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 피곤합니다

어쩌다 피곤한 인간 #3

by 호우





3화. 피곤할 때 드러나는 나



피로라는 감정은 묘하게도, 나를 외부 세계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동시에

또 다른 방식으로는 그 세계를 더 선명하게 이해하도록 만든다.

마치 조명이 꺼져야만 비로소 보이는 작은 불빛 같은 것들.


나는 피곤할 때 비로소 진짜 나를 마주한다.

기운이 넘칠 때는 누구나 꽤 근사한 사람처럼 보인다.

친절해 보이고, 여유 있어 보이고, 포용력 있는 인간처럼.

그런데 피곤해지면 사람의 가장 기본값이 드러난다.

성격의 구조물이 무너지고, 언어의 장식이 벗겨지고,

남는 건 아주 단순하고 가볍지 않은 ‘나’.


가끔은 피곤해서 도망치고 싶은 순간이 인간의 본심을 말해준다.

아무에게도 말하기 싫고, 누구의 마음도 받고 싶지 않고,

그냥 조용한 벽 하나와 친구가 되고 싶은 마음.

그런 기분들이 말한다.

‘너는 사실, 이런 사람이다.’


그리고 그게 나쁘지 않다는 사실도

피로를 통해 배운다.

내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도,

‘에너지가 풍부한 사람’이 아니라도,

‘착한 소비자’나 ‘친절한 직원’이 아니라도

그냥 존재 자체로 충분할 때가 있다는 것을

피로가 알려주었다.


그래서 내게 피로는 단순한 고갈이 아니라

조용한 자기 발견이다.

어쩌면 인생의 가장 진실한 문장들은

항상 피곤한 날에 등장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