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글ㅡ맛

글-맛: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장영은)

(주) 민음사 / 2018.03.05 ​

by grim jari
글-맛: 글이 가지는 독특한 운치나 글을 읽으면서 느끼는 재미


교보문고 팟캐스트에서 나혜석에 관한 책을 방송했다.

그쯤에 tv 역사 방송에서도 나혜석을 봤던지라,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졌다.


한국 페미니즘 고전이라는 그녀의 삶은 어땠을까.


나혜석은 칼자루를 쥔 남성 중심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는 칼날을 쥔 여성들이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고 말과 글을 남겨야 한다고 믿었다. 칼날조차 놓쳐 버리면 "순환"의 시간은 결코 오지 않는다고 나혜석은 예상했을 것이다.
-P9


여성의 삶을 글을 남기려는 나혜석의 투지가 책 속의 그녀의 글로 절절히 느껴진다. 용기와 절실함의 응집으로 제 목소리를 높인다 해도, 거대한 사회집단에 표출하는 건 목숨을 건 행동일지도 모른다. 나혜석은 아마도 제 한 몸 바쳐 칼날을 쥐었던 것일까.


경희는 벽에 걸린 체경(거울)에 제 몸을 비추어 본다. 입도 벌려 보고 눈도 끔쩍여 본다. 팔도 들어 보고 다리도 내어놓아 본다. 분명히 사람 모양이다. 그리고 드러누운 탑실개와 굼벵이 찍으러 다니는 닭과 또 까마귀와 저를 비교해 본다. 저것들은 금수, 즉 하등동물이라고 동물학에서 배웠다. 그러나 저와 같이 옷을 입고 말을 하고 걸어 다니고 손으로 일하는 것은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라고 배웠다. 그러면 저도 이런 귀한 사람이다.
-P69
나혜석은 근대 여성 지식인이었다. 나답게 살아가는 방법이 무엇인지, 예술가로서 무엇을 추구하고 연마해야 하는지, 조선의 여성들이 개척해야 할 삶은 무엇인지, 결혼 생활을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지, 나혜석의 고민은 깊었다.
-P148


귀한 사람으로서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건 당연한 일임에도, 여성에겐 어려웠던 시대가 있다. 성을 떠나 인간이라면 고민해야 할 것들이 여성에겐 사치가 되었던 그때를 예측해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멀지 않은 엄마 시대만 해도 그렇고, 끊어야 할 대물림이 선명히 보인다.



사람은 남자나 여자나 다 힘을 가지고 납니다. 그 힘을 사람은 어느 시기에 가서 자각합니다. 아무라도 한 번이나 두 번은 다 자기 힘을 자각합니다. 나는 평생 처음으로 자기 힘을 의식하였나이다. 그때에 나는 퍽 행복스러웠사외다.
-P192


자신의 힘을 자각한다는 건 다양한 의미를 포함한 듯하다.

부모의 곁을 떠나 먹고사는 것을 해결할 때나, 일반적인 기준에 벗어나 진정 원하던 삶을 뚜벅뚜벅 걸어갈 결정을 했을 때도 그럴 수 있겠지. 자기 힘으로 삶을 산다고 느낄 때 매번 행복하진 않지만, 자긍심과 확신이 두 발을 지탱하는 건 분명한 것 같다.


몸이 늙어 갈수록 마음이 젊어 가는 것이야. 오스카 와일드의 시에도 '몸이 늙어 가는 것이 슬픈 것이 아니라 마음이 젊어 가는 것이 슬프다.'라고 했어, 그러기에 서양 사람은 나이 관념이 없이 언제까지든지 젊은 기분으로 살 수 있고, 동양 사람은 늘 나이를 생각하기 때문에 쉬 늙어.
-P205
사람은 자기 내심에 자기도 모르는 정말 자기가 있는 것이다. 그(보이지 않는 자기)를 찾아내는 것이 곧 자기를 잊지 않는 것이 된다. 요컨대 우리들의 현재 및 미래의 생활 목표의 신앙 및 행복은 오직 자기를 잊지 않고 살아가는 수밖에 아무것도 우리의 맘을 기쁘게 해 줄 것이 없을 것이다. 이것이 내 생활의 전개를 자기가 보장하려는 것인 만치 지시할(손에 잡히는 열매일) 것이다.
-P322


2022년이 두 달 지났다- 벌써 2월이고 설날이 지났나 싶어 황망할 때도 있다. 시간이 너무 빨리 가,라고 말하며 하루를 길게 사는 나로선, 나이보다는 '무엇을 하는가'에 초점이 있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오늘 할 일에 집중하려 한다. 나혜석이 말하는 자기를 잊지 않는 것, 내 생활의 전개를 자기가 보장하려는 노력 중의 하나겠지.


​얇고 작은 책이지만, 나혜석의 결기와 에너지가 느껴진다.

귀로만 들었던 그녀의 글을 문자로 보니 시대 변화도 느껴지지만, 뭘 말하고자 하는지는 정확하게 알겠다.

최초의 여성화가로써, 올곧은 글로 진심을 전하고자 했던 그녀의 삶이 궁금하신 분들께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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