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식이 좀 있어야 촌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몰랐던 것을 이미 아는 듯이 슬쩍 곁눈질만 하고 지나쳐야 한다. 고개를 들고 세련된 태도로 당당하게 앞을 보고 걸어야 한다. 그러나 여기 이 사람은 신기한 것을 보면 목을 죽 빼어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놀라운 것엔 검지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작은 눈을 부릅뜬다. 그래, 나다. 등에 커다란 배낭을 메고 뒤따르는 딸들을 돌아봤다. 타국에서 행여 아이들을 잃을까 봐 신경이 쓰인다. 10시간 넘은 비행으로 지친 아이들의 얼굴엔 긴장이 서려 있다. "얘들아, 기죽지 마. 너네는 여기 쌘프란씨스코보다 훨씬 큰 서울에서 나고 자랐으니까 긴장할 거 없어. 어깨 딱 펴!" "피이, 우린 긴장 안 하는데, 엄마나 그러지."
인천 공항보다 작은 규모, 단조로운 동선 덕에 길치지만 용케 입국 심사소를 찾아 줄을 섰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왠지 아시안 심사원이 더 친절할 것 같은 마음에 줄을 서며 순번을 탄다. 아시안 심사원과 눈이 마주치자 밝게 웃는다. "위 아 패밀리." 아이들을 가리키며, "마이 칠드런. 위 윌 컴 투게더." 그가 웃는다. "오케이." 그가 뭐라 말한다. "익스큐즈미?" 그가 분명하고 또렷한 소리로 가능한 천천히 질문한다. 짧고 부러지는 영어로 대답한다. 대화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그: 무슨 비자야?
나: E2비자야.
그: 여긴 왜 왔어?
나: 남편이 샌프란시스코로 발령받았어. 남편 이미 와 있고, 애들이랑 나는 초등학교 졸업한 뒤에 이제 온 거야.
그: 얼마나 머물 거야?
나: 4년 정도
그: 얼마 가져왔어?
나: 1500$
그: 지문과 얼굴 확인할게. 안경과 마스크 벗어줘.
나: 응.
그가 애들 얼굴을 확인한다. 그가 이름을 묻자 아이들 얼굴이 굳었다. 성은 빼고 이름만 짧게 대답한다. 한국 출국 심사에서 둘이 다퉜던 것이 떠오른다. 입국 심사 전 여기서 다투면 쫓겨난다고 엄포를 놓은 효과가 있다. 심사는 가볍고 짧았다. 고맙다는 말과 환영의 인사를 주고받으며 심사가 끝났다. 혹여 세컨더리룸으로 끌려가 취조당할까 싶어서 준비했던 입국 심사용 서류첩은 꺼낼 필요 없었다.
입국 심사를 마치고 수화물 찾는 곳으로 갔다. 비행기 두 대, 그마저도 헷갈리지 말라고 아시아나에서 입간판을 세워놨다. 6호 단프라 박스 2개, 큰 캐리어 2개, 기내용 작은 캐리어 2개, 이민가방 1개, 각자 등에 가방 하나씩 매고 카트를 2개 빌렸다. 나는 기내에 실었던 접이식 카트를 꺼내어 짐을 싣고, 아이들에겐 각각 카트에 짐을 실어 주었다. (샌프란공항 카트는 수화물 찾는 곳에 있고 카드, 현금(달러) 모두 사용 가능하다. 모 카페에서 카드만 된다는 정보를 읽고 혹시 내 카드가 에러가 생길까 봐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카드 읽는 것보다 현금이 더 빠르다. 1개당 8$이니까 빌릴 개수만큼 현금을 준비하면 좀 더 빠르게 이용할 수 있다.) 수화물 검사는 제비 뽑기처럼 무작위로 지목하는데 아이들과 나는 검사 없이 통과했다. 영문명과 한글명으로 적어두었던 음식 목록은 입국 심사 서류첩에서 꺼낼 필요 없었다. 미국 처음 오는 거 티 내느라 처방약엔 처방전을 준비하고, 상비약에도 모두 영문명을 써서 붙였다. 입국 심사와 수화물 검사에 대비하여 준비를 꼼꼼히 했다. 우려와는 달리 모든 심사가 순조롭게 끝났다.
입국 서류첩
공항 카트 대여기
딸1의 초상권 보호
딸2의 초상권 보호
밖으로 나오니 남편이 목에 보호대를 두르고 퉁퉁 부은 얼굴이 되어선 손을 흔든다.
"고생이 많았구나. 김장 김치 한 통 싸왔어. 쌀밥에 김치랑 밥 먹자."
짐을 싣고 샌프란공항 근처 마을, 앞으로 내가 거주할 곳으로 이동했다.
"여가 베이 애어리어여."
충청도에서 나고 자랐고, 성년이 되어선 서울에서 죽 살아서 서울러라 자부했던 나는 이제부터는 샌프란댁이다. 실은 그 아래 공항 근처 작은 동네이지만, 밀브레라는 지명은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 샌프란댁이라 하면 어딘지 가늠할 수 있으니까 샌프란댁을 닉네임으로 쓰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