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할 수 있는 건 기다림 뿐이겠지만.
3년 전쯤인가. 생각해보니, 그때 처음으로 9년 만에 한 해 동안 수업을 안 했다. 지금과는 다르게 자발적 휴직이었기에 쉬는 동안 꽤 좋았다. 결혼으로 인한 이사가 아니었다면 없었을 기간 동안, 배우고 싶은 것들을 경험하며 나름의 충전을 했다.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수업을 하겠다는 의지가 있었기에, 다시 일을 시작할 때는 힘을 많이 빼고, 아이들과 즐기며 미술을 경험했다.
수업 결과물보다 아이들이 얼마나 웃고 눈이 똘망똘망 한지, 교실로 들어오는 발걸음이 어제보다는 가벼운지 관찰했다. 미술은 누구만큼 잘해야 되는 과목이 아닌, 언제라도 쉽게 접하며 자신의 에너지를 겁 없이 화지에 휘갈기는, 해소의 방편이 되길 바랬기 때문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꽃처럼 피어날 아이들의 창의력은 자연스럽게 성장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뽀작거리며 수줍게 비타민을 건네주던 노랑이, 사랑해요를 '사람 해요'로 써서 쪽지를 건네었던 주황이에게 바랬던 건, 미술이 주는 자유로움을 나와 같이 느끼는 거였다. 내가 그렇게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주입식으로만 가르치나 싶어서 외국의 교육사례를 찾아보고 최대한 접목시키려 했고, 그 속에서 나도 함께 재밌길 바랬다. 실기의 테크닉컬한 기술이 요구되는 입시학원 대신, 저학년과 오랫동안 함께 해온 이유다.
물론 마음만큼 수업을 해내지 못한 날이 더 많다.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0.01초 만에 무너진 적은 더 많다. 우물이 고이지 않는 수업을 위해선 10년을 넘게 일했어도 더, 노력해야 했다. 아무리 해도 성에 차지 않았다. 그래서 힘들다고 느낀 적도 많았는데- 지금 보니 그 감정은 힘듦이 아닌 아이들에 대한 '애틋함'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어린 시절에 배운 미술 수업에 대한 보상심리가 작동했을지도.
3년 전의 공백이 줬던 휴식처럼, 지금도 그렇게 받아들이면 될까. 앞으로의 수업을 연구하고 준비해도 될까. 이런 날이 있었나 싶을 만큼 괜찮아지는 때가 오면. 오늘의 조바심이 부끄러워질 수도 있을까. 물음표는 물음표를 낳고, 커피를 세잔 넘게 머신 머그컵에는 덩그러니 갈색 얼룩이 말라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