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07 / 문학동네
글-맛: 글이 가지는 독특한 운치나 글을 읽으면서 느끼는 재미
매년 젊은 작가상 수상집을 읽는데, 어쩌다 이번엔 꽤 늦게 접했다. 늘 자주 보던 이름들이 있었는데, 2021년 수상 작가명들은 좀 낯설다. 그래서인지 내용도 더 기대!
문제는 "강사나 교수라기보다는 영원히 졸업하지 않으리라 결심한 나이 많은 학생"처럼 "자신을 소년으로 생각" 하던 그가 엄연한 선생이었다는 것이다. 선생으로서의 명백한 권위를 지닌 자가 탈권위주의를 표방하며 교육자이자 연장자로서의 책임을 방기 했을 때 발생하는 폭력은 표면적으로 명확하지 않기에 곧장 인지하기가 어려운 종류의 것이다.
-p67
대상작 전하영/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의 해설 내용 중 위문장이 인상 깊다. 자신이 선택한 역할의 권위와 책임을 회피하는 게 폭력이다 느낀 적 없었는데, 그래 그럴 수 있겠다 싶다. 특히나 교육자라면 자신의 신념에 따라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니까. 그러고 보면 표면적으로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폭력들이 참 많은 것 같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동성애와 이성애를 가르는 기준은 두 사람이 법으로 결속되는 관계냐, 아니냐의 차이일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법적으로 결속되는 관계냐, 아니냐의 차이일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법적으로 결속되는 관계가 아니라 "일종의 공동선"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 관계야말로 궁극적인 '사랑하는 일'에 좀 더 가까운 것이 아닐까.
-p236
말 그대로 '법'적 결속일 뿐인 이성애만 사랑으로 인정하는 건, 책에도 나오듯 어느 시대나 있던 일이다. 결혼은 새로운 가족을 이루는 동시에 경제공동체로써 앞으로의 삶을 함께 구성하는 관계라 느끼는데, 그걸 꼭 여자와 남자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않을까. 부부지만 남보다 못한 이성관계가 늘어가는데, 어째 법만 그대로인 것 같다.
영리한 아들들은 권위에 저항하기 위한 자원으로 자신의 젠더 권력이 유용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남성 주체가 되면 적어도 여성인 성인에게는 맞설 수 있단 위계를 배운 것이다. 정체성을 형성한 청소년기에 유독 여성/퀴어 혐오가 거세지는 것은, 그 시기가 자신의 지위를 높이기 위해서는 그 아래에 다른 사람을 배치하면 된다는 간단한 원리를 터득하는 때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p236
정말 없어져야 할 대물림 중 하나가 젠더 권력 같다. 세대가 변해도 젠더 이슈가 여전한 건, 분명 누군가는 성주체사상을 물려준다는 걸 증명한다. 사람은 왜 자신의 지위를 높여야 할까. 정녕 약자를 아래에 두는 법밖엔 없을까. 존재 자체로 존엄성을 가질 순 없을까. 어차피 인간은 하늘 아래에 같은 땅을 밟고 각자의 길을 걷는 생명체일 뿐인데 말이다.
나는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하기 위해, 아이들이 하고자 하는 말을 막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정작 나조차도 불편한 이야기, 지루한 이야기, 공감되지 않는 이야기를 마주하는 연습이 부족했던 건 아닐까. 선생님,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가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었다.
-p268
무언가를 제시하고 토론하는 흐름을 경험하기보다, 낡은 교과서를 교탁에 턱 내려놓곤 반쯤 힘 빠진 눈으로 교실을 슥 훑고 슬리퍼를 찌익 끌어 칠판으로 고개를 돌리던 선생님의 모습이 학창 시절의 기억이라 그런지- 나 또한 즐비하게 그런 모습으로 수업했을 것이다. 그렇게 밖에 일하지 못하는 자신의 상태를 인지하면,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지. 수업을 또 1년 정도 쉬어야 하나 싶기도 하고. 정작 감사받을 일은 가끔만 일어나는데, 아이들은 늘 감사하다고 하고- 나도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다.
모르는데도 이끌리고 이끌리는 대로 하게 되는 것. 누구나 한 번쯤은 불가항력처럼 어떤 것에 끌려서 그것을 따라본 적이 있을 텐데 이는 '그것'이 아주 좋은 것이어서가 아니라 '어떤 것을 좋아하는 마음'을 계속 지니려고 하는 것과 관계되어 있다.
-p299
말은 비교적 편한 방식이라 빈말, 거짓말이 가능해도 행동은 에너지와 시간이 쓰이는 일이라 의도 없인 움직이기 어렵다. 계속해서 행동하게 되는 것을 짚어보면,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게 선명해질수록, 더 즐기며 행할 수 있는 것 같다.
윤리적 주체는 자신이 왜 다른 사람을 이해해야 하느냐고 회의하거나 세상이 왜 이따위냐고 항의하는 대신,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자책한다.
-p359
위문장을 읽고 보니, 나 또한 윤리가 감정과 행동을 통제하는 경우가 많더라. 도대체 윤리가 뭔지, 의미를 재정립하고자 관련 책도 구했다.
수상집에 수록된 글의 평론이 다양해서 다각도로 경험할 수 있어 좋았다. 시대적 이슈를 정교한 서사를 통해 접하니 공감이 잘 됐던 것 같다. 가격에 비해 내용은 알차서 늘 만족도가 높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