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의 블랙홀, 싱글 하우스

저 많은 물품은 다 어디에 보관하나?

by 백수아줌마

달리기, 한 문단 쓰기... 꾸준히 해야 하는데 한동안 게을렀다. 자기 전 무얼 쓸까 고민하며 카메라 앨범을 열어보았다. 동네를 돌며 크리스마스 전등으로 꾸민 집을 찍은 사진이 몇 장 있다. 핼러윈을 맞으며 정원을 기괴한 분위기로 장식했던 사람들은 추수감사절을 기점으로 일제히 크리스마스 전구로 정원을 밝힌다. 이 집 저 집 경쟁하듯이 줄전구를 설치하고 캔디캐인 장식이나 눈사람, 산타클로스 풍선 등을 정원에 내어놓는다.


우리 집은 현관문에 리스를 걸어두었다. 화려하게 밖을 장식하지 않고 저렴한 비용으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냈다. 거실엔 이케아에서 사 온 트리에 장식을 걸었다. 박스엔 210cm 높이라고 쓰여있지만 설치하고 보니 그다지 높아 보이진 않았다. 거실의 높은 층고가 트리의 크기를 실제보다 더 작게 보이게 했을 수 있다. 아마 서울의 작은 아파트에 남편이 이 트리를 설치하려 했다면, "트리가 떡하니 버티고 서서 사람 다닐 자리가 없네. 트리에 별이라도 달았다간 천장 뚫겠어."라고 투덜거렸을 터였다.

서울에 있을 때 트리용품은 12월 빼고는 창고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용품으로 11개월 동안 눈엣가시였다. 인터넷에서 저렴하게 산 트리를 이사 중에 이웃에게 나누고 벽트리로 대신한 적도 있다. 미국에서 지내면서부터 수납공간을 걱정하여 물건을 살까 말까 고민하는 일이 없었다. 대부분의 싱글하우스에 차고가 있으니 실내 공간이 부족하면 차고에 물건을 쌓아두면 되었다. 나와 아이들이 미국에 입국한 때는 12월 24일. 남편이 미국에 먼저 와서 렌트한 집 거실엔 아마존에서 구입한 트리가 있었다. 싼값에 산 것은 아니라고 했지만, 트리 잎이 떨어지는 것이 지저분했고, 함께 구입한 오너먼트는 조잡해 보였다. 그다음 해에는 리본을 묶어서 트리를 꾸몄다. 휴스턴으로 이사하면서 짐을 줄이려던 차 트리는 버리고 리스만 챙겼다.


월세 높기로 소문난 베이 지역에 살다 휴스턴 지역으로 이사 오니, 더 적은 월세로 집은 훨씬 넓어졌다. 처음 살아보는 2층집. 방 하나는 남았고, 수납장 하나도 텅 비었다. 차 두 대가 여유 있게 들어갈 차고엔 차 한 대만 주차되었다. 안방에 딸린 옷방은 25평 아파트의 방 하나 크기였다. 물건을 버리지 않아도 정리가 깔끔히 되었다. 옷을 꺼내 옷걸이에 척척 걸어두기만 하면 되었다. 밀브레에서 살던 집에서는 여행용 가방을 복도 옷장 아래 조각 맞추기 하듯이 빈자리를 찾아 끼워 넣었는데 케이티 집에서는 여행용 가방도 옷방 한쪽에 밀어두면 그만이었다.


이케아에서 산 트리는 뒷마당으로 나가는 문 옆에 세워졌다. 호사로운 소비, 우리 딴엔 아마존에서 샀던 트리보단 이케아 트리에 좀 더 돈을 쓴 셈인데 정작 설치하고 보니 왠지 아쉬운 감이 든다. 지인 집에 초대받았을 때 본 트리의 규모나 오너먼트의 품질을 비교해 보면 우리 집 트리는 그들 집 트리에 한참 못 미친다. 내가 그들의 트리에 단 오너먼트에 감탄하자, 지인 한 분은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크리스마스 용품을 파는 마켓이 서는데 그곳에서 온갖 장신구를 구입할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다른 지인은 크리스마스 장식 전문 온라인 쇼핑몰을 알려주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지나면 큰 폭으로 할인을 하니 이때 구입하면 좋은 값에 장신구를 사들일 수 있다. 그때를 노려보라고 했다. 창고 대 할인, 언뜻 돈을 아끼는 것 같지만 비싼 값이든, 아니든 결국엔 소비 행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오너먼트를 수집한다.


미감을 채우며 수집 욕구를 만족시키는 소비, 주머니 사정이 되어야겠고, 보관할 장소가 있어야 가능할 터이다. 미국 싱글하우스엔 공간이 많다. 우리 집만 봐도, 1층엔 거실, 응접실, 마스터 룸, 마스터룸 안쪽 넓은 옷방, 주방이 있다. 2층엔 방이 3개고 각 방엔 수납공간이 있다. 2층 플레이룸이 있고, 화장실 옆에는 별도의 수납공간이 하나 더 있다.


지금 집으로 이사하면서 전에 없던 공간이 생겼다. 현관 옆 응접실과 2층의 플레이룸이다. 응접실은 크기가 거실만하다. 서랍장, 책상, 철봉을 두었는데 가운데가 휑하다. 검정 손잡이에 노랑 가로획으로 구성된 철봉과 밤색 책상이 주변과 조화롭지 못해 눈에 거슬렸다. 현관을 열었을 때 처음 보는 공간인데 소파가 있으면 보기 좋겠다 싶었다. 소파 살 여윳돈이 없고, 꼭 필요한 소비가 아니며, 한국으로 갈 때는 짐을 다 가져가지 못할 터라 욕심내지 않았다. 2층의 플레이룸엔 애들 방에 두었던 책장 두 개를 벽 쪽에 붙여 놓았다. 그러자 남은 공간이 허전했다. 아이들 쓰라고 빈백이라도 사주고 싶었지만, 이 역시 여윳돈이 없어서 구매하지 않았다. 가구가 채워지지 않아서 잘 쓰지 않는 건지, 주로 방에서만 지내서 사용하지 않는 건지 애들이 2층 플레이룸에 있는 시간은 하루 중 10분도 되지 않았다. 위시리스트에 담아뒀던 물품은 무용해졌고, 돈을 쓰지 않아도 되었다.


빈 공간은 무엇인가를 채우라고 나를 유혹한다. 아마존 프라임은 내 예산에 이 정도 물건을 살 수 있다고 보여준다. 클릭만 하면 소파든 협탁이든 집 앞으로 배송해 준다. 마트에서 과자 박스나 생수팩을 사며 둘 곳을 고민하지 않는다. 물건을 쌓아둘 곳은 집 곳곳에 있다. 그런데 이 넓은 공간은 여름엔 냉기로, 겨울엔 온기로 채워야 한다. 냉, 난방비가 많이 든다. 공간이 넓어 여유로운 장점 뒤에 유지 비용이 크다는 단점이 있다. 끊임없는 소비의 유혹에, 유지 관리비의 부담. 2층의 넓은 집은 내겐 분에 넘치는 것 같다. 이 동네 아주 평범한 집 중에 하나임에도 말이다.


가끔 궁금하다, 다른 집은 얼마나 많이 갖추고 사는지. 친구 집에 몇 번 가본 아이들 말에 따르면 우리 집보다 짐이 적어 보이는 집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공간의 여유 덕에 누리는 꽉 찬 소비. 여유로운 공간이 여백의 미를 감상하거나 명상의 기운을 돋는다면 좋으련만 유틸리티 비용의 증가, 가구나 기타 물품 소비의 증가를 일으킬 뿐이다. 넓은 공간은 어찌 보면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욕구의 크기를 보여주는 것 같다. 욕구에 천착한 집, 필요보다 넓은 집인 듯싶다. 미국에 와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땅이 참 크다는 것이었다. 가도 가도 너른 땅이 펼쳐진 이곳. 마냥 부러웠다. 넓은 땅엔 앞뒤로 정원을 갖춘 단독 주택이 많고, 한 집당 차는 어른 수만큼 있었다. 빈부의 격차가 심하다 해도, 내 눈엔 역시 세계 최강의 부국이었다.


크리스마스 장식을 보며, 나는 핼러윈 장식은 어디 두며, 크리스마스 장식은 또 어떻게 보관하나를 생각했다. 집의 여유 공간을 우선 생각했고, 대형 쓰레기통에 가득 찬 것들을 떠올렸다. 사고 버리고의 반복. 달러를 흔들며 세계의 자원을 빨아들이는 이곳, 자본주의의 성지. 나는 지금 미국에 살고 있음을 체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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