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이상 조경가로 일해오면서 국내의 크고 작은 다양한 정원 작업을 해 온 우리나라 1세대 조경가 정영선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 <땅에 쓰는 시>가 상영중이다. 이에 맞춰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라는 전시를 하고 있어서 지난 일요일 가족과 함께 방문했다. 날이 좋아서인지, 박물관 주간이라고 입장료가 무료여서인지, 정영선 조경가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인지 전시관에 사람이 아주 많았다. 영화를 보면서도 국내 곳곳에서 많은 작업을 한 사람인 걸 알 수 있었는데 그 작업을 사진, 설계도, 스케치 등과 함께 모아두니 정말 내가 아는 거의 모든 조경이 이분의 손을 거친 것 같다. 대전 엑스포, 샛강생태공원, 경춘선 숲길, 예술의 전당, 영종도 신공항, 서울식물원, 한강 선유도공원, 국립중앙박물관 등 우리가 알고 걸어본 거의 모든 정원이 전시관 안에 있었다. 전시 끝에 관람한 영상에서 정영선 조경가는 자신의 작업 철학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儉而不陋 華而不侈)”를 이야기했다. 그녀의 조경을 체험할 수 있도록 전시관 밖 마당에 꾸민 정원을 보니 과연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눈에 들어오면서도 꽃과 나무가 모두 예뻤다. 과하게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고 바라보는 사람이 편안하게 스며드는 풍경인 것 같다.
이 많은 작업에 한 사람의 이름이 걸려 있다니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 궁금해지는데 미리 본 영화를 생각하면서 그 답을 찾아봤다. 손자가 있는 할머니인 그녀는 출퇴근 전후로 매일 몇 시간씩 집 앞의 정원을 돌본다. 할 일이 없을 것 같은 겨울에도 씨도 받아야 하고 죽은 가지도 정리해야 해서 할 일이 많다고 한다. 같이 조경 작업을 한 어떤 사람은 이분이 10년 전에는 날아다녔다고 말했는데, 내가 볼 때는 지금도 남들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이고 일도 엄청나게 많이 한다. 그런데 이를 악물고 하는 게 아니라 즐거워 죽겠다는 듯이 일한다. 어떤 꽃을 심을지 고민하며 설계도에 파스텔을 칠하면서도 재밌다고 혼잣말을 하고 외출 준비를 마친 후 현관문을 열고 나와서는 마당에 자라는 나무들을 손으로 툭툭 치면서 안녕, 안녕! 하고 인사를 한다. 열심히 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못 이긴다고 하는데, 이분은 즐기면서도 열심히 일하니 지금 같은 성과를 이룰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이분의 고집에 많이 힘들었던 모양이다. 정영선 조경가가 통에 담은 씨앗을 숟가락으로 소중하게 퍼주자 그걸 받는 사람은 ‘일 많아져서 안 반갑다’고 장난스레 퉁퉁거린다. 그녀는 꽃을 심는 인부들에게 “꽃 방향 맞추세요.”라고 지시하고는 그 지시가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못 알아듣죠.”하면서 바닥에 심긴 흙덩이의 방향을 직접 바꿔 꽃들이 한쪽을 바라보도록 맞춘다. 말로는 ‘이제 알아서 해라.’라고 젊은 사람들에게 맡기면서도 꽃들의 색이 잘 어울리는지, 또 너무 어지럽게 흩어져 있거나 아니면 너무 줄을 잘 맞추지 않는지 매의 눈으로 관찰해서 직접 손을 댄다. 옆에서 작업하던 한 사람이 ‘교수님이 말하는 걸 한 번에 알아듣는 데 10년이 걸렸다’고 했을 정도다. 역시 거장이 되려면 이렇게 지독한 구석이 있어야 하는 것 같다. 뭐든지 좋게 좋게 넘어가려고 하지 않고 성질을 잘 부리는 남편에게 알려주고 싶은 구석이었다.
정영선 조경가는 작업을 계획할 때 해당 부지의 지형과 그곳을 이용할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면서 그들을 잘 연결할 방법을 찾고 마지막에 자기 생각을 넣는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을 ‘연결사’라고 말한다. 우리나라 땅 곳곳에 들어있는 아름다움을 보고 그에 걸맞은 전통적인 미적 감각을 채우고 그곳에 찾아올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 설계한다는 그녀의 철학을 들으면서 이분은 자신을 드러내는 데 몰두하는 게 아니라 좀 더 크고 깊은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으로 지금까지 걸어왔고 그것이 많은 성취를 이루는 힘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이제 나이가 들어 물러나야 하지만 우리나라 땅의 아름다움을 살리겠다는 사명감 때문에 지금도 힘껏 일하고 있다는 그녀의 고백이 자못 감동적이었다.
조경에 대한 관심은 정원을 가꾸던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통해 시작됐다고 한다. 1호 여성 조경가라는 수식어도 붙기는 하지만 여성이라는 한계에 부딪힌다는 의식 없이 열정과 사명감으로 부단히 걸어올 수 있었던 데는 어린 시절 어른들의 정서적 뒷받침이 중요했던 것 같아 나 역시 부모로서 책임감이 느껴졌고 그에 앞서 단단한 철학과 신념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스스로 부단히 노력해야겠다는 교훈도 얻었다.
정영선 조경가는 시를 좋아한다고 한다. 샛강공원 작업을 하기 전에도 관련 공무원들에게도 김수영의 ‘풀’을 들려주며 과도한 개발을 하지 않도록 설득했다고 한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이 시가 어떻게 과도한 개발을 방지하는 역할을 했는지 이해가 될 듯도 하고 아리송하기도 하다. 풀이 많아야 우리 내면이 더 강해질 수 있다고 공무원들이 설득당한 걸까? 미적 감각이 부족한 내 머리에 물음표가 가득 차지만 앞으로는 들판에 흐드러지게 자란 풀을 보면 정영선 조경가의 놀라운 삶이 떠오를 것 같다. 그때마다 나도 좀 더 진지하게, 그리고 더 뜨겁고 더 즐겁게 내 삶에 매진하겠다고 다짐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