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면: 10 센티모(0.10 페세타), 발행 연도는 1940–1953년.
•재질·규격: 알루미늄, 무게 약 1.84–1.9g, 지름 약 22.5–23mm, 톱니무늬 테두리.
•앞면 도안: 창을 든 기마 병사(소위 ‘이베리아 기수’)와 아래에 “ESPAÑA” 및 연도 “1945”가 새겨져 있어 군사적·민족주의 이미지를 나타낸다.
•뒷면 도안: 독수리가 받쳐 든 방패형 국장, 양쪽의 기둥과 띠에 국시인 “PLUS ULTRA(더 멀리)”, 동전 양옆에 액면 “DIEZ CENTS” 및 슬로건 “UNA GRANDE LIBRE(하나, 위대하고, 자유로운)”가 들어 있어 프랑코 독재 체제의 이념을 상징합니다.
금속 제한과 주화 재질 변화
스페인은 1936~1939년 내전과 이어진 제2차 세계대전 시기 연합국의 경제 봉쇄와 외환난을 겪으면서, 동·니켈·은 같은 전통적인 주화용 금속을 충분히 수입할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프랑코 정권은 자급자족을 표방하는 오타르키 정책을 채택하고 수입을 엄격히 통제했으며, 그 결과 값싸고 가벼운 알루미늄과 아연 합금 등이 기존 귀금속을 대체해 동전 재질로 널리 사용되었다.
10센티모와 같은 소액권은 특히 전쟁 전후에 알루미늄으로 대량 주조되었는데, 이는 귀금속을 절약해야 했던 전시 경제와 물자 부족을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 이 시기의 동전 자체가 전시·전후 경제 상황을 상징하는 물건이 되었다.
프랑코 정권의 화폐·통화정책
프랑코 정권의 화폐·통화정책은 전쟁 직후 스페인 경제의 장기 침체와 인플레이션, 그리고 국제적 고립을 심화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39년 내전이 끝났을 때 스페인의 외환 보유고는 거의 고갈된 상태였고, 정권은 ‘경제적 자립’을 내세우며 수입·수출과 외환을 국가가 직접 통제하는 폐쇄경제 체제를 구축했다. 이 체제에서 정부와 중앙은행은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통화를 계속 발행하는 팽창적 정책을 사용했고, 그 결과 전후 스페인에서는 만성적인 인플레이션과 물가 불안정이 나타났다.
환율과 외환 관리도 경제를 왜곡했다. 1940년대 초 정부는 페세타 환율을 실제 경제력보다 높게 고정하고, 민간이 외화를 보유하는 것을 금지했으며, 수출업자가 벌어들인 외화를 국가 기관에 강제로 매각하도록 했다. 이 때문에 스페인 상품의 대외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수출이 위축되고, 반대로 값싼 고정 환율을 이용한 수입 수요는 늘어나 무역수지가 나빠졌다. 공식 환율과 암시장 환율 사이의 간극은 점점 커졌고, 외환 배분과 수입 인허가 과정에서 부패와 특혜가 만연해 경제 효율성이 크게 떨어졌다.
인플레이션은 국민의 생활수준을 직접적으로 악화시켰다. 내전과 전쟁기 동안 군비와 재건 비용을 통화 발행으로 충당하면서 1940년대 초 소비자물가는 1930년대 중반에 비해 몇 배 수준으로 뛰어오르는 가속 인플레이션을 보였다. 정부는 공식 가격 통제와 배급제를 통해 겉으로 드러나는 물가를 억누르려 했지만, 실제 시장과 암시장에서는 훨씬 높은 가격이 형성되었고, 노동자와 농민의 실질임금은 급격히 하락했다. 특히 농산물과 생필품 부족이 심해지면서 1940년대 스페인 사회에는 기근과 영양실조가 광범위하게 퍼졌고, 이는 내전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또 다른 고통을 안겨주었다.
금융·신용 정책 또한 왜곡을 심화시켰다. 정부는 국영기업과 전략 산업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은행 신용을 동원했고, 낮은 금리와 정치적 고려에 따른 대출 배분이 일반화되었다. 이 때문에 자본은 생산성이 높은 경쟁 부문보다 정권과 가까운 기업, 자급자족 정책에 맞춘 산업으로 흐르는 경우가 많았고, 투자 효율성은 떨어졌다. 공공지출 확대와 통화 공급 증가는 지속되었지만, 통계에 포착되지 않는 인플레이션이 높게 유지되면서 가계와 기업의 저축 실질가치는 꾸준히 잠식되었고, 장기 투자와 금융 시장의 성숙도는 뒤로 미뤄졌다.
1945년 경제·정치 상황
이러한 정책 환경 속에서 1945년의 국제 정세는 스페인 경제에 또 다른 압력을 가했다. 1945년 5월 독일의 무조건 항복과 9월 일본의 항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공식 종결되었지만, 스페인은 전쟁 내내 형식상 중립을 표방하면서도 독일과 이탈리아 같은 파시즘 국가와 이념적으로 가까운 태도를 보여 왔다. 그 결과 연합국은 전쟁 중과 전후에 스페인에 대한 경제 봉쇄와 수출입 제한을 유지했고, 스페인 경제는 중요한 무역·자본·기술의 흐름에서 배제되었다. 전쟁 말기와 종전 이후 프랑코 정권은 추축국의 패배를 확인하고 노선을 일부 조정하며 연합국과의 관계 개선을 도모했지만, 1940년대 후반까지 스페인은 파시즘 잔존 독재로 간주되어 국제사회에서 고립 상태에 머물렀다.
1945년 스페인의 정치·경제 상황은 이런 구조가 응축된 결과였다. 내전 직후 성립한 프랑코 정권은 단일 정당 체제와 강력한 검열, 치안 경찰을 이용해 정치적 반대파를 억압했고, 국가 가톨릭주의와 강한 스페인 민족주의를 이념의 축으로 삼았다. 경제 영역에서는 국가가 가격과 임금, 생산을 통제하는 오타르키 정책을 계속 밀어붙였고, 그 여파로 농업과 공업의 생산성은 정체되거나 감소했다. 식량과 연료, 공업 원료의 부족은 일상화되었고, 암시장이 공공연히 작동하는 이중 경제 구조가 나타났다. 전후 유럽에서 미국의 마셜 플랜을 통해 재건과 성장을 시작한 이탈리아·프랑스와 달리, 스페인은 이 지원에서 전면 배제되어 1940년대 후반에도 1인당 소득 수준이 1900년대 초반과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장기 침체에 빠져 있었다.
이 동전은 귀금속을 대체한 값싼 경금속 재질과 소액권이라는 특징을 통해 전시·전후 스페인의 빈곤과 금속 부족을 드러낸다. 동시에 프랑코 정권이 일상적인 화폐 디자인을 통해 군국주의와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국민에게 반복적으로 각인시키려 했음을 보여준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이 동전이 1950년대 초까지 계속 유통되었다는 사실은, 스페인이 국제 고립과 오타르키 정책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고, 그 경제적·정치적 후유증이 오랫동안 지속되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