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25 / (주) 현대문학
글-맛: 글이 가지는 독특한 운치나 글을 읽으면서 느끼는 재미
최진영 작가 글이 여느 책과 다른 개인적인 이유는, 장소 상황 불문하고 집중하게 되는 내용이라는 것. 귀마개를 꼭 하고 미간을 접은 채 글자에 처박혀야 집중되는데, 그에 비해 최진영 작가 글은 주변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눈이 글자를 따라가게 된다.
아, 중독인가.
못된 것을 배웠다. 무례를 권력처럼 썼다. 내가 지금 힘드니까 너에게 너무해도 된다고. 길을 잃은 채로 너무 오래 살아서 길을 잃었다는 사실조차 잊은 사람.
-p97
상대의 무례를 거절하고 거부하는 건 당연한데, 나의 무례는 이해받길 바라는 모순은 왜 생길까. 그렇게 잃어버린 방향 키를 다시 잡는 의지 또한 어디서 오는 걸까. 짙은 감정이 만든 생각에 묶이는 건 한순간인데, 벗어남의 과정은 아득해 보인다.
해결될 일이라면 걱정하지 말고 해결되지 않을 일이라면 걱정하지 말자.
-p98
아무도 내가 될 수 없고 나도 남이 될 수 없다. 내가 될 수 있는 건 나뿐이다. 자칫하면 나조차 될 수 없다.
-p99
책 제목처럼 내가 되는 것이 마치 꿈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걱정에 걱정을 더하며 생각의 줄기를 기르는 동안 꿈에선 점점 멀어지지만, 분명 아름다웠던 꿈은 가슴에서 영영 사라지지 않지.
내 안에 갇힌 나를 꺼낼 수만 있다면 뭐든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 봤자 나는 나겠지. 마트료시카처럼 나는 계속 나일뿐이지. 죽기 위해 태어나는 것 같고, 이별하기 위해 사랑하는 것 같고, 포기를 위해 꿈꾸는 것만 같다. 가방에 국어사전이 있었다면 '허무'라는 단어를 찾아봤을 거다.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과 '허무'가 딱 틀어맞는 단어인지 확인해 봤을 거다.
-p166
'허무'의 고리에 엮이면 삶은 아주 쉽게 무의미해진다. 그 뒤론 회복이 쉽지 않다. 그렇다고 판타지 같은 희망을 가지며 살아야 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더 큰 허무에 빠질 수 있으니까.
작가의 글처럼 나는 계속 나이고, 언젠가는 죽고 이별을 겪고, 포기하는 경험도 끝이 없겠지만-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마음의 폭을 늘여보면 어떨까. 허무조차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삶일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그것은 단념과 포기와는 결이 다른 용기 있는 선택이 될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