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 후 거의 일을 쉰 적이 없었는데, 4년 전 타 지역으로 터를 옮기면서 자연스레 1년 동안 수업을 쉬게 됐다.
사실 꽤 오래전부터 일의 무기력증 수준이 데드라인을 넘어섰고, 그나마 나풀거리는 아이들의 웃음 덕에 수업을 꾸역꾸역 연명하고 있었으니, 한 템포 멈추기에도 시기적절했다.
6년을 같은 직장에 있었고, '가르친다'는 방식 대한 기준이 흔들리고 있었던 나는, 그 당시 아이들에게 미술을 알려줬다기보다, 수업을 제시간에 잘 쳐내 것에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었다. 그득한 미소와 함께 찰흙을 조물거리는 손동작을 자세히 봐주지 못했고, 어제보다 직선을 더 곧게 그어내는 5살 친구의 노력을 알아채 주지 못했다. 경력이 쌓여 수업을 잘 쳐내는 만큼, 몽글했던 초심은 망연스럽도록 저 멀리 물러나 있더라.
1년 동안 비록 몸은 일을 쉬었지만, 머릿속에선 복작복작했던 수업이 다시 진행되곤 했다. 멈추니 다시 하고 싶어 진 건지, 직업병이라 습관적으로 수업 시뮬레이션을 하는 건지 알 순 없었지만, 시원하게 확 떨쳐지지가 않았다.
언젠가 다시 일이라는 걸 하게 된다면, 당연히 그림을 가리키고 있겠지 라는 기약 없는 생각이 모여들기도 했다.
그렇게 슬그머니 1년을 보내고, 나는 다시 종이와 붓을 들고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리키고 있다.
다른 방식으로 가리키겠다 다짐했던 부분이 실행되기도 했고, 이전과 다를 바 없는 전쟁 같은 수업을 치른 후 까닭 없는 패배감을 느낄 때도 있다. 아이들이 그림을 즐기며 그릴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생각하고, 오늘은 어제보다 한번 더 웃으며 대화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만이 지긋할 뿐이다.
10년을 가까이 일해도, 어떤 교육방법이 제일 효과적인가에 대한 고민은 지금도 여전하다. 항상 한편에 꽁하고 있는, 미술이 과연 가르쳐야 할 '것'인가에 대한 시선도 여전히 살아있다. 수업 방식에 관한 자잘하고도 어렴풋한 바람들이 재현되지 못하고 엎어지는 순간들이 앞으로도 무수하겠지만, 아마도 나는 계속 머리를 굴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이러니 하지만 잘하는 건 수업밖에 없고, 못해서 열 받는 것도 수업밖에 없으니까.