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록 私思錄 13 사회의 회복력에 대한 이야기
"사과하는 게 이상한 사회, 사과받기 더 힘든 사회"
언제부터인지 사과하는 사람을 보기 힘들어 졌다.
사과를 하면 패배자가 되는 것 같고, ‘내 잘못’이라고 인정하는 순간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게 될 것 같은 기분이라 그런것 같다.
사람들은 사과 대신 설명을 늘어놓는다. 설명은 곧 변명이 되고, 변명은 자기방어가 된다.
그 결과 사과는 점점 사라지고, 사과를 받아야 할 사람만 남는다.
사과가 어려워진 것이 개인 성격때문일까?
어쩌면 지금 사회가 실수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그걸 피하려고 혼신의 힘을 다하는게 아닐까?
한 번의 잘못은 기록으로 남고, 검색되고, 캡처된다.
사과는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언어여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공격의 출발점, 약점이 되기 쉽다. 언제부터인가 사과하는 순간 “인정했으니 더 책임져라”는 요구가 따라붙었다.
이 구조 속에서 사람들은 배운다. 사과하지 않는 게 더 안전하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하자 라고.
SNS는 이 현상을 극단적으로 증폭시킨다. SNS에서는 맥락이 잘려 나간다.
짧은 문장, 자극적인 캡처, 분노를 부르는 요약만 남는다. 이런 공간에서 사과는 거의 불가능하다.
진심이든 아니든, 사과문은 곧바로 분석의 대상이 된다. “왜 저 말은 안 했나”, “표현이 불충분하다”, “진정성이 없다”는 비난이 쏟아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과 대신 ‘해명’을 선택한다. 해명은 책임을 피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방어도구로 쓰인다. (그렇다고 공격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책임보다 결과를 먼저 묻는 사회 속에 살고 있다. 이건 특히 한국과 일본이 아주 심하다.
또 최근에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의도와 과정은 사라지고, 잘못의 크기만 확대된다.
이렇다보니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그럴 의도는 아니었다”, “오해다”, “내 잘못만은 아니다”를 입에 달고 산다. 어쩌면 진짜로 오해이고, 나만의 잘못이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런 말들이 사과를 대체해버렸다는 데 있다.
사과는 잘못의 전부를 뒤집어쓰는 것이 아니다. 관계를 회복하려는 태도다.
하지만 지금의 사회는 그 여지마져 가만두지 않는다.
이제는 사과를 요구하는 사람이 예민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사과가 사라지니 용서도 설 자리를 잃는다.
모두가 자기 입장만 설명하다 끝난다.
갈등은 봉합되지 않고, 감정은 쌓인다.
사과는 책임을 감당하겠다는 표현이다. 그리고 인정하는 것이다.
먼저 상대의 입장을 생각하고 그다음 내가 한 행동을 바라보는 것이다.
사과를 하고 안하고가 작아 보일지 모르겠으나 결국 이 작은 사과라 사회의 균열을 만든다.
사과가 이상하지 않은 사회, 사과를 하고 받는 일이 덜 고된 사회.
그건 예의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회복력에 대한 문제다.
습관을 들였으면 한다. 늘 입안에서 맴돌게 작은 것에도 말해보자.
감사합니다.(고맙습니다.)
죄송합니다.(미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