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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케 Nov 22. 2020

'우리'에게로의 초대

디테일 성애자의 집들이 미학

며칠 전 ‘집들이’를 했습니다.


사실 이 집에 산 지 2년이나 되었고, 저희 부부 명의의 집이 아닌 전셋집입니다. ‘집들이’보다는 ‘홈파티’ 정도의 단어가 더 잘 맞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홈파티’라고 칭하자니 괜히 뭔가 있어 보이려는 것 같기도 하고, ‘파티’라는 단어가 주는 거창하고 본격적인 어감이 조금 쑥스럽기도 해서 그냥 얼렁뚱땅 집들이로 표현하곤 합니다.    



이번 집들이에 초대한 친구들은요. 대학교 때 대외활동을 함께 했던 친구들 3명입니다. 학생 시절, 6개월 동안 무언가를 함께 열심히 했던 추억을 공유하는 친구들이지요. 저와 남편이 이 대외활동에서 만난 사이여서, 저희 부부 개개인을 모두 아는 친구들이기도 합니다. 다들 직장인이라 사는 것이 바빠 자주는 못 보지만, 누군가의 경조사나, 연말 때쯤 총대를 메고 모임을 주선해 주는 고마운 친구 덕분에 다 같이 얼굴을 보곤 해요.



이번에도 누군가의 경조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결혼식이 끝난 후 함께 밥을 먹다가 나온 막내 ‘연’의 한 마디.



근데 언니 오빠는 집들이 왜 안 해?
왜 우리만 초대 안 해줘?



시끌벅적한 뷔페 테이블이 어수선해서 꺼낸 말이었을까요. 당황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고 놀리려는 얘기였을까요. 표면적인 서운함 이면에는 애정이 듬뿍 어린 그 말을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응 그러게. 너희들을 초대 안 했었네. 안 그래도 하려고 했었어. 날 잡자. 지금 당장 잡자!



그 자리에서 각자 핸드폰을 보며 이런저런 스케줄을 맞췄습니다. 금요일은 피곤해서 안 되고, 일요일은 다음날 출근이라 부담되고, 토요일로 잡아 그 날 술을 맘껏 마시겠다는 굳은 의지를 다지며 모두 참석 가능한 한 달 후의 날짜로 확정 지었습니다. 시간은 화살처럼 흘러 어느덧 ‘그 날’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지요.



결혼 후 집에 사람을 초대한 경험이 몇 번 쌓이다 보니, 이제 어느 정도는 ‘짬’이라는 것이 생겼습니다. 첫 번째 집들이에서는 마음만 앞서 모든 음식을 직접 하다 지쳐 괜히 부부끼리 싸우고, 우리 부부가 들인 노력에 비해 초라한 인증샷을 보고 아쉬워했다면, 이제는 비교적 적은 노력으로 최상의 집들이를 기획해내는 경험치가 생겼달까요. 이번 집들이에서 저희가 발휘한 경험치를 얘기해 볼게요. 다만, 저는 이런 디테일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사람이므로… 유난으로 느껴지실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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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집들이의 컨셉과 음식을 고민합니다. 음식은 되도록 기본적으로 맛은 있으면서, 보기에도 예쁜 것으로 합니다. 결국 남는 것은 사진이기 때문이죠. 특히 손님이 여자들일 경우 만족도가 더 높아집니다.



남편은 평소 연마해 온 ‘라구 파스타’, 저는 집에 있던 칵테일 새우로 ’ 감바스’를 하기로 합니다. 날이 추우니 집에 왔을 때 웰컴 드링크로 줄 수 있도록 ‘뱅쇼’를 준비하고(남편 담당), 애피타이저로 샐러드를 내어두기로 합니다. 샐러드는 샐러드 전문점에서 그냥 사는 게 저렴하고 편합니다. 다만 신경을 좀 더 쓰고 싶다면 아보카도 썬 것과 방울토마토 자른 것을 맨 위에 올려주세요. 아주 예쁘고, 맛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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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에 필요한 재료를 삽니다. 필요한 재료가 꽤 많을 테니, 웬만하면 마트 배송을 시킵니다. 직접 가는 것보다 훨씬 간편합니다. 마트 왔다 갔다 에너지 그거 은근 무시 못합니다. 그 에너지 절약해서 음식 할 때 쓰도록 합시다. 이쯤에서 2차 음식 메뉴도 정합니다. 간편하게 끓여낼 수 있는 떡볶이와 어묵탕. 손님이 모두 여자인 점을 감안해 선호도가 높은 분식으로 결정했습니다. 배송시킨 재료는 집들이 전날이나 전전날 배달 오도록 신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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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들이에 컨셉이 있으면 손님들의 만족도가 더 높습니다. 디테일을 잘 잡아내 주는 성향의 손님일수록 더 그렇습니다. 이번 집들이 컨셉은 남편 빼고 모두 여자인 점에서 착안하여 Girl’s Night로 했습니다. (별안간 함께 Girl 된 남편 미안..)



아이패드에 우리 부부와 손님들의 이름을 넣어 그럴듯한 메뉴판도 만듭니다. 인스타 스토리 만드는 툴로 만들어도 얼추 그럴듯하게 나옵니다. 메뉴 영어로 넣고 이모지나 반짝반짝하는 gif 귀여운 것 몇 개 넣어주세요. 특히 손님 이름이나 사진을 넣어주면 매우 반응이 좋습니다. ‘나만을 위한’ 어떤 것의 느낌이잖아요. (…사실 제가 이런 걸 좋아합니다.) 메뉴판 만드는 과정을 인스타 스토리에 올려 슬쩍 티저도 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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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마지막 디테일을 챙기는 날입니다. 테이블 위에 꽃이 있으면 확실히 훨씬 예쁩니다. 여력이 된다면 꽃을 꽂아두시면 좋습니다. 연말 즈음이라면 크리스마스트리를 꺼내셔도 좋습니다. 집도 어느 정도 정리합시다. 쌓아둔 재활용 쓰레기도 버리고, 구석구석 먼지도 좀 털고, 키우는 화분도 좀 더 잘 보이는 곳에 꺼내 둡시다. 이 모든 것이 손님에게는 ‘구경할 거리’가 되니까요.



D-Day


고대하던 그날입니다. 집도 마저 정리하고, 요리할 재료를 꺼내 다듬어 둡니다. 술은 인터넷 배송이 안 되니 마트에 가서 직접 삽니다. 손님 취향에 따라 사되, 와인도 한 병 정도 사고요. 마지막에 먹을 디저트도 카페 가서 사 옵니다. 색감과 디자인이 예쁜 케이크일수록 좋습니다. 어차피 저녁으로 배는 충분히 채울 테니 많이 살 필요 없고, 한 사람 당 두 세 포크 먹을 정도로만 삽니다.



손님이 도착할 때 즈음에는 간접조명을 켜 두는 것을 추천합니다. 하얗고 쨍한 형광등 조명은 우리 집의 생활감을 극대화합니다. 노란색 간접조명에, 크리스마스트리 조명이나 반짝반짝 방울 전구가 있으면 모두 켜 주세요. 블루투스 스피커로 컨셉에 맞는 음악을 틀어 둡시다. 예를 들어 연말이라면 유튜브에서 Jazz carol을 검색하거나, 때껄룩 같은 플레이리스트 채널에서 연말 플리를 틀어두는 것도 좋겠네요. 단, 멜론 탑 백은 피합시다. 좋은 곡들이긴 하지만 오만 장르가 섞여있어 오히려 소음이 될 수도 있어요.



손님이 도착하면 가장 먼저 손을 씻도록 안내하고, 준비했던 뱅쇼를 웰컴 드링크로 내어 줍니다. 여기서부터 손님의 감동이 시작됩니다.

 


이야, 너네 집 진짜 아늑하다.
너무 예쁘게 해 놓고 산다!



중간중간 휴지나 식기가 부족함이 없도록 잘 챙겨 주시고, 호스트 둘 중 한 명은 얘기 중 슬쩍 설거지를 조금씩 해 두는 것도 좋습니다. 다 떠난 후 한꺼번에 하려면 너무 막막할 수도 있거든요. 메뉴 하나씩 내올 때마다 ‘우리 아빠가 주말농장에서 기른 무로 끓인 어묵탕’, ‘오늘 오후부터 내내 직접 끓인 뱅쇼’등 재료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해 주는 것도 재미를 더해줍니다.



이젠 재미있게 놀다가, 너무 재미있어 시간을 잊은 손님들이 집에 못 가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집이 먼 친구의 막차 시간만 잘 챙겨서 보내주시면 아름다운 파티가 완벽하게 마무리됩니다. 친구들한테 인스타에 사진 올릴 때 태그 꼭 해 달라고 하시고요.



친구들 보내고, 일단 그 날은 푹 주무세요. 힘드셨을 거잖아요. 다음날에 일어나서 둘이 같이 딱 한 시간 안에 정리 끝낸다! 는 마음으로 샤라락 정리하세요. 마음먹고 하면 은근 금방 끝난답니다?




집들이는 개인이 집에서 기획할 수 있는 가장 전통적이고, 개인적이고, 섬세한 체험형 예술작품입니다. 저는 소중한 시간을 내어 우리 집에 방문할 손님들의 몇 시간이 추억에 강렬하게 남았으면 합니다. 그래서 수많은 디테일을 고민합니다.



일부러 구입해 꽂아놓은 꽃송이에는 친구가 예쁜 테이블 인증샷을 찍기를 바라는 마음, 연말 분위기를 의도해 틀어놓은 재즈 캐롤에서 청각적 아늑함을 느끼길 바라는 마음, 이것 저것 이미지를 넣고 제목까지 붙여 꾸민 메뉴판에는 오늘 하루를 더 선명하게 기억했으면 하는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제목에서 ‘집들이의 미학’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와도 같아요. 사람들이 우리의 삶의 공간에 마음을 가져와 좋아해 주는 것이 참 좋습니다. 말 그대로 ‘우리’에게의 초대 같습니다.



작은 디테일이 모여서 마스터피스가 만들어집니다. 인상 깊은 날과 장소는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겠지요. 우리 집에서 함께한 시간들이 모두에게 따뜻하고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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