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록 思私錄 18 그리운 한국 의료시스템
미국의 의료 시스템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고비용 구조다. GDP 대비 의료비 지출은 늘 상위권이지만, 정작 의료 접근성은 낮다. 의료가 '시장'의 논리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주마다, 도시마다 의료제도와 보험체계가 제각각이며, 모든 절차는 보험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
그 틀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의료 서비스에서 자연스레 밀려나게 된다. 이곳에서 살다 보면 나름 잘 작동하는 부분도 분명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불편함이 일상이다. 아마 한국인이라면 더 크게 체감할 것이다. 한국에서 당연하게 누리던 병원 접근성이 사라지고, 의료는 곧 '기다림'과 '돈'의 싸움이 된다.
가장 먼저 마주하는 건 '예약'이다. 빠르면 일주일, 보통은 2주 쯤 기다려야 하며, 전문의 진료는 몇 달씩 걸리기도 한다. 증상이 갑자기 악화되면 선택지는 얼전트케어(Urgent Care, 경증 긴급 치료)나 응급실 뿐이다. 하지만 응급 진료는 보험이 있어도 큰 부담으로 돌아온다(아기들의 응급 진료는 예외적으로 거의 무료다). 진료비 일부를 보험이 부담한다 해도, 청구액이 워낙 높다 보니 환자가 보험사에 직접 항의하거나 재심을 요청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그럴 때면 의료의 주체가 '환자'가 아니라 '보험회사'라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어렵게 잡은 예약일조차 날씨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폭우나 폭설로 도로 사정이 나빠지면 병원도 문을 닫는다. 운이 없어 그날이 예약일이라면 다시 일정을 잡아야 하는데, 다음 진료는 몇 달 뒤로 밀리기 일쑤다. 자주 아픈 아이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감기나 발열로 예약을 미루게 되면 또다시 긴 기다림이 시작된다. 결국 약으로 버티다 증상이 악화되면 얼전트케어나 응급실을 찾게 되고, 비싼 진료비를 감당해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민자인 나에게는 행정 절차의 느림도 낯설다. 병원 접수대에서 신분증 복사, 보험서류 팩스, 의료 동의서 작성까지 끝내는 데 한참이 걸린다. 환자를 존중하는 절차라 해도, 한국인의 눈에는 답답하게만 느껴진다. 효율과 속도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미국의 의료 문화는 인내심을 시험하는 공간이다.
보험이야말로 가장 높은 장벽이다. 대부분 직장에서 보험을 제공하지만, 그 범위는 제한적이다. 예를 들어, 아내는 교사로 일하며 미국에서도 혜택이 좋은 보험을 가지고 있지만, 외국인 신분인 나는 그 혜택에서 제외된다. 결국 별도의 보험을 들어야 하고, 수십 가지 회사와 플랜을 비교하며 선택해야 한다. 어느 의사가 포함되는지, 어떤 항목이 면제되는지 확인하는 일은 이름만 '보험 쇼핑'일 뿐, 실제로는 진이 빠지는 작업이다.
보험카드를 들고 병원에 가더라도 마음이 편하진 않다. 대부분 진료 후 바로 계산하지 않고, 며칠 뒤 보험사로부터 청구서를 받는다. 그제야 '보험이 얼마나 부담했는지', '내가 얼마나 내야 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미국 의료의 또 다른 모순은 '보험에 묶인 건강관리'다. 보험에 포함 되지 않는 병원이나 의사를 방문하면 상상 이상의 청구서를 받게 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치료보다 '보험이 허락한 병원'을 먼저 찾는다. 미국의 의료는 기술과 시설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그 혜택은 돈이 있는 사람들에게 집중된다. 반대로 저소득층은 정부보조보험인 메디케이드(Medicaid)나 오바마케어(Obamacare)에 의존하지만, 지원 기준이 까다롭고 서류 한 장만 누락돼도 몇 달씩 재신청해야 한다.
이민자로 살다 보면 어느새 이런 계산을 하게 된다. "이번 통증은 참을 만한가?", "이 병원은 내 보험이 커버할까?" 치료의 기준이 아픔의 정도가 아니라 '비용의 감당 여부'가 되는 셈이다. 그래서 이민자들끼리 종종 이런 농담을 나눈다.
미국에서 술, 담배는 사치야. 아프면 집이 날아가니까.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누구도 쉽게 부정하지 못한다.
병원비 한 번에 평생의 빚을 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살수록 점점 더 깨닫는다. 한국의 '국민건강보험'은 단순한 제도가 아니라 사회적 안전망의 기본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의료가 경쟁이나 이윤이 먼저가 아닌,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공공서비스라는 믿음이 주는 안정감. 그것은 내가 이곳에서 가장 그리워하는 '공공의료'의 가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