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똘히 생각해.]
나는 초등학교 방과 후 미술수업과, 주민센터 미술강사로 일을 하고 있다.
학교와 센터의 차이는 연령이다. 방과 후 수업은 초등학생들이라, 웬만하면 자기 이름 정도는 다들 쓰기에 그림 그리는 법을 설명하거나 시범을 보일 때 이해력이 좋고, 스스로 자리 정리도 제법 잘한다.
주민센터에는 6,7살이 대부분인데, 미술을 처음 배운다거나 색깔의 이름도 모르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아이들이 이해하기 쉬운 방법으로 10번, 20번도 넘게 반복해서 설명해야 하고, 자리 정리는 거의 기대할 수 없다.
학교를 가는 날에는, ppt를 준비해서 아이들에게 수업 주제를 자세히 설명하고, 참고자료 사진을 보여주며 감상을 나누기도 한다. 미술 수업은 백 마디 말보다, 한번 제대로 보여주는 게 이해력에 훨씬 도움이 되는데, 그런 의미에서 방과 후 수업이 미술 이론을 인지하기가 센터보다 조금 나을 수 있다고 본다.
반면, 주민센터에서 이론에 대한 설명을 3분 넘게 한다면? 6,7살 아이들은 이미 한쪽 팔을 책상에 대고 엎드리기 시작한다. 간단하고도 명확하게 수업을 설명한 뒤, 농담과 장난을 섞어가며 아이들이 지루 할 틈을 주지 않는 게 핵심이다.
아이들 개개인마다의 특징과 취향이 다르기 때문에, 미술 작품도 다 다르게 나올 수밖에 없다. 초등학교 아이들은 꽤 그럴싸한 작품을 완성해내고, 국민학교 시절의 나보다 훨씬 더 잘 그려서 놀랄 때가 많다. 신인류란 이런 것인가를 몸소 느낀달까. 심지어 본인이 그림을 좀 잘 그리고, 무엇을 그리고 싶은지를 명확하게 인지하는 경우에는, 선생님의 지도는 거의 잔소리처럼 귓등으로 흘린다고 보면 된다.
"선생님~!"하고 부르는 억양부터가 벌써 방글방글한 유치원 아이들은, 짧은 다리 때문에 의자에 좀처럼 제대로 앉는 법이 없어서 넘어지진 않을까 요리조리 살펴야 하지만, 내가 하는 말을 법으로 안다. 나에게 엄마 아빠의 다툼을 고자질하기도 하고, 열 번 넘게 설명해도 다음날 또 묻고, 네모를 그리자 해도 동그라미를 벅벅 그리지만, 반짝이 스티커를 상으로 주는 선생님을 '왕'으로 만들어 주는 그들이다.
다른 환경에서, 다른 아이들에게, 색다른 온도를 느낀다. '미술'은 아이들과 나누기에 따뜻한 소재이고, 배움의 결과를 판단하는 기준이 다소 열려있는 분야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때로는, 그림은 '정답'이 없는데 표준화된답을 만들어서 가르쳐야 할 때도 있고, 스스로 관찰하게끔 기다려 줘야 하는데 시간에 쫒겨 주입식으로 알려줄 때도 있다.
'주어진 수업환경에서 최대한 스스로 그릴 수 있게끔 도와줘야 하니까'라는 이유로 수년간 합리화하곤 있지만, 아이들에게 괜스레 미안해지는건 여지가 없다. 언제까지 야광별 스티커와 레몬맛 사탕으로 그들의 고됨을 달래며, 이 고민을 유보 시킬수 있을까. 오늘보다 다음번 수업이 우리 모두에게 더 가뿐하고 즐길수 있길 바라며, 골똘히 머리를 굴려보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