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비 벌러 학원에 갔다.
-독서토론논술 교사 지원했다.
6학년 두 딸들. 공부를 썩 잘하는 편은 아니다. 그렇다고 아예 못하는 것은 아니다. 애들이 학원을 다닌다는데 안 보낼 수 없고, 다 보내자니 돈이 너무 많이 든다. 남편과 나의 노후는 어쩌라고? 아이들에게 이 돈은 엄마 아빠 노후를 위한 연금에 넣는 대신 너희들 교육에 투자하는 것이니 허튼 돈이 되지 않도록 학원 수업 및 과제 수행에 충실하길 바란다고 얘기했다. 엄마의 간절한 당부. 하지만 그 말의 파장은 오래가지 않는다. 아이들이 자리를 뜨면 이내 소멸한다. 아이들은 학원을 습관처럼 다닌다. 자기들 딴에 아예 안 다니면 편하지만, 학습이 부진해질까 걱정이 되니 그만둘 순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그래서 엄마인 나는 별수 없이 매달 학원비를 부친다.
어려서부터 학원을 보낸 것은 아니다. 아이들 초등 저학년까진 학교 숙제만 마치면 놀렸다. 어려서 놀아야지 언제 놀겠냐며 공부를 시키지 않았다. 책만은 부단히 도서관에서 대여해서라도 읽혔다. 그 외에 방과 후 활동은 대체로 예체능 관련된 것이었다. 그러다 3학년이 되어 처음 직접 수학을 가르치고는 아이들과 매일 싸워야 했다. 공부 습관이 없는 아이들을 책상에 앉히느라 실랑이해야 했고, 같은 것을 방법을 바꿔 가며 수십 번 설명해도 못 알아들을 때는 가슴이 탁 막혔다. 울고 싶을 때도 있었다. 아이들 수학을 가르치며 최고의 난관은 두 자리 수의 곱셈이었다. 종이에 옥수수밭을 수십 번 그려서 설명해도 이해 못 하는 아이가 있었다. 그런 애들을 상대로 욕심을 부리느라 베다 수학 곱셈을 찾아 연구하며 가르쳤다. 그 내용, 지금 나조차 기억이 안 난다. 애들이 이해했을 리 없다.
다른 과목도 마찬가지다. 욕심껏 가르치고는 싶었으나 자녀를 가르치는 것은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 아이 수준에 맞게 쉬운 것부터 차근차근 시작하고, 작은 성취에도 잘한다고 칭찬해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다. 자식을 대할 때는 헛된 기대와 욕심이 눈을 가린다. 게다가 엄마와 자식이라는 관계가 교사와 학생 간의 건전한 교류를 방해한다. 일상생활에서 부딪히는 것 외에도 수업 시간에도 엄마의 잔소리가 끊이지 않으니, 공부는 이미 지긋지긋하고 하기 싫은 것이 된다. 결국, 학원 문을 두드렸다.
처음 간 곳은 학교 근처 영어 교습소와 수학 공부방이었다. 오래 다녀도 학습 효과가 미미한 듯하여 수소문하여 잘 가르친다는 학원을 찾아 그곳으로 옮겼다. 각각 수학, 영어 전문 학원이어서 그런지 수업 만족도는 전보다 나았다. 돈이 문제다. 오른 학원비 지출을 메울 수 없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이들 친구들이 태권도 같이 다니자고 했다며 태권도 학원에 보내달래서 태권도도 등록했다. 두 녀석 학원비 지출이 꽤 크다. 수학 학원 대신 태블릿으로 학습하는 온라인 학습 프로그램을 권했지만, 체험학습 10일을 채우기 전에 수학 학원에 계속 다니는 것이 좋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각종 공과금, 생활비, 학원비 등의 지출을 따지고 보니 이대로는 저축은커녕 매월 적자가 안 생기면 다행이었다.
바로 며칠 전까지 "나는야, 취집 한 경단 맘충이로다. 무적 파워!"라고 외쳤는데, 돈 앞에서 당당하지 않다.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성향과 독서토론 모임을 해온 내공을 살려서 할 일이 무엇일지 궁리했다. 뻔한 답으로 독서토론 지도가 떠올랐다. 늘 염두에 두곤 했다. 전 직장 소속이 학습지 교재개발팀이었다. 그곳에서 초중등 국어 교재 개발 업무를 했다. 학습목표를 짜고 그에 맞게 학습내용을 생성하고 편집, 교정하는 일이 주 업무였다. 부수적으로 상품 홍보물에 실릴 자료나 교사용 강의안을 만들었다.
독서논술지도에 필요한 교과 지식만 본다면, 언제라도 시작하면 될 것 같다. 하지만, 업무 성격은 분명히 다르다. 내가 했던 일들은 책상에 앉아하는 것들이었다. 대외적으로 누굴 만날 일이 드물다. 영업을 하지 않는다. 독서토론 교사는 다르다. 회원 0에서 시작하여 적극적으로 홍보하여 씨알 회원을 얻고 입소문 타고 회원이 하나, 둘 늘어나야 소득이 생긴다. 어떻게 홍보할 것인가? 과장이나 허풍을 경계하며, 아주 제한적으로 타인과 교류하는 내가 전단지를 돌리며 밝은 미소로 수업을 권할 수 있을까? 아이들 수업은? 산만하게 움직이며 엉뚱한 말로 수업 시간을 채우려는 저학년을 만나면 매우 곤혹스러울 거 같다. 초등 고학년이나 중학생 정도 대화가 통하는 아이들을 가르치면 좋으련만, 찬 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다. 독서토론논술 지도를 시작하고 몇 개월이 지나도록 회원이 하나도 안 생길 수 있다. 회원 하나, 하나 소중히 대해야 한다. 평소 "할 말은 하고 산다! 빠핫!"라고 하면서 안경을 추켜올리고 입바른 소리를 해대던 내가 과연 학생과 학부모의 비위를 잘 맞출 수 있을지 걱정이다.
현재 유지하는 독서토론 모임이 1년이 지났고, 다른 독서 모임을 더하면 2년 넘게 독서토론을 해왔으니 독서토론이 부담스럽진 않다. 단, 성인들 간에 유지되던 집중하고 토론하는 분위기는 초등 아이들의 독서토론 수업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산만함이 벽을 뚫을 것 같은 초등 아이들을 조절하는 것이 보통의 인내심과 제어력으로는 힘들 것 같다.
저학년일 때는 아이들 협조가 안 되어서, 고학년이 되어서는 코비드 19 때문에 온라인 수업 전환으로 애들 돌봄이 필요해서 적극적으로 알아보지 않았다. 그러다 이제는 아이들이 내가 없어도 밥을 차려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엄마가 독서토론 교사를 해도 되겠냐고 아이들 생각을 넌지시 떠 봤다. 엄마가 뭘 하든 괜찮단다. 다만, 부끄러우니 학교 앞에서 홍보하는 일만은 참아달란다. 나도 그건 도저히 못하겠다. 아파트 게시판에 올리는 정도의 수줍은 홍보에 그칠 테다. 그래서 그동안 독서논술 교사 지원을 주저했다. 시작해도 제대로 정착을 못할 것 같아서다. 그러나 자식 앞에 무너진다. 자식이 학원에 다닌다는데, 이제 자기들이 점심을 차려 먹을 수 있다는데 무얼 더 망설이랴. 애들 수학 학원비라도 벌어 볼 요량으로 오늘 독서논술 업체 지점에 갔다. 상담 후 지도교사 수습을 마쳤다. 이주 목, 금에는 입문 교육이 있다. 쇠뿔도 단 김에 빼랬다고 3월 신학기 맞이 회원 유입이 있을 때 지도 교사가 되는 것이 유리할 듯하여 입문 교육까지 일사천리로 받으려 한다.
회원이 하나면 어떻고 둘이면 어떠랴. 아예 0이어도 그런들 어떠랴. 시작을 안 하면 애초에 0인 것을. 오가며 품 팔며 시간과 공을 들이는 것이 아까울 수도 있다만, 그러면 글쓰기 소재 하나 생겼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련다. 내 30대를 보면 경단녀 취업 도전기라도 한 편 써야겠지만, 이미 지난 에세이에서 어느 정도 다루었으므로 묻어두련다. 새로 시작할 일에 굳이 초치는 걱정을 하고 싶진 않다. 마흔 넘으니까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가 입에 돈다. 수년 전 역술인이 간판 걸면 망한다고 하여 창업은 금기처럼 여겼지만, 돈 들여 창업하는 것은 아니니 망할 것이 없다. 한번 해 보자. 내일 아침에 나는 거울을 보며 자본주의 미소 짓는 법을 연습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