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 피곤합니다

어쩌다 피곤한 인간 #2

by 호우





2화. 피곤함의 쓸모



어쩌면 ‘피로’라는 감정은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솔직한 철학 교재인지도 모른다.

기쁘면 사람은 과장하고, 슬프면 숨기기도 하지만,

피곤하면... 아무리 노력해도 감출 수가 없다.

눈꺼풀은 존재의 진실을 가리려 하지 않고,

어깨는 자꾸만 중력에 항복하려 한다.

몸은 언제나 마음보다 먼저 진실을 말한다.


나는 피곤해질 때마다 문득 그런 생각을 한다.

‘피로는 나를 배신하러 온 게 아니라, 나를 알려주러 온 건가?’

피곤해지면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은 체력이 아니라,

내가 억지로 붙잡고 있던 ‘괜찮은 척’이라는 가면이었다.


사람에게서 오는 피로는 더 흥미롭다.

육체적 피로는 쉬면 풀리지만,

관계에서 오는 피로는 오히려 ‘생각’을 불러온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말했을까?”

“나는 왜 저 말에 이렇게 흔들릴까?”

“서로 왜 이렇게 피곤한 걸까?”

이런 질문들이 줄지어 나타난다.

알고 보면 피로는 철학자의 첫 질문처럼 우리를 멈춰 세운다.


심지어 피로는 ‘나’라는 존재의 경계도 분명하게 만든다.

힘들 때 보이는 사람,

힘들 때 피하고 싶은 사람,

힘들 때도 의외로 괜찮은 사람.

피로 속에서 인간관계의 지도가 은근히 다시 그려진다.

이건 일종의 영혼 GPS 같은 것이다.

배터리가 3% 남으면, 진짜 목적지가 보인다.


그래서 이제는 피곤할 때마다 조금은 감사하려 한다.

조금은. 아주 조금은.

피곤함 덕분에 나는 내가 무엇을 싫어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누구와 있을 때 편안하고, 누구와 있을 때 영혼이 방전되는지를 배운다.


피곤함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나 자신을 이만큼 들여다보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피로는 나를 괴롭히는 감정이자,

나를 설명하는 감정이다.

피곤해질수록 깊어지는 이해...

이것도 인간만의 묘한 능력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