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록 思私錄 21 역사왜곡
애석하게도 내 주변에도 이런 인물이 있었다.
할아버지가 그러는데 일본사람들이 그렇게 아무나 패지 않았대요. 위안부도 끌고간게 아니라 자기들이 돈벌러 간거라고 하더라구요.
'독립운동사의 왜곡'이 내가 사람을 가리는 기준중에 하나이다.
일제강점기를 두고
“일본은 그리 가혹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오히려 조선을 개화시켰다”고 주장한다.
위안부는 자발적이었다고 말한다.
광복군은 한 일이 없다고 말한다.
독립운동가를 테러리스트라고 부른다.
이 말들은 우연히 나오지 않는다. 무지의 결과도 아니고, 의견 차이의 문제도 아니다.
이 논리는 한 방향으로만 향한다. 일본은 잘못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왜 그럴까?
일본이 나쁜 짓을 하지 않았어야 자기 자신이 정당해지기 때문이다.
만약 일본이 명백한 가해자라면, 그 시절 일본에 협력한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설명할 길이 없다.
그래서 역사를 바꾼다. 사실을 지우고, 고통을 축소한다.
이것은 돈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을 두둔해서 당장 얻는 이익은 없다. 정치적 보상도 없다.
과거의 세탁
변명의 대물림이고 자신의 정당성 확보다.
일본은 조선을 잘살게 해줬다.그때 협력한 건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이 말을 해야 할아버지, 할머니의 선택이 부끄럽지 않아진다.
이런 생각을 사회에 통용시켜야 과거가 당당해 진다.
이 생각의 시작점은 어디일까.
그들의 가정이다.
어릴 때 부터 들은 말이다. 부모에게서 배운 관점이다.
집 안에서 어른들이 지나가듯 던지는 몇 마디이다.
우리가 피해자라고 말하는 건 거짓이다. 일본은 나쁜 나라가 아니다.
이런 말은 학교보다 먼저 들린다.
책보다 먼저 몸에 밴다. 그래서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들이 말하는 이 논리는 일본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지금 미국에도 적용된다.
(한국전쟁으로 미국은 절대적 구세주, 절대자라는 관념)
만약 중국이 힘으로 한국을 굴복시켰을때, 러시아가 그렇게 했을때 그들의 논리는 똑같이 적용된다.
잘살게 해주면 옳다.
돈을 주면 정의다.
힘있는 자 밑에 붙는 것은 당연하다.
이것이 기준이 되면 침략도 미화되고 지배도 합리화된다.
전형적인 매국의 논리다.
강자 편에 서면 모든 것이 정당해진다는 사고다.
가정교육은 무섭다. 세 살에 배운 세계관은 여든까지 간다.
사실을 알아도 감정은 바뀌지 않는다. 증거를 봐도 태도는 남는다.
이런 가정교육을 받고 자랐다면 그 생각과 행동은 결코 쉽게 바뀌지 않는다.
큰 깨우침이나 사고, 트라우마가 생기지 않는한 적당히 감출 수는 있어도 바꾸기는 힘들다.
그래서 식민사관은 위험하다. 그리고 집요하다.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정체성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역사를 왜곡하는 사람들은 과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변호하는 것이다.
부끄러움을 덮기 위해 가정교육으로 자신의 정당함을 아이들에게 대물림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