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글ㅡ맛

글-맛:멀고도 가까운(리베카 솔닛)

반비 / 2016.02.11

by grim jari
글-맛: 글이 가지는 독특한 운치나 글을 읽으면서 느끼는 재미


이 책은 독립서점 낫저스트북스 에서 곰곰이 돌아보다 고른 도서다. 부제에 가까운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해서라는 문장이 마음에 들었다.

멀고도가까운 리베카솔닛 독서일기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관하여1.JPG


나는 친구나 스승을 발견하기 전에 책과 장소를 먼저 발견했고, 사람이 주는 것과 똑같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것들은 내게 많은 것을 주었다.
-p54


나 같은 경우는 애초에 책과 장소는 사람과 다른 매개체라 더 접했는지도 모른다.

먼저 발견한다는 것도 시선이 열려야 가능하니, 책과 장소로 양분을 얻기로 선택한 게 아닐까.


사람들이 '어머니'나 '아버지'라고 말할 때, 그건 서로 다른 세 가지 현상을 일컫는다. 우선 당신을 만들고 어린 시절 늘 당신 위에 있는 거인이 있다. 그다음, 나이가 들어가면서 감지하게 되는 때때로 친구처럼 대할 수 있는 어떤 인간적인 모습이 있다. 마지막으로 당신이 스스로 내면화한 부모님의 모습이 있다. 그것은 당신 자신이 되기 위해 투쟁하고, 달래고, 도망치고, 이해하고, 이해시켜야 하는 대상이다. 이 세 모습이 한데 뒤섞여 혼란스럽고 서로 모순되는 삼위일체를 만들어 낸다.
-p58


삼위일체의 결과물이 '나'라는 사실에 절로 미간이 찌그러진다. 어째서 그들은 거인이나 친구였다가 어느새 두려움까지 내면화하는 걸까. 부모님과 다른 색으로 태어났다 느끼지만, 결국 그들의 염려와 두려움이 미량이라도 섞였음이 자주 인식되어 어깨가 지끈해질 때, 나 자신이 되기 위한 투쟁을 미루지 말아야 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자아라는 것 역시 만들어지는 것, 당신의 삶이 만들어 내는 작품이자, 모든 이로 하여금 예술가가 되게 하는 어떤 작업이다. 늘 무언가 되어 가는 이 끝없는 과정은 당신이 종말을 맞이할 때 비로소 끝나며, 심지어 그 후에도 그 과정의 결과는 계속 살아남는다.
-p85


세상이 있는 한. 무언가 되어 가는 과정 역시 끝이 없다. 지나온 과거와 먼 미래는 접어두고, 이 순간 맞이하는 자아를 어떻게 다듬으며 예술작품으로 만들 건지 탐구하는 게 중요해 보인다.


멀고도가까운 리베카솔닛 독서일기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관하여.JPG


감정이입은 당신이 무언가에 관심을 기울일 때, 그것을 보살피며 그곳에 가보고 싶은 욕망이 생길 때 나서는 여정이다.
-p286


이입을 하면 눈물이 나거나 화가 나는 등, 감정 표현이 자연스러워진다. 절로 관심이 가기 때문에 애씀 없이 올라온다. 그 지점을 잘 살펴보면 사람에 대한 몽글몽글한 각자만의 시선을 찾을 수 있다.


용서란 공적인 행동, 혹은 두 당사자 사이의 화해이지만, 용서가 마음속에서 벌어질 때 그 과정은 좀 더 불명확하다. 갑자기 혹은 서서히 무언가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다. 마치 어떤 범위에서 벗어나거나 그것을 넘어선 것만 같다. 그러다 그 무언가는 그곳에서 벗어난 당신 스스로를 축하하려는 바로 그 순간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
-p343


어떤 용서는 오랜 시간을 요한다. 위의 문장처럼 어느 날은 넘어선 것 같다가도 갑자기 돌아오기도 하기 때문에, 완전히 용서했다고 느낄 수 없다. 진정한 사과를 받아도 용서가 속도를 내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런 면에서 용서는 지극히 내면적 공간 일지도 모르겠다.


가끔 멋진 일이 생기고 난 직후에 삶을 되돌아보면, 인생에서 운이 좋았던 일들이 산맥으로 이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끔찍한 일이 생긴 후에 되돌아보면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다. 현재가 과거를 재배치하는 것이다.
-p359


물론 한 치 앞 일만 보는 건 어리석다 느끼지만, 현재의 불안정한 감정이 자신을 완전히 덮치는 건 늘 순식간이다. 의식이 깨어있으려 노력하고 자아를 다듬는 작업을 손 놓지 않는다면, 현재가 과거를 재배치하고 불운의 주인공이라 비하하는 오류는 그나마 줄지 않을까.


리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 책은 알츠하이머를 겪는 작가의 어머니와 그녀가 듣거나 겪었던 이야기들이 에세이처럼 쓰여있다. 다양한 이야기들에 흐름을 놓치곤 두세 번 읽기도 해서 완독 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책은 마지막 장을 덮었지만, 그녀의 이야기 물결은 멈추지 않고 흐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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