕이었다.

공자는 덕이 밖에서 오는 법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에서 피어나는 것이라 믿었다. 지금 우리는 예의있는 행동을 배워도 마음의 예는 놓치고 산다. 타인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것, 그게 어쩌면 공자가 말한 덕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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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는 "의로움이 없는 이익은 강도의 이익”이라 단언했다.

부귀로도 뜻을 어지럽힐 수 없고, 빈천으로도 마음을 바꿀 수 없으며,
위세로도 굽힐 수 없는 자, 그가 참된 사람이다.


맹자는 인간의 본성은 본래 선하지만, 탐욕이 그 마음을 어둡게 만든다고 봤다. 지금의 사회도 다르지 않다. 옳고 그름보다 빠른 길이 더 중요해지고, 성공의 기준이 윤리가 아닌 이익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맹자는 말했다. “군주가 덕으로 백성을 감화시키면, 백성이 그를 따른다.” 지금 우리의 사회도 그 말을 되새겨야 하지 않을까. 결국 덕은 누군가의 책임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짊어져야 할 마음의 방향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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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는 한 걸음 더 멀리 나아갔다.

그는 “하늘과 땅에는 큰 아름다움이 있으나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 세상의 법칙은 스스로 제자리를 가지고 있고, 굳이 꾸미지 않아도 조화롭다. 장자에게 덕이란 도의 흐름을 따라 살아가는 자연스러움이었다.

사람은 땅을 따르고, 땅은 하늘을 따르며,
하늘은 도를 따르고, 도는 자연을 따른다.


덕은 애써 세우는 게 아니라, 억지로 꾸미지 않는 그 자리에서 드러난다.

요즘처럼 경쟁과 비교 속에서 사는 시대에 장자의 ‘무위자연’은 오히려 새로운 해답처럼 들린다. 꾸미지 않아도 괜찮고, 앞서지 않아도 좋은 삶. 덕은 그 고요한 태도 속에서 피어난다.


공자, 맹자, 장자가 서로 다른 길을 걸었지만 결국 말하고자 한 것은 같다고 생각한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제도나 권력에서 오지 않는다. 인간의 마음 안에서, 조용히 덕이 자라날 때 비로소 세상이 조금 나아진다.

덕은 거창한 도덕 교훈이 아니라, 일상의 작은 선택에서 시작된다. 화가 날 때 한 번 더 생각하는 마음, 말보다 배려가 앞서는 순간, 그것이 덕의 씨앗이다.


덕이 사라진 사회는 방향을 잃은 배 같다.

돈을 많이 벌어서 아파트를 사겠다, 주식에 투자하겠다를 물리적인 목표로 삼는 다면 오늘 하루 내 앞의 사람을 따뜻하게 대하는 일. 내가 못하는 일을 하는 분들께 감사의 뜻을 전하는 일.

그것이 오늘 하루의 목표가 되는것을 어떨까. 그게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인간다운 일’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만일 한 사람의 마음에서 덕이 피어난다면 그 빛은 주변을 환히 물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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