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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브 May 12. 2023

즐겁지만...

요즘 우리 학원 분위기가 아주 좋다. 아이들이 뭔가 기대하는 얼굴로 교실에 들어오고 나랑 대거리하는 것뿐 아니라 자기들끼리 이야기할 때도 다들 흥겹다. 뭔가 설레는 마음으로 교실에 들어와서 뭐 할 것 없나 하고 눈을 반짝거리는 아이들의 얼굴이 뭔가 익숙하면서도 저래도 되나 싶기도 해서 좋기도 하고 약간 걱정도 된다. 그런 반짝거리는 표정으로 어딘가에서 사람들과 함께한 기억이 누구나 있지 않을까 싶다.


대학생 때 처음 해외로 나가는 비행기에서 그런 흥분과 설렘을 느낀 기억이 난다. 그때는 IMF로 유휴인력이 된 사람들이 많았는데, 나도 그런 사람중 하나로 단체로 프랑스로 가는 프랑스 국적기를 타고 이스라엘 키부츠로 가는 길이었다. 옆에 어떤 오빠가 앉았는데 너무 말을 재미있게 하고 서로의 미래와 상황도 이야기하면서 시간 가는줄 몰랐다. 프랑스인 승무원조차 내 흥겨움을 느꼈는지 아니면 내가 무슨 장난을 걸었는지 나랑 계속 농담을 주고받았고 나한테 오더니 한국어로 인사를 어떻게 하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비행기가 착륙해 내리려고 준비하는데 그 승무원이 와서 내 아래팔을 잡더니 너무 즐거웠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가서 어리둥절했다. 그리고 내리려고 통로를 걸어가는데 다른 쪽을 서빙하느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었던 남자 승무원이 내 길을 가로막고 못 간다고 장난을 걸어서 또 한바탕 웃고 내렸다. 그래서 비행기 타면 다 그렇게 승무원들이랑 웃고 떠드는줄 알았고 다음 프랑스 비행기를 또 타면 그 사람들을 또 만날줄 알았는데 그런 일은 이후 절대절대 없었다. 그때는 그런 시시껄렁한 장난이 일상이었던 것 같다. 학교에서도 선배들, 친구들하고 그러고 놀지 않았을까? 


키부츠에 가서도 여러나라 친구들과 그러고 노는 재미에 매일이 웃음바다였다. 내 양옆 친구들이 이야기하고 있으면 서로 얼굴을 못 보게 등을 숙이고, 친구들이 내 뒤로 이야기하면 또 등을 펴는 장난. 뭐 좀 달라고 하면 없다고 시치미 떼고 앉아도 되냐고 하면 싫다고 하는 정말 한심한 장난이 우리 사이에 잔잔한 웃음을 깔아줬는데. 요즘 우리 학원 애들이 그러고 있다. 내가 너무 장난을 쳐서 그런가? 가장 얌전하고 가장 착실하던 1학년 여자아이마저 이거 풀어 오세요, 하면 '싫어요' '안 해요' 이러면서 눈으로 웃고 있다. 싫어요, 안 해요는 학원에서 해서는 안 될 말이지만, 걔 나름대로 그게 가장 재미있는 장난인 것 같고 또 다시 하라고 하면 잘 하기 때문에 그냥 한 번 웃고 끝내는데. 원래 아이들이 다 그렇긴 할 거다. 그게 지금까지는 봉인돼 있다가 내 통제력 부족 때문에 풀린건지도 모르겠다. 


내가 친 장난이란 게 별 거 없는데. 출근 길에 만난 아이 어깨에 손을 올리고 '꼬마야, 맛있는 거 사줄 테니까 갈래?' 이러고, 다리를 다쳐서 피가 난 친구에게 반창고 좀 전해주라고 하면서 '저기 다리에 침 바르는 애한테 좀 줘라.' 라거나, '나는 매일 요리를 해요' 같은 문장을 '나는 허구헌날 요리를 해요'라고 살짝 바꾸면 애들이 깔깔거린다. 나도 이렇게 장난을 치는 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고 그냥 본능적으로 장난이 나오는데 남 놀리거나 악의적인 행동은 하지 않고, 아이들도 그런 말이나 행동을 절대 못하게 한다. 


그런데 덩달아서 원장님도 아이들에게 수학 가르치면서 아주 즐거워 보인다. 전에는 아이들이 하는 잡담을 절대 안 받아주셨는데 이제는 아이들이 몇 마디 하는 건 그냥 놔두고 뭔가 즐거워 보이신다. 그리고 원장님은 학원을 다른 데에도 확장하고 그게 잘 돼서 굉장히 고무된 상황이기는 하다. 


물론 학원에 놀러오면 안 되니까 공부를 가르칠 때는 열심히 가르친다. 하지만 조용히 공부만 하다가 가기에는 아이들의 에너지가 안타깝기도 하고 소중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그러고 있다. 


하여튼 복도를 걸어 교실로 다가오는 아이들의 얼굴에 실룩실룩 기대감이 보일 때 뭔가 나도 덩달아 재미있단 말이지. 내가 거기서 말도 안 될 정도로 생기를 얻는 것 같기도 하고...... 너무 과하지 않을 정도로만 편안하게 다니면서 영어 실력도 키울 수 있게 해주자,고만 생각하고 있다. '학교 끝나고 학원 뺑뺑이'가 안타깝기만 한 시간이 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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