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깊이가 결여된 세상

사사록 思私錄 19 우리는 왜 아날로그를 그리워하나

by 동닙
376.jpg 약13년전 일본 원룸이자 작업공간


화가는 더 이상 수십 장의 연습작을 남기지 않는다.

글작가는 원고지를 구겨가며 쓰지 않는다.

모든 것이 빠르고 효율적이고, 결과는 더 빨리, 더 그럴듯하게 나온다.

그 속에서 과정은 점점 흐려졌다.


스포츠도 비슷하다. 팀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선수는 드물어졌고, 리그와 연봉이 목표가 되었다.

연기자와 연구자도 말한다. 한 대사, 대사 한줄을 붙잡고 버티는 시간, 논문 문장 하나를 위해 며칠을 고민하던 시간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AI가 지식을 가져다주고, 형식을 맞춰주고, 그럴듯한 수준까지 끌어올려준다. 편해진 만큼, 손에 남는 고생의 촉감은 흐려진다.


그렇다고 디지털과 AI를 부정할 수는 없다. 이미 삶의 기반이 되었고, 앞으로도 더 깊이 스며들 것이다. 문제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기술이 우리의 태도를 어떻게 바꾸는가에 있다.

생각의 시간을 줄이고,기다림을 견디지 못하게 만들고, 비효율을 실패로 인식하게 한다.

그때 사람은 자기다움에서 멀어진다.


아날로그는 과거로의 후퇴가 아니다. 시간을 조금 더 들이고, 감각을 조금 느끼겠다는 것이다.

손으로 만지고, 보고, 듣고, 냄새를 맡고, 무게를 느끼는 과정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경험이다.


실제로 사람들이 다시 LP나 필름, 손글씨에 끌리는 이유도 복고 그 자체보다 감각과 감정의 복원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바리스타가 서두르지 않고 원두를 분쇄기에 넣지 않고, 직접 핸드 밀로 천천히 갈아낸다.

드르륵 소리를 내며 갈리는 원두, 손에 전해지는 떨림, 갈린 원두에서 피어오르는 향이 공간을 채운다.

모카포트에 정성스럽게 원두를 담고, 불을 올린 뒤 추출되는 소리를 듣는다.

이 긴듯한 짧은 몇 분이, 사실은 하루의 리듬을 바꾸는 시간이다.


이 과정은 효율만 놓고 보면 너무 느리고 번거롭다.

캡슐 하나 넣고 버튼을 누르면 끝나는 시대에, 일부러 원두를 사고, 직접 갈고, 물 온도를 맞추고, 추출 시간을 지켜본다. 하지만 그 불편함 속에서 ‘살아 있음’을 느낀다. 이는 디지털이 줄 수 없는 감각의 조합이며, 바로 그 감각이 감정을 깨우고, 하루를 편안함으로 기억하게 도와준다.


손으로 쓰는 노트도 그렇다. 키보드도 좋지만, 펜으로 꾹꾹 눌러 쓴 문장은 손의 힘, 마음의 상태, 그날의 리듬을 그대로 품고 남는다. 글자는 약간 삐뚤고 오타는 쓱쓱 검은 동그라미들로 지운다. 이 모든 불완전함이 오히려 ‘나’라는 증거가 된다. 연구에서도 손글씨와 같은 아날로그 행위가 감정을 더 잘 불러일으키고, 기억과 해석의 여지를 넓힌다고 말한다.


완성품만 보면 공장에서 나온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 오히려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만드는 사람에게 그 과정은 자기 자신을 다듬는 시간이 된다.

실패와 수정, 기다림과 반복이 쌓이며 태도가 만들어진다. 그 태도는 작품보다 오래 남는다.


자본은 속도를 좋아한다. 빨리 만들고, 빨리 내보내고, 빨리 회수한다. 그러나 가치는 다른 방향을 향해 있다. 오래 걸린 것, 오래 붙들고 있었던 것, 손때가 배어 있는 것은 쉽게 대체되지 않는다.

이런 것들은 ‘얼마에 샀는가’보다 ‘어떤 시간의 가치가 묻어 있는가’가 더 중요해진다.


아날로그의 가치는 바로 이런 것이다.


효율의 반대편에 서 있지만, 그래서 더 인간적이다. 느리고 번거롭고 반복을 요구하지만, 과정을 남긴다.

손으로 남긴 흔적은 결과보다 오래 기억되고, 시간의 밀도는 작품의 깊이가 된다. 이 밀도와 시간은 쉽게 복제되지 않는다.


결국 무엇을 얼마나 빨리 만들었는지가 아니라, 어떤 태도로 시간을 보냈는지가 사람을 규정한다.

그래서 아날로그는 사라지지 않았다.


인공지능 시대에도 소리 없이, 천천히, 가치가 올라가고 있을 것이다.

시간이 들었다는 사실, 불편함을 감수했다는 사실, 손으로 버텨 냈다는 사실이 곧 인간다움의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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