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신변잡기

호들갑

-유난스러워도 어쩔 수 없다.

by 백수아줌마

쌍둥이를 임신하고 모유 수유하겠다며 분만을 고집했다. 다니던 산부인과에서 분만이 어렵다고 하여 출산을 두 달 앞두고 서울대 병원으로 옮겼다. 쌍둥이 출산의 전설인 전종관 교수에게 갔다.(-사춘기 자녀를 키우는 지금도 이름이 잊히질 않는다. 무사히 출산하도록 도와줘서 고맙다.) 38주 차에 두 아이를 무통 주사 없이 낳았다. 이후 두 아이를 키우고 보니 단언컨대, 출산이 육아보다 훨씬 더 쉬웠다. 옆에서 도와주는 의사, 간호사가 있으니 불안하지 않았다. 대학병원이니 무슨 일이 있어도 응급조치가 될 테니 나는 의료진을 믿고, 또 내 아이들의 강함을 믿고 힘만 주면 되었다. 눈에 핏발이 서든, 모세혈관이 다 터져 나가든, 나는 이를 악 물고 힘만 주면 되었다. 첫째가 쑥 밀고 나오고 둘째는 5분 뒤 '슝' 미끄러져 나왔다. 출산 후 온몸의 기력이 다 빠졌다.


퇴원 후 산후 조리원에 있을 때 서울대 병원에서 받은 출생 후 검사에서 두 아이 호르몬 수치가 비정상으로 나왔다. 아이를 안고 서울대 병원으로 가서 검사를 받았다. 둘째는 두 번째 검사에서 정상 수치가 나왔다. 첫째는 한 번 더 받아야 했다. 세 번째 검사에서 비로소 정상 수치가 나왔다. 안도했다. 훗날, 돌아보니 이때가 시작이었다. 아이들 건강에 대한 나의 과민반응이 지금까지 이어온다.


아이등 돌 지나서 첫째 얼굴에 난 혹 제거 수술을 했다. 조직 검사 결과 악성 종양은 아니었다. 혹만 제거하는 것으로 치료가 끝났다.


그 뒤로 두 아이는 수시로 잔병치레를 하며 자랐다. 알레르기 체질로 인한 자잘한 질병과 각종 감염병. 아이 키우는 부모 모두 겪는 일이라 무덤덤히 받아들일 만도 한데 나는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을 때마다 병원 진료를 꼭 받았다. 두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오르락내리락 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아이들이 4~5살이 되었을 무렵, 둘째 코골이 및 코막힘 등의 증상으로 병원에서 아데노이드 절제술을 받았다. 둘째가 밤에 자다가 숨을 안 쉬는 때가 종종 있어 자다가 늘 코에 손을 대어 보곤 했다. 그 덕에 잠을 편히 자지 못했다. 수술을 받고 코골이는 나아졌으나, 비염으로 인한 코막힘은 어쩔 수 없었다.

코를 해결하고 나니 이번엔 둘째 치아가 말썽이다. 유치가 유착되어 잇몸 밖으로 나오질 못한다. 내버려 두면 영구치마저 자리를 잃게 된다고 해서 치대 병원 구강 안악과에서 7살에 수술을 받았다. 치아 두 개를 발치하는 바람에 씹는 것이 어려웠지만, 워낙 먹성 좋은 둘째는 뭐든 가리지 않고 잘 먹었다. 공간 유지장치를 줄곧 하다가 이번 겨울 드디어 뺐다. 중간에 치아 교정도 했다. 밖으로 나온 영구치를 보며 아이에게 내 딸 대견하다고 칭찬했다.


둘째는 코와 치아 수술을 했다. 그런데 아이가 10살이 되자 이번엔 눈에 외사시가 보였다. 혹여 시력이 안 좋아질까 걱정했다. 세브란스와 서울대 병원 교수에게 교차 검증을 받았다. 서울대 병원은 예약이 어려워서 시기를 달리하여 집요하게 예약을 시도했다. 아이 눈은 외사시가 있지만 수술은 안 해도 되는 상태였다. 집에서 접근성이 좋은 은평 성모 병원으로 지금까지 다니고 있다. 그곳 소아안과 전문의는 수술을 권했지만, 아이도 나도 부작용을 걱정하여 수술은 받지 않고 정기 검진만 받는다.


굵직하게는 첫째 1건, 둘째 3건. 내가 대학 병원을 다닌 사연이다. 그 사이 자잘하게 첫째는 팔이 빠지거나, 뇌진탕이 생겨 구토를 했다거나, 넘어지며 치아를 부딪혀 잇몸에 피멍이 들었다거나, 다래끼 시술을 받는 등의 일들이 있었다. 알레르기 질환이 유독 심한 둘째는 한 때 각막이 부어서 응급실에서 날을 샌 적도 있다. 지나고 보니, 이런 건 그저 한 때의 사건에 불과하다. 1시간 거리 안에 대학 병원이 2군데, 그 외 종합 병원이 곳곳에 있는 것은 분명 서울에 사는 이점이다. 덕분에 나는 과도한 불안과 걱정을 제 때 해소했고, 아이들 치료 시기를 놓치는 일은 없었다.


아이들이 청소년기가 되어 키가 크고 팔다리가 제법 실해져서 걱정을 놓고 있었다. 발육이 늦은 첫째만 무사히 2차 성징이 진행되면 몇 년 지나지 않아 어른으로 성장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다 어제 별일 아닐 거라 생각하며 확인 차 들렀던 피부과에서 예상 밖의 말을 들었다. 다리에 난 붉은 점이 생겼다 없어지길 반복하거나 사라지지 않으면 큰 병원에 가서 피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말에 귓가에 종이 울렸다. 아이들 건강에 대한 경각심을 놓고 지냈다. '아뿔싸! 긴장을 너무 놓았구나!' 집에 돌아와서 두 아이 몸을 확인하고 인터넷 검색을 했다. 속으로 별 거 아닐 거야 하면서도, 손은 마우스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예상되는 최악의 상황은 무엇인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등 찾아봤다.


아침에 애들 학교 보내고 나서 오전 내내 동네 소아과 예약, 근처 류머티즘 내과 문의, 어제 다녀온 피부과 문의, 세브란스 예약 등을 하느라 전화기를 붙잡고 지냈다. 소아과 진료가 2시에 예약되어, 아이들 담임교사 두 분께 문자로 평소보다 이른 하교를 부탁했다. 두 아이를 진료한 소아과 의사는 이런 점성 출혈은 수개월이 지났다 하더라도 심각한 증상으로 보이진 않으니 시일을 두고 지켜보자고 했다. 간 김에 가래가 심한 둘째 약을 처방받고, 알레르기 면역 주사도 맞았다. 매주 병원 방문 시마다 발등과 다리에 붉은 점을 보고 이상이 있으면 그때 대학 병원에 진료 의뢰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진료하고 나서 어깨에 차곡히 쌓였던 불안과 걱정을 툭툭 털었다. 아홉 개의 문단으로 어젯밤부터 오늘 아침까지 호들갑을 떨었던 것을 변명했다. 이 글을 쓴 이유다.


아이 키우며 가장 무서운 입이 첫째로 의사 입이고 둘째로 교사 입이다. 아이가 어디 심각히 아픈 건 아닌지, 학교에서 친구들과 잘 지내는지. 의사의 입이 열리는 그 순간, 교사의 입이 열리는 그 순간, 긴장으로 손에 땀이 흐른다. 침을 꿀꺽 삼키고 기다리는 수 분의 시간. 아, 오늘은 다행이었다. 어젯밤 바라던 대로 앞으로도 별일 아니기를 바란다. 이 일은 불안한 어미의 호들갑으로 한 때의 사건으로 기억될 것이다.


웬 유난이냐 싶다가도 버리지 못하는 게 자식 걱정인가 보다. 친정 엄마가 보낸 택배에 먹을 것이 들었다. 설 쇠며 잘 먹고 왔는데, 무얼 또 바리바리 싸서 보냈다. 마흔 넘은 자식은 넙죽 받아먹는다. 내 딸도 그러겠지. 괜찮다. 아프지만 마라. 이제 내 입에 음식 좀 넣어야겠다. 하루 종일 빵 몇 조각 먹은 게 전부다. 배 고픈 줄 몰랐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기도하는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