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패드
오래전부터 갖고 싶은 것이 생기면 1주일을 채 넘기지 못하고 사고야 마는 성미였다. 그렇게 나는 지구에는 미안하고 지갑에는 더 미안한 사람이 되어갔고 어느 순간 내돈을 내가 벌기시작한 순간부터 아차 싶었다. 내가 누리던 그 많은 것들이 얼만큼의 노력이 갈려 들어갔는지에 대해 계산하기 시작하면서 소비에 조금씩 예민하게 굴기 시작했다.
물론 모두가 공감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지만, 한 번 커진 씀씀이를 줄이는 것은 사실상 다이어트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다이어트는 물론이고 끈기있게 해야하는 그 무엇에도 딱히 성공의 역사가 없는 나로서는 굉장한 도전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쉽게 성장했다. 회사라는 곳은 자고로 학교와는 성격이 많이 다르다. 학생때는 돈을 어떻게 쓸까 궁리할 시간이 충분했다. 너무 충분해서 항상 과소비를 하곤 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놈의 회사를 다니고 나니 무엇을 살까 하는 고민도 사치였다. 퇴근하고나면 드러눕기 바쁘고 출근할 때는 충전이 하나도 안 된 핸드폰처럼 기어나갔고, 회사에서는 물건보다는 종목 쇼핑에 관심있는 사람들과 대화하다보니 내가 쓸 수 있는 여유자금은 모조리 주식씨드가 되었다. 주말은 늦잠과 OTT 프로그램의 연속이었다. 도무지가 돈쓸 시간이없는 것이다. 그렇게 승진을 목전에 둔 2021년이 밝았다. 생각보다 착실하게 통장잔고가 불어나있었고 왠지 뿌듯하기도 기쁘기도한데 뒤돌아보니 딱히 남은게 돈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편으로는 돈이라도 남아서 다행이다 싶다가도, 돈이 목적인 인생은 멋이 없다고 생각했던 대학생 때가 떠올랐고, 멋없는 어른이 되어있는 자신이 마뜩찮았다. 그러다보니 여가시간, 취미 따위의 것을 가져야한다는 인생선배님들의 말이 순식간에 가슴에 와닿았다. 처음으로는 피아노학원이었다. 손가락을 신나게 놀리며 내가 만들어내는 하모니가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귀도 즐겁고 손도 즐겁고 퇴근 후가 기다려지는 순간들이었다. 손가락이 슬슬 풀려가는 무렵에 한가지더 나의 오랜 꿈이 고개를 들고 말았다. 글을 쓰고 싶다.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했다는 진부한이야기로 시작되는 나의 글쓰기에 대한 열망은 세월에 무뎌져있었다고 생각했는데 글을 쓰고 싶다는 사실을 인지한 이후부터는 어찌나 글이 쓰고싶던지. 사실 대단한 문장가가 되고 소설가가 되고 이런꿈이라기보다는 끊임없이 글쓰고싶은 부분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도 오랫동안 글을 쓰지 않아 영 민망해서 쉽사리 시작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2021년, 대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면서 여유시간은 갈수록 늘어만 났고 혼자서도 시간을 잘쓰는 방법을 배워야했다. 그렇게 나는 아이패드를 사고야 만것이다. 오랜만에 찾아온 이 소비의 핑계가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동영상 수십개를 찾아보며 비교하고 생각하고 고민하고 체험하고. 결과로 지금 이글을 쓰는 이분과 만나게 되었다. 얼마나 잘쓰게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꾸준히 글을 써나간다면 또 어느순간에는 합리적인 소비가 되어있을 것이다. 앞으로 잘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