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신변잡기

기도하는 밤

-별일 아니기를...

by 백수아줌마

둘째 아이 학원을 마치고 늦은 저녁 피부과에 갔다. 발과 다리에 붉고 작은 점들을 발견하고 피부 질환인가 싶어 진료를 받았다. 2주 전에 받기 시작한 알레르기 면역 치료로 인한 증상인가 의심이 들었는데 의사의 진단은 예상과 달랐다. 혈관염일 수 있단다. 구체적으로 혈관염이라고 진단한 것은 아니다. 혈관염이라는 말은 집에 와서 검색해 본 뒤에 의사의 진술에 일치하는 병명을 찾은 것이다. 의사는 붉은 점은 혈관이 터져서 일시적으로 생길 수 있는데 이 경우 수 주만에 사라진다고 했다. 아이에게 붉은 점이 생긴 시점을 물으니 언젠지 모르겠는데 전부터 있었다고 대답했다. 의사는 이 점들이 사라졌다 생기길 반복하면 큰 병원에 가서 피검사를 받아 볼 것을 조언했다. 예상 질환의 병명과 진료과를 알려 줬다면 좀 더 친절한 설명이었을 터이다. 설명을 듣는 환자나 보호자의 수준에 맞춰 설명한다는 것이 도리어 혼란을 주었다. 이때만 해도 금방 없어질 거라 보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집으로 왔다.


거실에 앉아 불을 환하게 밝히고 아이 발과 다리를 살폈다. 아이에게 붉은 점을 발견한 시점이 언제였는지 다시 물으니까, 태권도를 시작했을 때 자리에 앉아 있다가 발목에 드러난 점을 봤다고 대답했다. 태권도를 시작한 지 3개월이 지났다. 스마트폰으로 붉은 점을 검색하고 과민성 혈관염쯤으로 생각했다가 발견 시점을 듣고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노트북을 켜고 폭풍 검색을 시작했다. 늦은 시간이어서 일단은 세브란스 간편 예약란에 전화번호만 남겼다. 혈관염 관련 명의에게 진료받고 싶은데 인터넷 예약이 안 된다. 전화 상담만 가능하다. 가까운 은평 성모 병원엔 류마티스 내과는 있되 혈관염 센터가 없다. 진료 의사도 두 명뿐이다. 세브란스가 낫겠다 싶다. 최근 딸아이가 식욕이 떨어지고 체중이 감소하고 피로했던 것이 떠올랐다. 자가면역질환으로 인한 혈관염이 아닐까 의심한다.


면역 조절 기능에 이상이 생기면서 ANCA라는 항체가 면역 세포인 호중구를 활성화해 혈관 벽을 공격하게 함으로써 염증을 유발하는 질환이다. ANCA 연관 혈관염에는 현미경다발혈관염, 베게너육아종증으로 알려진 육아종증다발혈관염, 척스트라우스증후군으로 불리는 호산구육아종증다발혈관염 등 세 가지 질환이 있다. <연합뉴스 2017. 5.31>


작은 혈관에 발병할수록 발견이 어려워 치료 시기를 놓치기 십상이란다. 치료 방법은 부신피질호르몬(스테로이드)과 면역억제제 또는 리툭시맙을 투여한단다. 희귀 난치성 질환. 뇌를 거품기로 휘저어 놓기라도 한 듯이 머리가 어지럽다. 질병 관련 정보가 될 만한 것들을 폰에 모아놓았다. 아이에게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할 수 있다고 얘기를 해 두었다.


자매의 질환이 별일 아닐 거라고 첫째가 와서 위로한다. 그 아이가 그런 건 누구에게나 있는 것 아니냐고 한다. 설마 하며 진료를 받지 않은 딸의 다리를 살폈다. 이 아이 발등과 종아리에도 붉은 점이 있다. 모골이 송연하다. 첫째 너마저? 딸아인 태연하다. "희귀 질환이 둘 다에게 생길 리 없잖아. 별 거 아닐 거야."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과민성 혈관염은 보통 수 주만에 없어진다지만 사람마다 다를 수도 있지 않겠냐고 일부러 좋은 쪽으로 생각해 본다. 불안을 떨치려는 책략이다.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거 있겠는가 싶어 내일 병원 예약을 메모판에 크게 써 두었다.

검색하느라 쌓아둔 설거지를 마치고 아이들 잠자리를 살폈다. 자리에 누운 아이들 머리를 쓰다듬으며 속으로 기도한다. 별일 없을 거라고. 혹, 별일이 있으려면 차라리 내게 생기라고. 등가 교환의 법칙이 있다면 내 건강 떼어가라고 대신 내 알맹이들은 건들지 말라고.


불안해서 잠을 이룰 수 없어 몇 자 적다가 늦은 밤이 되었다.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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