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아이들에게 닿기를.

[ 멈춤과 시작 사이. ]

by grim jari


#5. 아이들에게 닿기를.




대학 졸업 후 거의 일을 쉰 적이 없었는데, 4년 전 타 지역으로 터를 옮기면서 자연스레 1년 동안 수업을 쉬게 됐다.

사실 꽤 오래전부터 일의 무기력증 수준이 데드라인을 넘어섰고, 그나마 나풀거리는 아이들의 웃음 덕에 수업을 꾸역꾸역 연명하고 있었으니, 한 템포 멈추기에도 시기적절했다.


6년을 같은 직장에 있었고, '가르친다'는 방식 대한 기준이 흔들리고 있었던 나는, 그 당시 아이들에게 미술을 알려줬다기보다, 수업을 제시간에 잘 쳐내 것에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었다. 그득한 미소와 함께 찰흙을 조물거리는 손동작을 자세히 봐주지 못했고, 어제보다 직선을 더 곧게 그어내는 5살 친구의 노력을 알아채 주지 못했다. 경력이 쌓여 수업을 잘 쳐내는 만큼, 몽글했던 초심은 망연스럽도록 저 멀리 물러나 있더라.


1년 동안 비록 몸은 일을 쉬었지만, 머릿속에선 복작복작했던 수업이 다시 진행되곤 했다. 멈추니 다시 하고 싶어 진 건지, 직업병이라 습관적으로 수업 시뮬레이션을 하는 건지 알 순 없었지만, 시원하게 확 떨쳐지지가 않았다.

언젠가 다시 일이라는 걸 하게 된다면, 당연히 그림을 가리키고 있겠지 라는 기약 없는 생각이 모여들기도 했다.

뜨끈했던 초심을 되찾기보다, 지난 6년의 시절들이 다시금 자글 하게 씹히던 날들이었다.


* 사진출처: https://m.kin.naver.com/mobile/qna/detail.nhn?d1id=1&dirId=102020103&docId=176318417&qb=7IK



그렇게 슬그머니 1년을 보내고, 나는 다시 종이와 붓을 들고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리키고 있다.

다른 방식으로 가리키겠다 다짐했던 부분이 실행되기도 했고, 이전과 다를 바 없는 전쟁 같은 수업을 치른 후 까닭 없는 패배감을 느낄 때도 있다. 아이들이 그림을 즐기며 그릴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생각하고, 오늘은 어제보다 한번 더 웃으며 대화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만이 지긋할 뿐이다.

10년을 가까이 일해도, 어떤 교육방법이 제일 효과적인가에 대한 고민은 지금도 여전하다. 항상 한편에 꽁하고 있는, 미술이 과연 가르쳐야 할 '것'인가에 대한 시선도 여전히 살아있다. 수업 방식에 관한 자잘하고도 어렴풋한 바람들이 재현되지 못하고 엎어지는 순간들이 앞으로도 무수하겠지만, 아마도 나는 계속 머리를 굴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이러니 하지만 잘하는 건 수업밖에 없고, 못해서 열 받는 것도 수업밖에 없으니까.

‘잘’ 가르쳐 주고 싶은 마음이 언젠가 맹꽁이 같은 그들에게 닿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