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13 1945년 프랑스 2프랑

by 동닙

1945년 프랑스 2프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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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면: 2 프랑, 연도: 1945년.

재질: 알루미늄(알루미늄·마그네슘 합금으로 분류되기도 함), 지름 약 27mm, 무게 약 2.2g.


앞면: 월계관을 쓴 여성의 좌측 두상과 “REPUBLIQUE FRANÇAISE”(프랑스 공화국) 문구, 조각가 피에르 알렉상드르 모르롱(Pierre‑Alexandre Morlon)의 이름이 작게 들어감.

뒷면: 중앙에 굵은 숫자 “2”와 “FRANCS”, 아래에 연도 1945, 둘레에는 “LIBERTÉ ÉGALITÉ FRATERNITÉ”(자유·평등·박애) 국가 모토, 양쪽에 풍요의 뿔(코르누코피아) 장식.


주조지: 1945년에는 파리, 보몽‑르‑로제(B), 카스텔사르라쟁(C) 등 여러 조폐국에서 찍혔고, 조폐국 표시는 작은 문자로 표기됨.


이 동전은 제3공화국·비시 정권기에 도입된 모르롱 타입 2프랑 시리즈의 연속으로, 제2차 세계대전 말기와 해방 직후까지 사용되다가 1950년대 후반 신형 프랑 체계로 교체됨.


C 민트(카스텔사르라쟁) 표기 개체
; 1945년 “C” 민트마크(또는 C가 표기된 조폐국)의 주조량이 다른 조폐국보다 적은 것으로 알려져, 동일한 보존 상태에서는 보통 시가가 더 높게 형성된다.



전시 화폐·금속 제한


프랑스는 1939년 전쟁 발발과 함께 금과 외환 거래를 강하게 통제했다. 1939년 9월 법령으로 금 매매·수출을 중앙은행 승인 하에 제한하여 민간 금 유통을 사실상 금지하였다.

전쟁 동안 금·은·구리·니켈 같은 전략 금속은 군수 산업과 독일에 대한 공출에 우선 배정되었고, 동전의 금속도 값싼 알루미늄·아연 등으로 대체되었다. 2프랑 동전도 이런 맥락에서 알루미늄 재질로 주조되었다.


1940년대 초에는 금속 부족으로 기존 동전 회수·용해, 비귀금속 동전 확대, 지폐·소액 지폐 발행이 병행되었고, 이는 전후에도 한동안 지속되며 화폐 체계의 혼란을 발생시켰다.



1945년 이전: 점령기와 전시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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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독일 침공 이후 프랑스 본토는 점령지(북부)와 비시 정부 지구(남부)로 나뉘었다. 양쪽 모두 독일에 거액의 점령비를 지불해야 했기 때문에 국가 재정이 심각하게 악화되었다.

독일군은 프랑스 은행 시스템을 장악해 금·외환을 신고하게 하였다. 국가와 은행을 통해 필요한 자원을 조달했으며, 이는 사실상 프랑스로 하여금 자신의 점령 비용을 스스로 부담하게 한 것이었다.


1940년부터는 연료·식량·의류 등 기본재에 대한 전면적 배급제가 실시되었다. 원자재·소비재 모두 국가 통제 하에 배분되면서 암시장과 금·외환의 비공식 거래(지하 금 시장)가 번성하였다.

이 시기 프랑스 경제는 생산력 저하, 실업·저임금, 물가 상승과 공급 부족이 겹친 전형적인 전시 인플레이션 경제였고, 화폐 가치도 점차 떨어져 구매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1945년 전후: 해방 직후의 경제와 화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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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파리 해방과 함께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1945년의 프랑스는 산업 시설 파괴, 교통망 붕괴, 전쟁 피해로 경제적으로 소진된 상태였다. 배급제는 해방 후에도 장기간 유지되었고, 1945년에도 식료품·연료 등 일상재 상당수가 여전히 배급표를 통해 공급될 정도로 물자 부족이 심각했다.


국가 재정은 전쟁 채무와 재건 비용, 사회 복지 제도 확충으로 막대한 적자 상태였다.

인플레이션을 통제하기 위해 가격·임금 통제, 통화 개혁 논의, 국유화(은행·에너지·운송 등) 정책이 병행되었다.

이후 1940년대 후반–1950년대 초 마셜 플랜과 국내 투자 확대를 통해 서서히 회복 국면에 들어가며, 1950년대 중반 이후 “프랑스 경제의 부흥”으로 불리는 고도성장기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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