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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랭 Sep 25. 2021

[너라는개행복해]2. 비장과함께 사라지다

비장절제술이 가져온 변화

2021년 초에 썼던 메모장에서 '쿤이의 밥투정'이라는 제목으로 시작하는 일기를 발견했다.

'못 먹는 것은 없다'의 대명사 첸과 달리 쿤이는 고양이처럼 새로운 사료나 캔을 줘도 몇 번 먹고 나면 금세 입을 떼 버리는 습관이 있었다. 혹시 맛이 없어서일까 싶어 동결건조 식사나 화식으로도 바꿔주었지만 여러 가지 이유들로 번번이 실패를 했다(영양이 많아서인지 설사를 했다).


꾸준히 밥투정을 하던 쿤이는 올해 들어서 더 심하게 밥투정을 하기 시작했다.

타이밍을 놓치면 배가 아무리 고파도 입을 대지 않았는데 사료에 시저나 황태, 닭가슴살을 섞어줘도 먹지 않았다. 강아지 배에서도 이런 소리가 날 수 있다는 것에 놀라고 이렇게까지 배가 고프면서도 밥을 가리는 쿤이가 황당할 뿐이었다.


하지만 얼마 전 건강검진에서 비장에 종양으로 의심되는 것을 발견하고 더 늦기 전에 비장을 전체 드러내는

비장절제술을 받게 되었는데 그 이후 놀랍게도 쿤이의 밥투정이 사라졌다.


수술을 하고 약 1주일 동안 병원에서 입원을 하고 돌아온 쿤이는 무기력하고 힘이 없을 것이라는 내 예상과는 달리 마치 6살 우리 집에 왔을 때처럼 우다다닥 뛰어다니고 미친 듯이 사료를 흡입했다.


늘 먹어왔지만 잘 먹지 않았던 사료도, 이번에 바꿔준 심장 사료도 약을 먹인다고 줬던 습식 사료도 그릇 바닥을 싹싹 핥아 설거지를 했다. 그간 쿤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밥을 먹이고 간식 주는 척하면서 사료를 줬던 과거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순간이었다.


신난 쿤이의 우다다닥


회춘한 것 같다. 딱 그 말이 맞다.


쿤이는 이전에 보여주었던 무기력함, 졸림, 식욕부진이 싹 사라졌고 덕분에 내 걱정도 사라졌다.

비장을 떼어내기 전까지는 얼마나 두려웠던지 원래 수술받기로 예약해놓은 곳을 취소하고

병원을 2군데 더 돌아보고 신중의 신중을 거듭해서 내린 결정이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좋아졌다.


여전히 쿤이의 몸에는 알 수 없는 동그란 종기가 올라왔다 사라졌다를 반복하고 있지만 심장 관리만 꾸준히 잘해준다면 현재로서는 전혀 문제가 없는 것 같다. 그간 보여줬던 모습들이 정말 비장의 종양때문이었던걸까?


비장과 함께 쿤이에게 보였던 걱정스러운 부분들이 사라져서 나는 또 한 번 쿤이와의 좀 더 오랜 미래를 기대해보게 되었다.


쿤아, 부디 계속 건강하자.






+

쿤이, 비장절제술을 빨리 결정하게 된 계기


'에이 별 일 있겠어?'라고 다독이는 마음과는 반대로 쿤이 건강검진 결과를 들으러 가는 날에는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그래서 가야 하는 예정시간보다 2시간 정도 더 일찍 도착했다. 내가 일찍 온다고 해서 쿤이를 바로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진정이 되지 않을 것 같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서둘렀던 것이다. 결국 2시간을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며 대기실 소파에서 보냈다.


2시간을 기다려 담당 선생님을 만났다. 피검사에서 일부 수치가 일시적으로 높게 나온 부분이 있었지만

매우 정상적이고 뼈도, 치아도 모두 건강하다는 말에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역시나 예상대로 나이는 속일 수 없는 것일까. 심장도 신장도 이제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한 단계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열 살이 넘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그것보다도 더 충격적인 소식은 비장에 확실하지는 않지만 1cm 정도의 결절이 보인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질 위험이 있고 심장에 덜 무리를 주기 위해 가능하면 빨리 수술을 하라는 것이 병원 측의 소견이었다.


비장은 떼어내도 사는 데에 문제가 없기에 나중에 부분적으로 떼어내었다가 또 재발할 문제가 있으니 애초에 문제가 될 부분을 모두 떼어내는 것이 일반적인 수술방법이라고 하셨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원래 검진받았던 병원 외에 2곳을 더 가보고 소견을 들은 뒤 가장 믿음이 가는 병원에서 수술을 결정했다.


우려했던 것과는 다르게 쿤이는 무척 건강해졌다. 비장을 떼어내면 면역이 떨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특별한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 좋아졌다. 건강하게 버텨준 쿤이가 정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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