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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미남 Dec 29. 2022

『준비물은 사랑하는 마음』 감상평

  모든 단어에는 특유의 맛이 있다. 심지연 작가의 작품은 다채로운 맛이 난다. 점묘법으로 찍혀가는 형형색색의 단어들이 하나의 부제(副題)로 채색된다. 무해함.

  문학을 감상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정론이 없다. 나는 특정 작가의 작품을 읽을 때 ‘단어’에 주안점을 두는 편이다. 보통 문체에도 작가의 색이 짙게 배어 있지만, 나는 특정 단어에 의미를 부여하며 작가와 소통하는 걸 즐긴다. 심지연 작가의 작품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단어는 ‘무해’이다.
  작품 속에서 아무 사랑은 문을 벌컥 열어 무해한 척 굴다 돌아서기를 반복하기도 하고, 욕지도에서 만난 강아지의 친절함은 무해함으로 재해석된다. 돌아가신 할머니를 떠올리는 마음은 매년 더 무해해지고, 작가가 구매한 문구와 인쇄물은 무해하다는 핑계가 라벨처럼 따라붙는다. 가족 여행 중에 발견한 작가 어머니의 취향에는 무해함이 수수하게 묻어 있다.
  물론 단어 하나에 꽂혀서 작가의 세계 전체를 이해하고자 하는 태도는 오만하고 경솔할 수 있다. 눈을 가린 채 다리만 만져보고 코끼리를 다 알고 있다고 떠드는 꼴이다. 그러나 한 작품 안에서 다섯 번 이상 사용된 단어가 있다면, 그 단어는 적어도 작가에게 의미가 있고, 가치관 일부를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단지 ‘무해하다’라는 표현을 좋아하는 걸까? 적극적으로 유익한 사람이 되거나, 유해한 사람으로 평가받기보다는 무해하게 살아가고 싶은 걸까? 또는 작가의 글이 유익하지 않더라도 무해한 활자로 전해지기를 바라는 걸까? ‘무해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작품 속에서 돋보이는 맛있는 감각적 표현들이나 특정 주제에 대한 대범하고 참신한 해석, 고르고 골랐을 정제된 단어를 제쳐두고 왜 나는 ‘무해’라는 단어에 이토록 사로잡혔을까.

  ‘나는 무해한 사람일까?’

  거듭되는 생각은 마치 부메랑처럼 돌고 돌아 결국 나 자신으로 향한다. 나는 무해한 사람인가. 또는 유익한 사람인가. 누군가에게는 유해한 사람으로 남았을지도. 한 호흡에 읽은 이 작품이 밤이 되어서야 밤보다 더 무거운 질문을 나에게 던진다.

  ‘당신은 무해한 사람인가.’

  수많은 단어 중 이 단어에 초점을 맞추게 된 이유는 내 사상과 언행이, 그리고 ‘나’라는 존재가 과연 무해한지 아닌지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저울질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하고 싶은 말은 꼭 해야 하는 성격 탓에 나이와 지위, 성별을 가리지 않고 직설적으로 생각을 표현해왔다. ‘표출’이 더 적절한 단어일까. 날카로운 생각은 언어에 담겨 전달되는 순간 상대방을 찌르는 칼이 되기도 한다. 주로 나를 돋보이게 하고 지키는 무기로 사용되던 화술과 화법이, 누군가를 죽이는 흉기가 되는 순간이 있다.
  지나친 솔직함은 타인에게 불편함과 상처를 남긴다. 살면서 상처받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나 역시 수많은 관계로 상처를 받았고, 따라서 충분히 상처를 줄 권리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게 인간의 권리인 듯 착각했던 시절에는 스스로 멋있다고 생각하기까지 했다. 그 결과 누군가의 소중한 마음을 짓밟거나, 관계를 소홀히 여기거나, 타인을 감히 내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 믿거나, 돈독한 관계를 망치거나, 여러 의미에서 낭중지추 같은 사람으로 비추어지곤 했던 것 같다. 인간은 누구나 ‘상처받을 용기’는 필요하지만, ‘상처를 줄 권리’를 부여받지 않았다. 따라서 내가 타인에게 유익한 인간이 되지 못할 바에는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단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심지연 작가에게 ‘무해함’이 어떤 의미로 쓰였는지는 알 길이 없다. 감상평 끝에서 알게 된 사실은 그저 ‘내가 이 단어에 꽂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단어를 거울삼아 내가 걸어온 길을 스스로 돌아보게 되었고, 단지 무해함을 넘어 반드시 누군가에게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좋은 작품은, 어디를 펴든 독자에게 울림을 주는 문장을 페이지에 하나 이상 담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나에게 이 작품은 무해함을 넘어 유익하고, 또 유의미하다.

※ 참고문헌

심지연(2022), 『준비물은 사랑하는 마음』, 꿈공장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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