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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im jari May 06. 2021

글-맛:평범한 결혼생활(임경선)

2021.03.11 / 토스트

글-맛: 글이 가지는 독특한 운치나 글을 읽으면서 느끼는 재미.



독립서점 sns에 업데이트되는 신간 소식 중 이 책을 보곤, 조만간 읽어야지- 했는데 친구가 먼저 읽고 건넸다. 그녀는 책 내용 중에 내가 평소 했던 말이 그대로 있다고 신기해하며 책 문장 캡처 사진을 보냈었다. 덕분에 책을 받기도 전에 재밌다고 큭큭 댔다.


평범한 결혼생활의 첫인상은 의외로 얇았고, 두꺼운 표지 느낌이 사진앨범 같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맞추기 위한 양보와 희생조차도 '안 맞는'경우를 맞닥뜨릴 때면 나는 너무 어이가 없어 힘없이 웃음만 새어 나왔다.
-p9


타인에게 맞춘다는 문장만 봐도 가슴이 턱 막힌다. 작가의 생각대로 양보와 희생이 짙은 연기처럼 가슴에 퍼졌기 때문이겠지. 인간관계의 필수이자 예의, 배려로 흔하게 요구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격하게 힘에 부치는 건 여전하다. 


그런데도 맞추기로 결정했다면, 서로를 정말 잘 알아 가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지. 이 정도면 될 거야, 쟤는 이런 걸 좋아하지, 라는 억측으로 선택한 행동은 상대가 원하는 양보와 희생이 아닐지도 모르니 말이다.


내가 질투했던 것은 그녀의 무모함이었다. 이혼을 감행하기 위해 배우자에게 털어놓고 그를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그 남자의 아이를 갖겠다고 결심하게 만든 그 열정 말이다. 무모함이란 실은 용기와 자신감을 가진 이들에게만 허락되는 것. 잃을 것이 많은 사람들인데 나는 잃을 게 없다, 오로지 그 사람 하나만을 보고 갈 거라고 선언하게 만드는 어떤 미친 열정. 나는 그게 부러웠던 것 같다.
-p81


내가 겁내지만 열망하는 걸 상대는 기꺼이 해낼 때, 사람의 가슴은 자멸한다. 미친 열정은 왠지 내면을 설렌 호흡으로 채울 것 같지만, 그 숨도 가파 지면 곧 큰일이 닥칠 것 같다. 그나마 덜 잃을 수 있는 방법을 계산하는 동안, 열정의 근육도 느슨해진다. 

확실히 탄력과 생기 넘치는 열정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 저만치서 부러워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솔직히 남편이 가사 분담을 이만큼 하게 된 건, 내가 결혼 후에도 끊임없이 돈을 벌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p114


임경선 작가의 책을 몇 권 읽었지만, 평범한 결혼생활은 특히 작가의 어투나 단호한 생각들이 나와 유사하다. 그중 '제 몫'이라는 부분이 유독 그렇다. 경제적으로 남편에게 완전히 의지하지 않으려다 보니 '직업 실종'도  쓰게 됐고, 그 생각은 늘 변함이 없다. 


슬로라이프, 워 라벨 등 삶의 방식들이 각양각색이지만, 인간에게 일이 중요한 건 분명한 사실이다. 가사도 노동의 한 축을 담당하니, 어쩐지 밖에서 노동을 안 하는 사람이 나서서 집안의 노동을 도맡아야 할 것 같다. 분명 살림도 보통 일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살림을 하기 위해 태어난 건 아니지 않나. 물론 남자나 여자나 일이 없으면 집안일을 맡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굳이 직장을 스스로 나가면서 가사를 분담하는 이유 역시  '제 몫'에 있다고 본다.


중간에 작가의 청첩장이 나오는데, 정말 박장대소할 만큼 재밌고 오글대는 내용이라 많이 웃었다. 

이 책이 좋은 이유는 그들만의 '사랑'이 특별하고 절절해서가 아니라, 보통 우리들 이야기 같아서 위안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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