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언니, 11월 20일 글쓰기.
정○씨를 만났다. 이번이 세 번째 만남. 텍사스로 이사하고 애들 고교 입학 후 파올라의 소개로 한인 어머니 연락처를 받았고 그분으로부터 학교 한인 학부모 카톡방을 알게 되었다. 그 채팅방에 언제 차 한잔 하실 분 계시냐고 물었고 몇몇 분과 약속을 잡았다. 그 자리엔 나 외에 4명이 참여했다. 일회성 만남으로 끝날 것 같았으나, 아이가 학교에서 문제가 생기어 그 점을 문의하려고 정○씨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 일을 기점으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나보다 6살 많아서 언니라고 불렀다. 운전하지 않는 날 위해 언니가 집 앞으로 데리러 왔다. 만나자마자 언니는 얘기가 술술 나왔다, 나처럼. 알 것 같다. 다른 사람의 삶이 어땠을지 지금 어떠한지 속속들이 알 수 없다. 말하여진 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본능적인 감각이 있다. 외로움을 느껴 본 사람이 체감하는 그 인상. 뭔가 표식을 붙여 놓은 것도 아닌데 알아차린다.
결혼하면서 시작한 미국 생활. 언니는 어려서 영국학교에 다녔던 경험 덕에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카카오톡, 유튜브, 넷플릭스는 없던 시절. 한국과 통화는 전화 카드를 사서 써야 했고, 한국 콘텐츠는 비디오테이프를 빌려봐야 했다. 나를 에워싼 환경에 친근함과 익숙함은 없었을 것이다. 유학 중인 남편 뒷바라지하며 집에만 머무는 시간에 고독의 그늘이 슬금슬금 드리워졌을 것이다.
내가 처음 미국으로 왔을 때, 가족과 함께였고 한국 콘텐츠도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따금 아이 문제로 푸념하거나 남편과 다툰 날 하소연할 데가 없었다. 한국 시간에 맞춰 친지와 통화하는 게 유일한 위로였다. ESL을 오가며 알게 된 한국인이 있었지만 일상을 아늑하게 공유하지 못했다. 애써 연락하지 않으면 만날 수 없었다. 내 불안한 정서가 그 사람에게 불편했던 거 같다. 그럴 수 있다. 그녀의 정중한, 사려 깊은 거절 뒤 나는 혼자였다.
1년 6개월 시간이 흐르고, 아이들은 9학년이 되었다. 일본어 수업 시간에 한국에서 온 학생이 있대서 아이들에게 그 학생 어머니 연락처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희 언니. 그 언니와 만났을 때 알았다. '이 사람도 외롭고 불안했구나.' 속으로 쌓아뒀던 말들이 홍수처럼 쏟아졌다. 나도, 그 언니도 쉴 새 없이 말했다. 우리들의 걱정은 자녀들의 입시 문제가 컸다. 바뀐 환경, 고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로서 불안과 걱정을 공유했다. ○희 언니는 맏이를 대학에 보낸 선배 엄마였기에, 나는 그녀에게 이따금 양육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희 언니를 알던 즈음, 요가센터에서 다른 한국인들을 만났다. 다들 걸어서 오갈 수 있는 거리 내에 살았다. 그 뒤론 서로 연락해서 산책하거나 집에 초대하며 지냈다. 1년, 그들 덕에 타지 생활에 친근함과 즐거움을 느꼈다. 아쉽게도 남편의 부서가 텍사스로 배치되면서 이사해야 했다.
이곳에서 난 다시 혼자가 되었다. 혼자 산책하고 늘 집에 머물다 보니 갑갑했다. 8월의 휴스턴은 지독히 더웠고 차 없이는 어디도 갈 수 없었다. 사방은 온통 초록색 잔디, 도토리나무 아니면 소나무. 그 외 몇몇 나무. 꽃이나 과실수를 찾기 어려웠다. 사방이 초록이어 언뜻 보면 그저 평화롭지만 지속되는 단조로운 풍경이 내겐 마치 푸른 사막 같았다.
이사 오고 며칠 되지 않았을 때 남편과 차고에서 쓰레기를 버리는 중에 세 집 건너 이웃인 루터만 부부가 인사를 했다. 존과 파올라. 파올라는 라틴계였고 볼리비아가 고국이었다. 존은 미국 태생이었다. 나중에 듣기론, 멕시코, 아르헨티나에서 살다가 케이티에는 12년 전에 이사 왔단다. 처음 정착하며 파올라도 고난이 있었던가 보다. 같이 차를 마실 때 파올라는 낯선 곳에서 집에만 머무는 것은 슬픈 일이라고 했다. 나를 태워서 화원으로 가서 민트를 사게 했다. 그때 토마토 모종도 샀다. 파올라는 내가 식물을 가꾸면 바빠질 것이고 외로울 새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새로이 바뀐 환경으로 인해 아이들과 나는 미국 정착 초기 불안과 갈등을 다시 겪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몇 가지 어려움을 겪었고 나는 편안하지 못한 마음으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마음에 고독이 커졌다. 그즈음 정○ 언니는 시니어인 둘째의 대입 걱정으로 마음이 편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 생활 문의에 성의껏 답변해 주었다. 아들의 대학 합격 뒤로는 서로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이제 휴스턴 지역으로 온 지 4개월이 되어 간다. 그간 연락처를 물었을 때 거절 당한 적도 있고 왠지 경계하며 연락처를 알려주는 이도 있었다. 다들 외롭지 않은가? 아니면 굳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교류하는 사람이 많은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집에만 있으면 정말로 고립되는 것을 미국 처음 왔을 때 충분히 겪었다. 상대가 내민 손을 무시하고 가더라도 한번 인사를 건네 볼 일이다. 그중엔 따스히 손을 잡아주는 사람도 있다.
무더운 날씨, 너른 들판, 어디든 차로 이동해야 하는 이곳 휴스턴 지역. 사람을 알아가고 있고 매일을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