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많이 하지 않으면

기력이 딸리지 않는다.

by 올리브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오면 머리가 너무너무 어지러울 때가 있다. 그 사람, 혹은 사람들과 나눈 말이 머리에서 계속 생각나고 빙빙 돌아서 집중이 안 되고 마음이 복잡해진다. 그런 생각에는 후회도 있고 아쉬움도 있고 음미도 있다. 특히 말을 많이 하면 내 마음이 더 복잡해지는 것 같다. 왜 일까? 말하면서 내가 생각을 많이 하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말을 통해 상대방에서 좀 더 좋은 인상을 주고 나에 대해 좀 더 잘 포장하고 싶다는 정서가 내 머리의 뭔가를 건드리는 것 같다.


언젠가 할 일은 많은데 하루 종일 낮에 산책할 때 친구에게 하고 들은 말이 머리에서 맴돌아서 정말 미칠 것 같았던 적이 있은 후로 말을 많이 안 하면 오히려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말을 많이 안 한다는 건 일부러 할 말을 끄집어내지 않는다는 뜻이다. 두 사람 사이의 침묵이 불편해서 평소 가지고 있던 생각을 두서없이 꺼내거나 나도 이런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고 싶어서 뭔가 있는 척 말을 할 때가 대부분인데, 그렇게 구태여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침묵이 불편해서 하던 말은 상대방에게 맞추기 위해서 한 말이었다. 그런 노력을 이제 중단해야 한다. 상대방을 기쁘게 하려고 노력하지 말라는 말은 다들 책에서 많이 읽어봤을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 나도 상대가 내 비위를 맞추기 위해 아무 말이나 하는 것을 원하지 않듯이 상대도 내 그런 말에 아무 의미도 찾지 못하기 때문에 안 하는 게 훨씬 이롭다.


인정받고 싶어서 하는 말은 내가 실제보다 저평가받고 있다는 생각에서 나온다. 남들을 다 자기를 홍보하는 데 참 유능해 보이는데 나만 너무 조용히 없는 척 살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자의식에서 출발한 말이다. 이런 생각도 해롭기만 할 뿐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나에 대한 타인의 인정은 내 부자연스러운 노력에서 나오지 않는다. 내가 나를 인정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럴 때 인정에 목마른 한심한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있고 상대도 나도 똑같이 소중하다는 더 중요한 진실을 공유할 수 있다.


이렇게 구태여 많은 말을 하지 않고 내가 하는 말을 지켜보며 조금 절제하고 돌아오면 한결 마음이 편하다. 끝없이 돌아가는 뇌회로에 지배당하지 않는다. 물론 개중에는 상처받는 말도 있고 후회스러운 말도 있고 하지 않아서 후회스러운 말도 있지만 심란함의 강도는 비교도 안되게 약해진다.

물론 의뭉스럽게 자기를 감추라는 말이 아니다. 겸손함을 가장하기 위해서 누가 시키지 않으면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좋은 태도가 아니다. 상대가 알고 싶어하는 것이 뭔지 나도 이미 알고 있으므로 거기에 맞춰서 적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제대로 대화하는 기술은 나처럼 몇 번의 성찰로 완성할 수 없는 고차원적이고 아름다운 기술이다. 즐거운 대화는 우리 영혼을 깨우고 상쾌한 지적 자극을 주고 삶을 풍성하게 한다. 하지만 쓸데 없는 말을 줄여서 내 에너지를 아끼고 혼자 있는 시간의 질을 관리하는 것만도 많은 발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외출하기 전, 하루를 시작하기 전 잠시 틈을 내서 이 결심을 상기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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