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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브 May 06. 2024

긴 여정 끝에 빛나는 글-<숲속의 자본주의자>

<숲속의 자본주의자>는 미국 시애틀 외곽의 시골에서 컨테이너를 마련해 살고 있는 저자가 자신의 생활과 생각을 적은 글을 묶은 책이다. 

아이 두 명이 청소년인 것 같고 남편도 직장을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글을 쓰는 사람 같다. 농사를 지어보려고 했지만 동물들의 공격이 너무 심해서 포기하고 있는 걸 따거나 뜯어서 먹고 통밀을 바로 갈아서 최소한의 이스트를 넣어 만든 빵을 일주일에 며칠  몇개씩 판다고 한다. 최소한의 이스트를 넣기 위해 수없는 실험을 했다고 하고 밀을 바로 갈아서 만든다고 하니 정말 맛이 좋을 것 같아서 나도 먹어보고 싶다.

빵 하나를 만드는 데도 이렇게 공을 들이면서도 그만두기 어려울 정도로 빠지면 안 된다는 이유로, 또 빵 맛을 균일하게 유지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천연발효빵을 만들지는 않는다는 특이하신 분이다. 

서울대를 나와서 기자 생활을 했고 미국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았으니 미국 시골에서 저렇게 산다는 것에 대해 엄청난 물음표 공격을 많이 받았을 것이고, 많은 글이 그 물음표에 답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에 더해 저자의 독서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지금 나도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지만, 이분은 책과 일화와 자신의 생각을 잘 버무려 멋진 글로 만들었다. 아주 유식하시고 글도 잘 쓰고 학자들의 어려운 생각을 소화시켜 편안하게 엮어내는 솜씨가 뛰어나다. 

쉽게 찾을 수 없는 생활방식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우선 자신에게 편안한 생활방식을 찾기 위해 멀리까지 가야 했던 저자에 비해 나는 참 평이하게 사는 것 같다. 세상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정말 많을 것이다. 저자는 그런 자신에게 맞는 방식을 찾기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거기까지 갔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과정이라고 한다. 계속 자연과 가까이 살고 싶은 생각이 있었지만 남편이 반대해서 실행하지 못하다가 이제는 도시 생활이 잘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쯤 남편이 돌연 직장을 그만두었다고. 미국에서는 우리나라보다 신선한 채소 과일에 더 높은 가치를 두는 만큼 도시에 농작물을 공급하려고 했는데 계속 동물들을 경계할 방법을 찾다 보면 사람보다도 동물을 더 미워하게 될 것 같아서 그만뒀다고 한다.

많이 배우고 생각도 많이 한 분이라 그런지 글이 밀도 있고 적절한 지적 즐거움이 있다.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는 재미도 있고 솔직해서 쉽고 재미있게 읽었다. 

자신에 대해 정말 많이 생각한 사람 같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있지만 다수에게보다는 자신과 맞는 소수에게 인정받고 싶어한다는 걸 깨달았고 그게 의외로 가정주부라는 직업에 딱 들어맞았다고 한다. 자신은 남들이 뭐라고 해도 별로 신경 쓰이지 않고 가족이 최고라고 할 때 만족하는 사람이라고. 가족에게 인정받는 것도 중요하긴 한데, 이렇게까지 생각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 그 외에도 피아노를 너무 치기 싫었는데도 억지로 쳤지만 커서 힘들 때 다시 피아노 앞에 앉으니 옛날에 치던 곡을 그대로 칠 수 있었고 그토록 싫었던 피아노를 치는 순간이 이제는 오히려 자신을 찾는 시간이 됐다고 한다. 하지만 컨테이너 주택 생활을 하면서 더 이상 자신을 찾아 투쟁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오히려 쉽게 피아노를 버릴 수 있었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자의식이 넘치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그렇다고 가족에게 자신의 방식을 강요하면서 살지 않는 것 같고 세상의 흐름을 굳이 거부하면서 사는 것도 아닌 것으로 보인다.

전에는 하루를 치열하게 보낸 후 풀어지고 싶다는 생각으로 와인을 매일 마시고 커피가 없으면 못 산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꼭 해야 할 일들이 없이 자유롭게 살기 때문에 커피도 필요 없고 저녁에 딱히 풀어질 필요도 없을 정도로 늘 풀어져 있어서 와인도 필요 없다고 한다. 그래서 커피 기기들을 전부 중고로 팔고 집에 맥주 한 캔도 없다고. 이런 여유 있는 삶을 실제로 살고 있는 사람이 또 있을지. 이 대목에서 부러움을 느끼는 독자가 많을 것 같다.

"신기하게도 이런 생활을 계속할수록 나는 깨닫는다. 이토록 외진 곳에서 살아도 사회와 나는 깊이 연결되어 있으며, 이런 자유를 누리는 일 역시 자본주의하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숲속에서 내가 뼛속까지 자본주의자라는 사실을 깨달은 셈이다. 나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면 자본주의는 내 멋대로 살아가기에 가장 좋은 제도다."

책 제목의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저자는 집에 와이파이도 없어서 쓸데 없는 일에 시간을 뺏기지 않고 도서관을 이용해서 해야 할 일을 컴팩트하게 마무리하고 핸드폰 두 대를 가족 네 명이 나눠 쓴다고 한다. 극단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무형과 유형의 재산을 낭비하지 않고 검소하게 살면서도 욕망의 통제에 구속되지 않는 삶의 방식을 찾은 것에 대해 깊은 존경심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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