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게이터

그는 포식자다

by 백수아줌마

이웃인 파올라가 호수에 앨리게이터가 산다고 했다. 잘못 들은 건가 싶어 진짜냐고 너 사진 있으면 보여달라고 했다. 다음에 자기가 찍으면 보여주겠단다. 그 대화가 지난주 금요일. 그리고 어제 산책했나 보다. 오늘 아침, 앨리게이터 사진을 보내주었다. 어제 나도 호수 산책을 했는데 내가 왜가리 백로를 바라보던 바로 그 자리에서 악어 사진을 찍었던 모양이다. 냇물이 호수로 흘러드는 여울목, 그 근처 둔덕을 돌로 정비해 놓았는데 거기 바로 옆 풀숲에 악어가 있었다.


악어가 있단 얘길 듣고 '미국 공무원들 참 너무하네. 경고 문구 정도는 표시해 놔야 하는 거 아니냐.'라고 속으로 구시렁거렸다. 그런 한편 이놈의 악어를 어찌하면 내가 실물을 확인할 수 있을지 탐험심이 생겼다. 주말 저녁 악어 보러 가자며 딸과 함께 나와 악어는 보지 못하고 신선한 저녁 바람만 쐬었다. 3개월 동안 한 주에 두세 번은 호수에 산책하러 나오는데 왜 나는 호수에서 악어를 보지 못한 것은 물론 악어가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을까. 지나치며 흘깃 본 경고판에서 alligators는 읽지 않고 snakes만 주의 깊게 봤나 보다. 뇌에서 악어는 현실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고 무시해 버렸나 보다.


호수에서 파올라가 보내준 사진 속 장소로 가 보았다. 있다, 악어가! 어쩌면 악어의 형체 비슷한 것. 그것의 건너편에서 사진을 찍으니 악어의 모습이 선명하지 않았다. 근처로 가서 잔디로 덮인 둔덕 아래를 내려다봤으나 둔덕 바로 나래 납작이 엎드린 악어를 보기엔 내 위치가 너무 높았다. 건너편에서 확인했던 악어의 위치보다 수평으로 더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서 호숫가로 내려갔다. 악어가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혹시 물에 들어간 거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징'하는 동물적 예감. 정면의 호숫물을 보니 동그란 것 두 개가 있다. 핸드폰으로 확대해서 보려니까 물속으로 쏙 들어간다. 냅다 둔덕을 올라 인도로 도망쳤다. 풀숲에서 기척을 느끼고는 일단 물로 들어가서 발소리를 따라 헤엄쳐왔던 모양이다. 물속에서 눈만 내밀고 가까이 오길 기다렸던 걸까. 가까이서 악어의 형체는 확인할 수 없었다. 내가 봤던 둥그런 것이 거북의 머리였을 수도 있다. 거북 두 마리가 머리를 내밀고 있다가 동시에 쏙 들어간 걸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내가 찍은 검은 형체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처음엔 놀라서 달아났다가 내가 확실히 본 게 맞나 긴가민가했다. 호수 한 바퀴 돌고 다시 그 자리로 가서 사진을 찍었다. 아까와 같은 자리에 같은 형상. 악어인지 분별이 되진 않으나 형태가 좀 달라진 듯하다. 악어다.


악어를 본 것이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하나, 운이 나빴다고 해야 하나. 하마터면 악어의 먹이가 될 뻔했다. 절대 가까이 가지 말라는 이웃의 경고에 호숫가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관찰했는데 형체가 보이지 않아 의아해하며 호수 가장자리로 가까이 더 다가갔다면 어떤 상황이 펼쳐졌을지 모른다.


길고 긴 여름, 푸른 잔디, 파란 하늘. 새들. 지루할 정도로 조용하고 평화로운 풍경. 그 속에 악어가 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쇼츠에 절여진 뇌 되살리기 프로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