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

환대와 감사의 날.

by 백수아줌마

"Happy Thanksgiving!"


미국에서 맞는 세 번째 추수감사절이지만, 추수감사절을 명절로 경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동안 우리 가족에겐 휴일 외에 다른 의미가 없었다. 어느 칠면조가 사면을 받든 말든 알 바 아니었다. 미국 현지인과 교류하지 않으니 아무 관심이 없었다. 우리가 만나는 한국 가정은 대부분 추수감사절을 기념하지 않았다. 이민 온지 오래 된, 남편 친구네 가족은 가게 운영으로 바삐 지내는 것 같았고, 우리와 같은 시기에 미국으로 건너온, 남편 직장 동료들은 우리와 사정이 비슷했다. 내가 알고 지내는 이들도 대부분 추수감사절 대신 추석에 가족에게 연락하며 명절 기분을 냈다.


휴스턴으로 오면서 한인 교회를 찾아갔다. 교회에서 만난 분이 추수감사절 전 주에 집에 초대했다. 바로 다음날에는 한국에 다녀오신다며 그전에 미리 추수감사절을 기념하자며 불러주신 것이었다. 추수감사절 디저트로 파이를 먹는다고 해서 Whole food에서 베리 파이와 피칸 파이를 사 갔다. 칠면조 구이, 햄, 크렌베리 잼, 디너롤, 그 밖에 사이드 메뉴. 전 주에 ESL class에서 배운 추수감사절 요리 목록에서 봤던 것들이 식탁에 차려졌다. 미국 현지 식당에서 먹는 요리보다 입맛에 더 맞았다. 너무 달거나 짜지 않게 간을 조절하는 솜씨가 탁월했다. 양식 먹으면서 김치 생각나지 않았다. 잡냄새 없는 칠면조 구이에 곁들인 소스는 감칠맛 났다. 집주인 내외는 오래전 이민 오신 분들인데, 미국에서 나고 자란 자녀가 어린 시절 왜 우리 집은 추수감사절에 터키구이를 안 먹냐고 물으면서부터 추수감사절에 터키를 요리했단다. 이민 와서 살면서 결국엔 이곳 문화에 동화된 셈이다.


미국에 오래 와서 정착한 가정과 온 지 얼마 안 된 가정이 모두 한인 교회 안에서 서로 교류하고 도움을 주고받는다. 먼저 와서 정착하신 분들이 지역의 특색을 알려주고 그들이 먼저 체화한 문화의 장에 고국에서 온 이들을 초대한다. 고국에서 온 이들은 먼저 온 이들이 미디어를 통해 느낄 수 없었던 고국의 변화 양상, 풍토 등을 전달한다. 타국에 와서 살지만 한국말로 서로의 경험과 감상을 공유한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교회를 다니지 않았기에 우리 가족만의 경험 세계에 갇혀있었던 반면, 이곳 휴스턴에서는 교회를 다니며 비로소 미국 문화를 체험했다.


휴스턴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지 않으면 한없이 지루한 곳이다. 샌프란시스코처럼 명소가 많은 것이 아니고 풍경이 다채롭지 못하다. 덥고 습하며, 늘 푸르고 한없이 넓다. 긴 여름의 극악한 날씨 덕에 야외 활동이 제한되니 실내 활동을 찾게 된다. 그래서 건물을 유심히 살피면 어딜 가든 교회가 있다. 바이블 벨트(Bible Belt)는 미국 중남부에서 동남부 주에 걸쳐 있는 지역으로, 개신교의 영향이 큰 곳이다. 텍사스도 여기에 해당한다. 남부 지역의 보수성이 현대에 이르러서도 교회를 강건히 버티게 했을 것이다. 텍사스에서도 휴스턴은 10월에 이르도록 가실 줄 모르는, 무더위 덕에 교회가 융성한 것 같다.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영국 청교도들이 종교 박해를 피해 미국에 도착한 첫 해에 가을 추수를 성공적으로 거두고 원주민인 와파노아그족의 도움에 감사하며 음식을 함께 나눠 먹은 행사에서 유래했다. ESL 강사는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 중 어느 것이 더 미국인들에게 중요한 행사이냐는 수강생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미국은 이민자의 국가이며 각자 다른 문화적 정체성, 종교적 배경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근래에 크리스마스보다 더 미국적이며 중요한 명절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원주민과 이민자가 융화되고, 배척이 아닌 환대, 원망이 아닌 감사에 근간한 명절, 그것이 '추수감사절'인 듯싶다.


미국에 거주하니 미국 문화를 체험해 보자고 늘 입에 달고 사는 남편은 교회에 대해선 늘 부정적 태도였다. 반면 나는 불자이지만, 미국에 왔으면 가장 미국적인 문화인 개신교를 체험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의견이었다. 아이들은 또래 한국계 십 대 아이와 교류할 수 있고, 어른인 나는 부모로서 같은 고민을 공유하는 한국 학부모를 만날 수 있는 한인 교회에 늘 와 보고 싶었다. 샌프란시스코에 계속 있었다면 아마 미국 떠날 때까지 교회 문턱도 밟아보지 않았을 테지만, 휴스턴 지역에 와서야 비로소 그 문턱을 넘어봤다. 환대와 감사. 교회에서 경험한 소감을 축약하자면 이 두 단어다. 낯선 경험에 경계하던 마음의 빗장을 푼 것은 추수감사절이었다. 기꺼운 환대, 그것에 감사하는 마음. 나는 여기에 있다. 비록 신자는 아니지만 교회에 나간다. 아직은 교회가 어색하다. 그러나 내가 미처 모르던 것이 있으면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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