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맛:불행은 어떻게 질병으로 이어지는가

저자:네이딘 버크 해리스/2019.11.12 /(주)도서출판 푸른 숲

by grim jari
글-맛: 글이 가지는 독특한 운치나 글을 읽으면서 느끼는 재미


추천받은 책이 있어 오래간만에 도서관에 들렀다. 제목은 의학도서 같지만, 읽어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특히 아이와 함께하는 어른에게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



지난 20년 동안의 의학 연구를 통해, 아동기의 불행은 말 그대로 몸에 새겨져 그 사람을 변화시키며, 몸속에 일어난 그 변화는 수십 년 동안 사라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불행은 한 아이의 발달 궤도를 틀어놓고 생리 기능에도 영향을 미친다. 평생 안고 가야 할 만성 염증과 호르몬 변화도 촉발할 수 있다.
-p19


'아동기의 불행'이라는 글자만 봐도 미간이 좁혀지는데, 그것이 몸에 새겨진다 상상하니 대물림이란 이런 건가 싶어 어금니에 힘이 꾹 들어간다.


우리는 역경과 비극과 고난이 인생의 일부라는 점을 알고 있다. 질병과 이혼, 트라우마에서 아이들을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 아무리 간절하더라도 때로는 그런 일들이 벌어진다. 이 연구는 나날이 직면하는 삶의 어려움들도 사랑을 품은 양육자에게 제대로 된 지원을 받으면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p116


만약 어떤 아이가 스트레스가 지역적으로 심각한 환경에서 자라더라도 이를 잘 보듬는 건 강한 양육자가 있다면 유독성 스트레스 범위가 아니라 견딜만한 스트레스 범위에 머물 가능성이 훨씬 크다는 뜻이기도 하다.
-p281


누구에게나 빛과 그림자는 있다. 내리는 비를 막을 수 없듯, 성큼 다가온 불행이 코앞에 있을 땐 사랑을 품은 양육자의 힘은 반드시 필요하다. 시간이 지나면 옅어지는 스트레스와 세포에 새겨진 고통의 기억 차이는 아이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는구나.




우리 사회에 산재한 많은 문제의 원인이 아동기의 부정적 경험에 있다는 것을 이해하면, 아이들이 겪는 부정적 경험을 줄이고 보호자들의 완충 능력을 향상하려는 노력들이 그 해결책으로서 의미가 있다. 거기서부터 시작해 우리는 계속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p394


위의 문장을 읽으니, 아동기의 부정적 경험을 줄이는 것부터가 부모 역할의 시작일 지도 모르겠다. 어떤 집에서 키우고 무슨 공부를 시키는 것보다, 아이들의 삶에 거름이 되어줄 긍정적인 경험을 가득 선물하는 과정이 부모의 능력일지도.


나는 어린 시절에 부정적 경험을 하며 자란 사람들이 자신의 유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역경을 잊어버리거나 탓하는 것이 쓸모 있는 일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첫걸음은 그것의 상태를 평가해 파악하고, 그 영향과 위험을 비극도 동화도 아닌, 의미 있는 현실로서 명료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특정한 상황에 처했을 때 몸과 뇌가 어떤 식으로 반응하게끔 맞추어져 있는지 이해하고 나면, 자신의 반응을 미리 예측해 조정하는 방식으로 매사를 처리할 수 있다.
-p407


현실을 명료하게 보는 것 자체가 극복의 시작인 것 같다. 파악하고 이해하면 더 이상 부정적으로 느끼지도 않는다. 그냥 그 상황 자체 팩트로만 보일 뿐.

부모에게도 아동기 시절이 있고, 불행한 경험이 있음을 인정하고 그것을 진정으로 이해한다면, 아득한 두려움이나 원인 모를 신경증 질병에선 멀어질지도 모른다.

이 책은 약간 두께가 있는데도 잘 읽히고, 여러 아이들의 사례로 아동기 스트레스로 인한 여러 가지 신체적 반응을 다양하게 읽을 수 있다. 재밌다기보다, 흥미로웠던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